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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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치인트 마무리, 순끼 작가를 만나다

웹툰 팬이라면 요즘 목요일이 허전할 수도 있겠다. 매주 목요일이 기다려지게 만들던 ‘치즈인더트랩’(치인트)이 7년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평범한 여대생 홍설과 완벽해보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수상쩍은 선배 유정이 펼쳐내는 미묘한 이야기들을 중학교 때 접하기 시작한 팬들은 어느새 대학생이, 대학생 때 만난 팬들은 부모가 됐을 수도 있다.

2017-06-09 홍지민


“멍하니 마음의 여유 느껴 보고 싶어”...
웹툰 팬이라면 요즘 목요일이 허전할 수도 있겠다. 매주 목요일이 기다려지게 만들던 ‘치즈인더트랩’(치인트)이 7년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평범한 여대생 홍설과 완벽해보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수상쩍은 선배 유정이 펼쳐내는 미묘한 이야기들을 중학교 때 접하기 시작한 팬들은 어느새 대학생이, 대학생 때 만난 팬들은 부모가 됐을 수도 있다.
큰 사랑 속에 2014년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한 ‘치인트’는 석우 작가의 ‘오렌지 마말레이드’, 이나래 작가의 ‘허니 블러드’ 등과 함께 순정만화의 르네상스를 재현하고 있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TV드라마로 방영됐으며, 올해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웹툰이 드라마와 영화 두 가지로 모두 영상화되는 것은 흔치 않은 사례다.
순끼 작가에게 지난 7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치인트’에 마침표를 찍고 망중한에 즐기고 있을 순끼 작가와 e메일을 통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팬들은 모두 알고 있겠지만 필명은 ‘단순한 토끼’의 줄임말이다. 정식 데뷔 전에는 ‘단토’를 필명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요즘 웹툰 작가는 셀레브리티로, 일거수일투족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경우가 많지만 순끼 작가는 블로그에 간간이 글을 올리는 정도를 제외하곤 자신을 좀처럼 드러내지는 않는 편이다. ‘치인트’가 탄생한 작업실 풍경은 순끼 작가가 직접 그렸다.


Q. 연재 종료 뒤 한 달이 조금 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허전한 느낌이 있을 것도 같은데,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A. 완결 후에 미뤄둔 일을 처리하고 외출이 잦은 상황이라 푹 쉰다는 느낌은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허전함보다 더 여유롭게 즐기고 싶다는 바람이 큽니다. 지난 한달 간 오랫동안 가지 못했던 가족여행을 다녀오고 건강관리를 위해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도 만나고 이래저래 바쁜 나날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Q. 치인트는 20대 중반에 연재를 시작해 30대 초반에 마무리 됐습니다. 이렇게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하셨나요.
A. 치즈인더트랩은 제 데뷔작입니다. 그래서 주간 연재라는 경험 자체가 아예 없다보니 연재에 대한 고민과 준비가 적은 상태로 너무 대책 없이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길어봐야 3,4년 예상했는데 훌쩍 뛰어넘고 말았네요.

Q.  매주 연재를 하느라 개인적인 생활을 포기한 부분도 있을 텐데요, 컴백하기 전, 재충전 기간 동안 만끽하고 싶은 일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여행, 외국어 학습 등 여러 가지 즐거운 계획을 세웠고 순서대로 시작하고 있지만, 가장 하고 싶은 건 아무 생각 없이 침대나 카페에서 멍하니 마음의 여유를 느껴보는 것입니다. 매주 마감에 쫓기다보니 마음의 여유를 찾지 못했는데 이제야 조금씩 되찾는 느낌입니다.

Q. TV 드라마는 인기가 있으면 연장 방송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웹툰의 경우에도 연재가 장기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치인트는 원래 구상보다 이야기가 늘어난 편인가요, 아니면 계획한데로 마무리됐나요.
A. 치인트는 생각보다 연재가 길어져 계획했던 에피소드의 일부가 쳐내졌습니다. 원래 구상대로였다면 훨씬 길어졌을 거예요. 없어진 이야기가 아쉽기도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Q. 독자들은 치인트를 로맨스릴러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섬세한 심리 묘사가 인기에 큰 몫을 하고 있다고 보이는 데요, 앞으로도 심리 묘사가 작가님의 시그니처가 될 수 있을까요.
A.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와 심리 상태에 그런 묘사가 어울렸고 어느 정도 독자님들께 어필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같은 이야기를 해도 연출에 따라 다양하게 달라 질 수 있다는 생각은 늘 염두하고 있기 때문에 연출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크게 변하지 않는 선에서 다른 연출 스타일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만 아무래도 제 색 자체는 많이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Q.  만화 속 세상에서 10년 후의 홍설과 유정은 어떤 모습일까요.
A.  그 부분은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10년이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일을 겪었을 테고 인생을 좌우할 법한 중요한 선택을 할 것이고(직장이나 결혼 등) 그 선택의 결과에 따라 알아서 살 거라 봅니다.

Q.  데뷔 전 생각했던 만화가의 삶과, 데뷔 이후 실제 마주친 삶은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또 어떤 시행착오를 거쳤는지 궁금합니다.
A.  데뷔전엔 만화책 후기에서 자주 보던 마감에 쫓기는 만화가의 삶을 상상했습니다. 당시엔 초췌하고 원고에 고통 받는 그 모습조차 제게는 선망의 대상이었지요. 그래서 데뷔를 하면 어떻게든 마감하고 잘 지내겠지 가볍게 생각했습니다.허나 실제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손목에 이상이 생겨 병원 신세를 졌고 알차게 세웠던 하루 계획, 주간 계획이 차례로 어긋나 시간문제에 부딪치며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또한 작업적 측면만이 아니라 오픈된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의 독자와 마주하고 다양한 반응을 겪으니 굉장히 당황했고 어쩔 줄 몰랐습니다.이제는 작품을 준비할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느 정도 준비해야하는지도 알았고, 독자의 반응을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지 주간 연재를 하면서 시간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 지 어느 정도 깨닫고 익숙해진 듯합니다.

Q.  많은 동료 분들이 연재 종료 축하 인사를 해주셨네요. 평소에도 오프라인으로도 자주 교류하시는지요. 또 어느 분의 축하 인사가 가장 마음에 드셨을까요.
A.  시간이 늘 부족했던 관계로 그리 자주 교류하진 못했습니다. 한동안 몇몇 동료 작가 분들과 함께 카페에서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교류가 부족한 작가인데도 완결을 축하하고 축전을 보내주신 모든 작가님들께 감사합니다.

Q.  언제부터 만화가를 꿈꿨는지,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림과 만화를 좋아했고 자연스럽게 ‘나도 이런 걸 그리고 싶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큰 계기가 될 법한 에피소드는 없었고 만화를 좋아하다보니 만화가 외에 다른 선택지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Q.  그림(만화) 그리는 것을 따로 공부한 시기가 있는지요.
A.  어릴 때부터 연습장이나 이면지에 꾸준히 낙서하고 이것저것 자료를 찾아보며 그림 연습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연습했던 것을 제외하면 고3때 입시미술학원을 다녔습니다. 그때 혼자 배우던 것 보다 더 전문적인 지식을 많이 배웠고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Q. 과거 인터뷰를 보면 치인트는 고등학교 때 콘티를 짰던 작품이라고 설명했는데요, 아직 잠자고 있는 콘티들이 여럿인가요. 또 7년 전의 시점에 그릴 수 있는 작품을 생각하다 보니 대학생물로 방향을 잡았다고 했는데,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수준에 이르렀을 때 꼭 그려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A. 몇 개의 콘티나 시놉이 아직 남아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전에 만든 내용은 시대착오적이거나 현재의 제 가치관이나 스타일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대로 쓸 수는 없고 많은 부분을 고쳐야 할 것 같네요. 내용 수정과 자료 준비가 어느 정도 된 것부터 작업을 할 예정이라 어느 이야기부터 시작할지는 정하지 않았습니다. 점점 제 실력이 나아진다면 스케일이 큰 작품이 하고 싶습니다.

Q.  초창기 치인트를 보면 일본 다카하시 루미코의 느낌도 있는데요, 작가님에게 영향을 준 국내외 선배 작가들과 작품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또 어렸을 때 어떤 작품들을 즐겨 봤는지도 궁금합니다.
A. 다카하시 루미코는 어릴 적 ‘란마1/2’ 비디오를 봤던 것 외에는 깊게 접해보지 못한 작가님입니다. 한창 만화가를 꿈꿀 때는 ‘터치’를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 어려서 내용 이해가 잘 가지는 않았지만 아다치 미츠루 특유의 분위기를 정말 좋아했고 지금도 그 감성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창 시절에는 국내 순정/액션 만화도 강세였기 때문에 이미라 작가님, 천계영 작가님 등 국내 작품을 상당수 접했습니다.
Q.  끊임없이 수많은 웹툰 작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공백기가 길어지면 잊혀 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없으신가요.
A.  최근 재미있는 신작도 많이 올라왔고 그림부터 내용까지 굉장히 훌륭한 분들이 많기 때문에 두려움은 당연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차기작과 그 다음 작품까지 차분하게 계획을 세우고 천천히 준비하려 합니다.

Q.  웹툰 시대를 맞아 ‘치인트’, ‘허니 블러드’ 등이 크게 인기를 끌며 1980년대 순정만화 르네상스 시대가 재현되고 있다는 평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작품 트렌드는 시시각각 바뀌지만 사람들의 기본 감성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르네상스까진 의식하지 못했지만 제게 친숙한 순정 스토리와 감성이 현재 배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고, 그것을 독자들이 좋아 한다는 건 상당히 기분 좋은 일입니다.

Q.  웹툰을 통해 새로운 창작 문화, 새로운 팬덤 문화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창작자 입장에서 좋은 부분도, 아쉬운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말씀 해주신다면.
A.  작가의 성향에 따라 팬덤과의 관계도 달라지겠습니다만 저는 약간의 거리를 두는 편입니다. 당연히 작가인 이상 독자님들께 좋은 작품을 보여드리고 싶고, 독자님들 한 분 한 분이 전부 소중하지만 그만큼 서로 조심해야하는 관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활발한 소통을 하고 있진 못하지만 저는 지금의 이 관계가 좋습니다.

Q.  차기작이 무척 궁급합니다. 어떤 장르, 어떤 이야기, 어떤 방향을 생각하시고 있는지 아주 살짝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또 지금 계획으로는 언제 쯤 돌아오실 예정인지도 궁금합니다.
A.  여러 가지 소재를 염두 해 두고 있지만 바로 다음의 차기작은 가벼운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치인트가 워낙 네거티브한 요소가 많기도 했고 저 역시 휴식을 너무 오래는 취할 수 없기 때문에 보는 분도, 그리는 사람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소재들은 더 천천히 준비해 보고자 합니다. 올해는 차기작 계획은 없고 내년 초중반쯤 복귀하지 않을까 싶네요.

Q.  치인트는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또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있는 무척 이례적인 경우인데요. 보이스 웹툰으로도 나오는 등 새로운 시도도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작업은 이러한 원소스멀티유즈나 미디어믹스 등을 미리 염두에 둔 작업이 될까요.
A.  OSMU를 아예 외면할 수는 없지만 그것만 신경 쓰면 작품을 만드는 본질이 달라지 게 됩니다. 웹툰은 웹툰만의 장점이 있고 거기에서만 표현 가능한 내용과 연출이 존재하니까요.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차기작은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구상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Q.  끝으로 지난 7년간 함께 해준 팬들, 홍설과 유정에게 각각 한 말씀 해주신다면.
A.  홍설, 유정, 백인호, 백인하에게도 친절하지 못했고 그만큼 어지러운 내용이었기에 독자님들도 함께 하기 힘든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완결까지 함께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홍설과 유정은 꾸준히 시행착오를 거치며 지내겠지만 오랜 기간 저와 함께 해 준 친구들이니만큼 꼭 행복해졌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