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보기 위해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우리가 지나온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는 ‘이런 일은 없다’고 단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모른다고 해서 그곳에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작가, 김인정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Q. 웹투니스타(이하 웹) : 마감할 때 워낙 힘들다 보니 연재가 끝나면 푹 쉬는 타입으로 알고 있다.
A. 김인정(이하 김) : 마감을 하고 나면 정말 마음을 놓고 쉰다. 마감할 때 힘들기도 하고.
Q. 웹 : 데뷔를 예전 툰도시라는 플랫폼에서 <내눈에 콩깍지>라는 작품으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
A. 김 : 정확하게는 출판만화고, 일본의 드라마 작가와 협력해서 만화화 하는 각색 작업을 했다. 동명의 영화가 있었고, 그 영화를 만화화 한 것이다.
Q. 웹 : 그러고 나서 <꽃같은 인생>을 네이트에서 연재했던 웹툰이다. 네 명의 여대생이 각자의 사랑을 겪는 이야기다. 인터뷰를 준비하기 전에 작품을 볼 때 앉은자리에서 본 기억이 있다. 특이한 캐릭터들이라곤 하지만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A. 김 : 다양한 사람들이 겪는 보통의 연애담을 그렸다고 생각한다. 주인공들의 남자친구 같은 경우는 정말 주위에 흔한, 그러나 상처를 많이 줄 수 있는 남자부터 어느 정도 신격화(?) 된 남자도 등장하는데, 다양한 연애군상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Q. 웹 : 차기작으로는 <더 퀸 : 침묵의 교실>을 그렸다. 연재처가 에이트에서 다음으로 옮겨갔는데? 이유도 혹시 들을 수 있나?
A. 김 : 당시에는 타 매체에서 다음으로 넘어오는 경우가 1년에 한두 번 정도 밖에 없다고 들었다. 흔한 일은 아니었다. 네이트의 경우 여성 독자가 많은 편이고, 때문에 다른 연재처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준비를 하다 보니 다음과 색깔이 맞아서 다음과 협의를 했다.
Q. 웹 : <더퀸>의 경우는 제목이 모든 걸 말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고립된 교실에서 여고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권력에 대한 이야기다. 그 연령대의 여성들이 보여주는 미묘한 권력관계를 보여주는 웹툰이다. 초반부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 정아와 유리 아버지의 직업이 끝까지 나오지 않고 이야기가 끝났는데?
A. 김 : 후기에 쓸까 고민을 했던 이야기다. 연재 들어가기 전에 영화 관련 서적을 보다가 ‘맥거핀’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맥거핀’은 알프레드 히치콕이 정립한 것이라고 한다. 초반에 중요한 것처럼 뿌려놓은 다음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 그러니까 일종의 낚시라고 볼 수 있겠다(웃음). 그래서 한번 써먹어보고 싶었다. 대사 하나로 지나가듯이 넣었는데, 다들 걸려들더라(웃음).
Q. 웹 : <더퀸>을 리뷰 할 때 정아 아버지가 사실은 국회의원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다(웃음). 대부분 그렇게 예측을 했는데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리뷰 하던 당시에는 학교폭력과 학교에서 생존하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다. 학교폭력이 사라질 수 있을까?
A. 김 : 개미들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게으른 개미를 개미 무리에서 떼어놓으면, 남은 개미들 안에서 또 다른 게으른 개미가 나온다는 이야기다. 사실은 없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교육과 같은 교정과 보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인간관계에서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Q. 웹 : 보통 매체에서 아름답게 미화되거나, 권선징악적 요소가 들어가게 마련인데, 그런 요소가 없어서 정말 좋았다. 묘하게 현실적이었다고 할까.
A. 김 : 주인공 정아가 변화한 것만으로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메시지는 충분하지 않았나 싶다.
Q. 웹 : 작품을 보면 학교폭력을 통해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랄까, 하는 것들이 엿보이는 것 같다.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갑과 움츠러든 을들의 모습. 결국의 아이들은 배운 대로 행동하니까. 때문에 정아가 전학생이 아니면 바뀌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본다. 1학년 때부터 학습된 무기력에 찌들었다면.
A. 김 : 그래서 정아를 전학생으로 설정했다. 그곳에 있었다면 익숙해져 있었을 테니까. 때문에 새로운 시점으로 보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뿐만 아니라 햇님이의 자살시도를 목격하는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Q. 웹 : 후기에 보면 작가의 경험이 들어가 있다고 나와 있기도 한데?
A. 김 : 나는 심한 건 아니었다. 다만 권력체계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던 거다. 나는 좀 무딘 편이었는데, 갑자기 따돌림을 당했다. 다 한 번씩은 있는 경험이다.
Q. 웹 : 작품에 보면 아버지가 “내가 돈도 다 내주고 너는 공부만 하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렵냐?”고 묻는 장면이 있다. 좀 화가 나는 장면이기도 했다. 교실에도 사회구조, 권력구조가 있지 않나. 그래서 교실을 일부러 분리시킨 것으로 생각했다.
A. 김 : 고등학교 1학년 때 정말로 우리 반이 미술실을 썼었다. 당시에 평소와는 다른 학교생활을 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소재로 사용했다. 아무래도 고립되어 있다 보니 다른 반에서 개입할 여지가 없어지니까.
Q. 웹 : 정아가 변화한 게 정말 큰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정말로 그런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는가?
A. 김 : 내가 따돌림을 당할 때 실제로 한명의 친구가 정말 큰 힘을 주었다. 그런 친구들이 목소리를 내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작이 되는 한명이 중요하다. 하지만 청소년기에는 동화되어 있는 것에 안정감을 많이 느끼기 때문에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 자체가 힘들고, 때문에 어른들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도록 키워내는 것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Q. 웹 : 작품에서 미묘한 표정을 잘 그린다고 느꼈다. 어떻게 그리는지 궁금하다.
A. 김 : 사진을 본다거나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예전부터 우리나라 만화들에 표정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외국 배우들을 보면서 느낀 건데, 눈썹을 활용하면 표정이 다양해지더라. 그래서 그렇게 느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눈썹이 인상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Q. 웹 : 보통 학교폭력을 다루는 작품의 경우는 “이게 옳아”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끼는데, 그런 장면이 없어서 좋았다.
A. 김 : 최대한 열린 결말로 가려고 했다. 독자분들도 교훈적으로 가면 바로 알아채시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가르치는걸 지양하려고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창작물을 만들고 싶었다.
Q. 웹 : 오늘 방송에 나와주어서 고맙다. 앞으로도 좋은 창작활동 부탁한다.
A. 김 : 이렇게 시간을 내서 리뷰하는 것에 감사한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인생 전체를 이야기하기 위해 누군가는 하루동안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하루의 일을 이야기하기 위해 한 사람의 일생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가 의미를 가지는 건, 우리도 비슷한 관계를 맺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그런 경험을 하며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