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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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멈추지 않는 작가,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

양우석 감독님, 아니 작가님? 뭐라고 불러야 할지 잠깐 망설여졌다. 양우석 감독은 2013년 11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변호인>을 연출한, 몇 되지 않는 천만 감독 중 한 사람이다. 올해 북한 최고지도자의 암살 시도를 둘러싼 영화 <강철비>(2017)를 선보이며 또 한 번 흥행돌풍을 일으켰다.

2018-07-17 송경원



양우석 감독님, 아니 작가님? 뭐라고 불러야 할지 잠깐 망설여졌다. 양우석 감독은 2013년 11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변호인>을 연출한, 몇 되지 않는 천만 감독 중 한 사람이다. 올해 북한 최고지도자의 암살 시도를 둘러싼 영화 <강철비>(2017)를 선보이며 또 한 번 흥행돌풍을 일으켰다. <강철비>는 남북 긴장 상황에 대한 전에 없던 상상력으로 남북관계 소재의 영화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사실 웹툰 원작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 그 웹툰의 스토리작가가 양우석 감독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한 명의 작가가 웹툰과 영화를 동시에 연재한 <강철비>의 사례는 흔치 않을 뿐 아니라 앞으로 다른 창작자들, 스토리텔러들도 연구해봐야 할 모델이라 할만하다. 2017년 12월 영화 개봉에 맞춰 2017년 10월부터 연재를 시작했던 <강철비: 스틸레인2 FULL STORY>이 올해 6월 드디어 연재를 마쳤다. 이제야, 아니 이로써 프로젝트 <강철비>의 최종막이 닫힌 셈이다. 연재 종료를 기념하여 양우석 작가에게 <강철비> 프로젝트에 얽힌 이모저모를 물었다. 어쩌면 감독, 작가 뭐라고 호칭하건 본인은 그리 개의치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한국 최고의 스토리텔러 중 한 명이란 본질은 변함없을 테니 말이다.


Q. <강철비: 스틸레인2 FULL STORY>가 얼마 전 완결됐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이제야 일단락 되었다고 느끼실 것 같습니다. 영화 <강철비> 개봉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일 것 같은데.
A. 우선 처녀작인 강철비 웹툰 연재를 마무리한 브리햄 작가가 고생 많이 했는데 지면을 빌어 감사하다는 얘기 전해드립니다. 그 사이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물론 가장 큰 변화는 북미 회담이 열리면서 북한 비핵화와 평화 체제의 가능성이 열렸다는 겁니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보면서 강철비가 할 얘기는 다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스틸레인>은 2011년 5월부터 12월까지 총 32화로 연재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웹툰이란 장르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A.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한반도 전쟁위험이 있었습니다. 심각한 국면이었는데 국내에서는 설마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었습니다. 제네바 협약이 사실상 무효화된 이후에 한반도에는 언제나 전쟁위험이 상존할 수밖에 없었는데 말이지요. 아프간-이라크 전쟁과 오바마의 고립주의 정책으로 미국의 대응이 잠시 미뤄졌던 것뿐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웹툰으로 소통하고 고민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출판만화 시장이 사실상 전멸 상태에 빠진 요즈음 어쩌면 웹소설과 웹툰이 어쩌면 가장 확실한 대안이라는 판단도 있었습니다.

Q. 꼼꼼한 자료조사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부터 자료를 조사했다고 들었는데, 소재를 발굴하고 접근하는 본인만의 방식이 있는 건지요. 어떤 순간 이게 이야기가 가능할 것 같다는 확신이 오는지 궁금합니다.
A. 어떤 얘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일단 무조건 자료를 모으고 읽고 생각하려 합니다. 어떠한 캐릭터를 만들어내야 이 이야기가 재밌을까를 고민하다보면 “아 이야기가 되겠구나!” 싶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바로 캐릭터가 구체적으로 손에 잡힐 때입니다. 때론 캐릭터가 제대로 구상될 때 까지 몇 년이 걸리는 경우도 허다합니다만 보통은 1년 정도 소재에 대한 공부를 하며 고민하다 보면 어느 정도 이야기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Q. <스틸레인>과 <강철비: 스틸레인2 FULL STORY>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강철비: 스틸레인2 FULL STORY>은 6년 동안 달라진 정세가 상당히 반영되었단 점에서 영화의 원작이라기보다는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감독판 웹툰이란 인상입니다. 남한의 곽철우, 북한의 엄철우라는 인물로 주인공이 바뀐 것도 달라진 점입니다.
A. <스틸레인>에는 북한에 있는 제임스 백이라는 이중 스파이가 등장합니다. 남측 요원 박재익이 중심이 되긴 하나 북에 있던 제임스 백과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구성입니다. <스틸레인> 연재할 때만 하더라도 남과 북, 북과 미가 어느 정도의 연락선은 있던 상황이라 이러한 설정으로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정권 때 모든 연락선이 끊어지면서 더 이상 북과 연락선이 살아있다는 줄거리는 현실성이 없게 되어 부득이 북한 측 인물을 주인공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게 엄철우입니다. 기본적으로 북한의 엄철우는 제임스 백의 변주입니다. 강경 군부와 함께 산화하는 희생적인 결말도 같습니다.


Q. <스틸레인>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굳이 <강철비: 스틸레인2 FULL STORY>과 영화를 동시에 진행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A. 일단 상황이 너무 변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내용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틸레인> 연재 초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전쟁 위험이 높아졌고,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는 등 북의 정치적 지형도가 바뀌었기 때문에 각색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강철비>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거의 재창작을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스틸레인>의 주제를 그대로 계승하긴 했지만 영화에서 설정이나 디테일이 많이 달라졌기에 새로운 웹툰이라고 받아들여주시라는 뜻에서 제목도 <강철비: 스틸레인2 FULL STORY>로 바꾸었습니다.

Q. 말씀하신대로 시의성이 강한 이야기인 만큼 급변하는 정세에 맞춰 세세한 조정이 진행되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정국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점은 무엇인가요.
A. 영화 <강철비>의 지향점은 한반도의 평화였습니다. 전쟁을 막기 위한 대화와 협력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려운 것보다는 <강철비>가 소망하고 소원했던 상황이 현실이 되어 너무 기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보통 영화를 기획하고, 만들고, 개봉하는데 몇 년이 걸립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인데 그 기간 동안 점점 커져만 갔던 여러 가지 위기 상황 속에서 가상의 상황을 그려나가는 저조차 먹먹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남북회담을 성사시킨 분들도 아마 그 숱한 위기를 직면하며 먹먹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지금의 평화 분위기를 만들어내신 데에 대해 격려와 감사를 드립니다.

Q. 웹툰의 후반부는 영화 개봉 후에 연재되었습니다. 영화를 충실히 따라가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은데 이야기를 바꾸거나 영화에서 못 다한 캐릭터들의 에피소드를 좀 더 추가하고 싶은 부분은 없으셨나요.
A. 웹툰 역시 기획에서 제작을 거쳐 실제 독자분들게 선보이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립니다. 그런 이유로 개봉 전에 미처 연재를 다 마치지 못했었습니다. 대신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덕분에 영화에서 시간상 편집된 부분들이 웹툰에는 편집 없이 거의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미처 넣지 못한 부분들을 추가해 감독판을 만들기도 하는데 것이 저에게는 웹툰이 영화 <강철비>의 감독판이나 다름없습니다.

Q. 핵 균형을 통해 평화를 이루는 도발적인 상상력에 대해 다양한 반응이 있었습니다.
A. 지난 수 십 년간 외교전문가들은 한반도 위기 상황의 해소방안에 대해 4가지 시나리오를 예측했습니다. 첫 번째 북한에 대한 제재가 북한내부 동요를 일으켜 북한이 쿠테타나 민중 봉기로 붕괴되는 방법, 두 번째 제한 혹은 전면 전쟁을 통해 미국이 북의 핵과 지도부를 제거하는 방법입니다. 세 번째는 북한이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나와 외교적으로 비핵화를 이루는 방안입니다. 마지막으로 남한도 핵을 무장해서 북한과 핵균형을 이루고 북이 유사시 핵으로 선제공격하는 길이 있습니다. 이른바 북한 핵을 인도-파키스탄처럼 지역적인 핵무기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전문가들은 4가지 시나리오 중 가장 가능성이 낮은 길로 북한의 비핵화를 꼽았습니다. 여기엔 각국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습니다. 북한과 미국 사이 불신의 벽은 너무 높고, 중국은 완충지대를 유지하기 위해 북한을 지원할 수밖에 없는데다 미국의 군산복합체도 위기가 고조될수록 무기판매에 유리합니다. 이러한 정황들을 비춰볼 때 붕괴와 전쟁이 아닌 방식으로 상호 핵무장을 고민해보자는 곽철우의 의견은 차라리 현실적이었습니다. 외교안보 담당인 곽철우가 국가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겁니다. 바로 얼마 전 까지는 말이죠. 때문에 지금의 평화가 얼마나 어렵게 오게 된 건지 이 작품을 통해 새삼 반추해 보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Q. 영화와 웹툰, 두 매체를 모두 경험하셨습니다. 스토리텔러로서 어떤 매체가 좀 더 몸에 맞는 옷처럼 느껴지나요. 영화와 웹툰 각각의 장단점을 간략하게 짚어주신다면.
A.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영화는 시간예술이고, 웹툰은 어찌되었든 지면 예술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부연 설명하자면 영화는 무조건 시간이 흘러가면서 감상하는 예술입니다. 음악처럼 말입니다. 반대로 웹툰은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으면 얼마든지 오래 멈출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지루하거나 싫은 부분은 얼마든지 생략하고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박물관에서 미술품을 감상하는 감각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우실 겁니다. 요컨대 관객(독자)의 조건이 각각 시간과 공간(지면 혹은 디스플레이)에 의존한다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창작할 때 고민하는 지점이 좀 다릅니다. 우선 영화는 상영시간을 계산해야 합니다. 한편 웹툰은 영화보다는 훨씬 소수의 인원이 훨씬 적은 비용으로 완성할 수 있습니다. 가성비 면에서 영화보다는 유리한 셈이죠. 때문에 저도 앞으로 연출할 영화의 수보다는 웹툰이나 웹소설을 훨씬 많이 창작할 것 같습니다.

Q. 영화와 웹툰 동시 진행이라는 독특한 사례를 남겼습니다. 앞으로도 비슷한 사례들이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을까요.
A. 물론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계속하려 합니다. 콘텐츠의 시대라고들 하지만 거꾸로 콘텐츠 산업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스마트폰은 모든 세상이 연결시키는 통로가 되었지만 반대로 그것 때문에 발생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스마트폰으로 집중되다보니 마케팅 비용의 증가에 비해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정도가 약해지는 겁니다. 이런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선 콘텐츠 자체를 마케팅의 도구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하나의 콘텐츠가 복수의 미디어로 독자 또는 관객들과 만나는 건 선택이 아닌 필연이라고 생각합니다.

Q. <강철비>, <신과 함께> 등의 흥행으로 다시금 웹툰의 영화화에 불이 붙고 있습니다. 네이버웹툰이 영화제작에 나서는가 하면 새로운 투자 배급사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A. 영화인으로써 새로운 배급사가 늘어난다는 점은 반갑고 환영할 일입니다. 다만 노동환경 및 미디어 환경이 변하면서 영화산업은 확실히 더 힘들어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 분명한 변화에서 눈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위기(危機)라는 말은 위험(危險)과 기회(機會)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영화산업은 ‘위기이면서 기회다’라는 말이 딱 어울릴 것 같습니다.

Q. 좋은 스토리란 무엇일까요. 좋은 스토리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A. 어렵네요. 제게도 남은 평생 동안 고민해야할 화두인지라 감히 뭐라 단언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스토리를 만들 때 항상 스스로에게 질문을 멈추지 않습니다.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가 무엇일까? 좋던 싫던 세상의 모든 스토리는 저널(언론)의 기능, 정보전달의 면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왕이면 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를 발굴하고 싶고 가능하다면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Q. 신작 소식이 궁금합니다. 영화잡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강철비>가 망하지 않아야 차기작을 생각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완성도에 비하면 아쉬움이 있지만 의미 있는 스코어를 거뒀습니다. 어떤 작품을 구상하고 계신지. 웹툰 <봉이 김선달>은 영화화 계획이 없나요.
A. 다행히 <강철비>는 정확하게 손익분기점을 달성했습니다. 이익은 없었지만 다행히 손해를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질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며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웃음) 이번에도 역시 웹툰과 영화로 동시에 찾아뵈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마 웹툰이 영화보다는 조금 더 빠르게 선보일 수 있을 겁니다. <봉이 김선달>은 관객과 만날 더 좋은 시기가 언제일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기회가 온다면 놓치지 않을 테니 여유 있게 기다려 주시길.(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