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마사무네(士郞正宗)의 만화를 읽는 일은 종교적 인내를 필요로 한다. 어떤 의미에서 시로의 만화를 읽는 일은 종교 의식에 가깝다. 무엇보다 시로 마사무네를 둘러싸고 있는 아우라가 종교의 교조적인 속성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오직 SF라는 한가지 장르만을 추구하는 집요함도 그렇고, 시로 마사무네라는 이름에 깊이 빠져들지 않으면 좀처럼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도 그렇다. 언뜻 보면 익숙한 캐릭터 같지만 그림은 복잡하고 전반적인 내용은 무겁게 느껴진다.
시로의 만화가 어렵다는 것은 이미 보편화된 개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로 마사무네는 지구상에 SF만화가 존재하는 한 결코 피해갈 수 없는 이름이다. 『애플시드』,『도미니언』,『오리온』,『공각기동대』 같은 시로 마사무네표 만화들은 분명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정복하지 않으면 안되는 오만하고 경이로운 험산의 정상과도 같다.
어린시절부터 데즈카 오사무나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SF 작품에 빠져있던 시로 마사무네는 거기에 등장하는 사이보그, 인조인간, 로봇 등을 통해 비주얼 쇼크를 경험한다. 설득력있는 표현력과 그런 표현을 가능케 해주는 고도의 기술력에 감동했던 시로는 이후 오사카 예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게 되고 재학시절인 1983년 『블랙매직』을 아마추어 동인지에 발표하면서 만화를 시작한다.
1985년 정식 데뷔작인 『애플시드』는 황폐해진 미래의 지구를 진단한 액션 대작으로 이 작품을 통해 시로는 독특한 스타일의 SF작가로 주목받게 된다. 3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해진 지구는 바이오로이드의 지배를 받게 되고 올림프스 시티에 지구 재건 계획이 추진된다. 여기에 반대하는 세력들의 쿠데타와 테러가 자행되는 등 미래 지구의 일상이 방대한 양의 정보와 복잡한 구성으로 표현된다. 이후 시로의 만화는 미래 지구의 운명과 인간의 일상을 천착한 주제, 설득력있는 무기와 메카닉 디자인, 액션 장면의 강렬한 연출, 디테일한 장면 묘사 등을 일관성 있게 보여준다.
시로 마사무네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역시 인류의 암울한 미래에 대한 성찰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 다양한 생명체들간의 갈등을 통해 불안한 지구의 미래 세계를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여느 SF만화들과 다를 바 없지만 그 냉소주의 이면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우선 시로의 작품에 등장하는 미래 공간은 낯설고 새로운 세계가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하고 일상적인 곳으로 묘사되어 있다. 인간 의식마저도 프로그래밍화 되고 생명체 간의 전투가 계속되는 비인간화의 공간인 『애플시드』의 올림프스나 치명적인 바이러스와 오염으로 인해 바다는 모래로 변하고 박테리아가 우글거리는 『도미니언』의 뉴 포트 시티, 그리고 범죄와 살인의 천국으로 불리면서 테러와 가혹행위가 만연하는 『공각기동대』의 해상도시 뉴 포트 시티 역시 디스토피아로 인식되지만 어떤 의미에서 그 곳은 현재 인간들의 삶과 별로 다를 게 없는 보편적 사고와 행위가 존재하는 일상적인 공간들이다. 과학문명을 앞세운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도전이 야기시킨 황폐해진 공간에서 의사 인간체들과 공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인류의 어두운 미래를 냉소적으로 보여 주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은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과 인간성 회복을 함축하고 있다.
시로가 미래 세계를 결코 우울하고 불안한 분위기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반증은 시로의 작품들이 바이오로이드나 사이보그, 안드로이드 같은 다양한 의사 인간체와 인간의 관계를 대립과 갈등의 구도로만 묘사하고 있지 않다는데서 찾을 수 있다. 다양한 유형의 의사 인간체들은 마치 여러 인종, 여러 민족이 크고 작은 분쟁과 시련을 경험하며 지구에서 공존하고 있는 것처럼 미래 세계에서 인간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작품의 곳곳에서 무겁고 심각한 주제를 경쾌하고 때론 가볍게 그려내는 것에서도 시로의 그런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미래세계가 어떻게 변모하고 어떤 운명에 놓일 것인가를 끊임없이 다루어 온 시로의 작가적 의지는 오시이 마모루의 애니메이션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한 『공각기동대』에서 집약되어 나타난다. 냉소주의는 여전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불안하지도 비극적이지도 않다. 기계문명과 인공지능의 발달이 절정에 이른 미래 사회에서 공각기동대를 이끌고 무장 테러와 해커, 흉악범죄를 자행하는 쿠사나기가 사이보그인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나 모든 가치관이 전도되고 인간성마저 말살된 암울한 상황이지만 여전히 희망은 존재하며 또 다른 인류의 진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에서 인류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려는 시로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공각기동대』 역시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방대한 양의 정보를 토대로 한 무거운 주제와 복잡한 구성을 자랑한다. 특히 작품에 등장하는 용어의 해설이나 상황 설정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주를 붙여야 할만큼 난해한 부분들이 많은데 시로의 작품 세계가 SF는 물론 종교, 철학, 외교, 법률, 군사, 의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을 토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이것 역시 시로 마사무네의 만화가 갖는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공각기동대』의 작가 후기에 실린 시로 마사무네의 한 마디는 미래 세계를 추구하는 그의 작품의 주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전기, 컴퓨터, 마이크로머신과 발전하는 과학에 대해 SF가 언제까지나 세기말적 권태만을 그릴 수는 없을 것이다. 미래는 밝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