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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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아키 히토시

사람들은 누구나 엉뚱한 상상을 하는 때가 있다. 그 상상들 대부분은 어느 사이 흔적도 없이 기억으로부터 멀어지지만, 가끔 현실로 만들어가는 이들도 있다. 바로 창작자들이 그렇다. 이들이 실현시키는 상상의 세계는 때로 기발하기도 하며 때로 섬뜩하기도 하고 혹은 잔혹하기조차 하다.

2006-06-01 김미진

 이와아키 히토시
사람들은 누구나 엉뚱한 상상을 하는 때가 있다. 그 상상들 대부분은 어느 사이 흔적도 없이 기억으로부터 멀어지지만, 가끔 현실로 만들어가는 이들도 있다. 바로 창작자들이 그렇다. 이들이 실현시키는 상상의 세계는 때로 기발하기도 하며 때로 섬뜩하기도 하고 혹은 잔혹하기조차 하다. 만화를 통해 이러한 면면들을 모두 드러내는 이가 있다면 ‘이와아키 히토시’라고 말하고 싶다.

잔인함, 그 속에 감추어진 진실



히토시의 대표작은 뭐니 뭐니 해도 <기생수>다.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애프터 눈>이라는 일본 만화잡지에서 연재된 이 작품은 인간의 몸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외계 생명체가 인간의 의지를 맘대로 조정함으로써 인간보다 오히려 상위에 존재하게 되는 설정을 지닌다. 이성적이고 잘 다듬어진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뇌 속에 사실은 상상할 수도 없는 끔찍하고 파괴적인 생명체가 기생할 수 있다는 가정. 이 잔인한 상상력을 통해 히토시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도 힘든 세상의 모습을 그려나간다. 하지만, 표면적인 잔인함 뒤에 도사리고 있는 진실은 바로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파괴적인 세상에 대한 비판이며, 파괴적인 인간들의 행동에 대해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잔인함을 통해 도리어 인간의 잔인한 행위와 오만함에 관해 각성을 촉구하는 히토시의 상상력. 그는 만화가 보여줄 수 있는 세계(世界)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상상, 그 이상의 치밀함



단순히 ‘기발하다’라는 단어로 그의 상상력을 정의하는 것은 히토시의 작품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뜻한다.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작가의 속내를 살피기 위해서는 독자 역시 그만큼 ‘상상’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기생수>에서 보여줬던 새로운 종족에 대한 그의 바람은 <칠석의 나라>로 이어진다. 어떤 물체라도 구멍을 만들 수 있는 인물이 등장하며, 그 신비로운 능력은 바로 인류가 아닌 새로운 종족의 탄생을 의미한다. 거기에서부터 ‘손이 닿는 자’, ‘창을 여는 자’ 등 히토시 스스로 새로운 개념들을 만들어 나간다. 이 같은 상상력이 독자들에게 흡입력을 지니게 되는 이유는 스토리의 탄탄함, 바로 이야기의 내적 완결성에 있다.


치밀함, 그 속에서 내재된 메시지



최근에 히토시가 보여주는 만화적 재미는 <기생수>나 <칠석의 나라>에서 보여준 그것과는 또 다르다. 단편 <유레카>에서 보여준 역사에 대한 재해석은 아마도 장편 <히스토리에>를 준비하기 위한 토대였다고나 할까. 그만큼 <히스토리에>가 만들어가는 재미는 만화가 지니는 가능성의 또 다른 확장이라고 할 만하다. 고대 알렉산더 대왕 시절의 실존인물 에우메네스에 대한 일대기를 펼치면서 히토시는 오늘날의 사람들이 가보지 못한 세계를 치밀하게 재구성해나간다. 그러면서도 놓치지 않는 것은 히토시만의 메시지, 바로 새로운 인류에 대한 희망이다.

같은 인간이지만 귀족과 노예로 구분되는 신분사회에서 이질적인 에우메네스의 존재는 그 자체로 새로운 인류가 될 가능성을 보인다. 기존 사회질서의 틀을 부술 수 있는 새로운 종족 말이다. 그렇다면 히토시는 오늘날 현실 속의 인간들도 새롭게 재탄생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인간의 육체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지만 인간과 어울려 함께 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한 <기생수>의 오른쪽이처럼, 파괴와 전쟁을 일삼는 인간들이 아닌 화합하고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인류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