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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탐미로의 길잡이 성완경 교수와 만나다

언젠가 길을 가는 도중 흥미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여느 보통이 여학생의 무리가 지나가는데, 그중 친구들의 언쟁의 대상이던 한 학생이 “어...삐질”하면서 한 손으로 이마에 난 땀의 모습의 제스추어를 취하는 것이 아닌가.(이밖에도 현실에서 나타나는 만화의 표현양식은 다양하다. ‘코피를 흘리는 모습’을 나타낸다던가 하는 것처럼 말이다) 만화는 아직도 ‘불량품’이나 ‘시간 보내기’용으로 읽혀진다. 그러나 이같이 현실에 투영되어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 단순히 치

2002-06-01 정혜경
만화탐미로의 길잡이 성완경 교수와 만나다

언젠가 길을 가는 도중 흥미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여느 보통이 여학생의 무리가 지나가는데, 그중 친구들의 언쟁의 대상이던 한 학생이 “어...삐질”하면서 한 손으로 이마에 난 땀의 모습의 제스추어를 취하는 것이 아닌가.(이밖에도 현실에서 나타나는 만화의 표현양식은 다양하다. ‘코피를 흘리는 모습’을 나타낸다던가 하는 것처럼 말이다) 만화는 아직도 ‘불량품’이나 ‘시간 보내기’용으로 읽혀진다. 그러나 이같이 현실에 투영되어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 단순히 치부하기에는 미심쩍다.

27일. 카메라와 가방을 달랑 둘러매고 인터뷰를 위해 인천으로 향하는 지하철역에서는, 이후의 만남에 대한 설렘과 기대, 그로 인한 긴장으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같이 동행하는 만화가 선배는 만화에 대한 생각, 인터뷰에 대한 고민을 되내이라며 조언했지만, 성완경 교수(인하대 미술교육ㆍ부천만화정보센터 이사장)를 만나러 가는 길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 여정이었다. 30년 전 만화에 빠져든 후, 지금까지 ‘만화사랑’을 실현하고 있는 성완경 교수는 그동안 세계의 만화를 탐사하면서, 만화의 다양성과 한국의 만화 독자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만화의 예술적 측면을 이야기한다.

"만화가 보여주는 시각적 서사의 다양성과 그 그림의 표현미학적 질과 실험성은 현기증이 나리만큼 대단하다. 만화는 지난 한 세기 동안 20세기 대중문화의 중요한 한 형식으로 자리잡았을 뿐 아니라 예술형식 및 장으로서의 가능성 탐색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이제는 만화를 예술로 규정짓는 일이 전혀 놀라운 일이 못된다." 인터뷰 중간에 나오는 것처럼, 선생은 전문적으로 만화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화라는 장르의 ‘경이로움’을 쉽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Q. 미술평론가로서 만화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게 하는 요인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원시절 만화를 접하게 되었다고 들었는데, 어떤 만화들을 접하셨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만화 매니아적인 독자는 아닙니다. 약간 느슨한 애호가라고 할까요. 폭넓게 보면, 만화를 비롯한 사진, 만화, 건축, 심지어는 연극, 영화까지 미술이 확장되어간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측면에서 관심을 가지게 된 거죠.두 번째는 잘 만든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게 되고, 만화에 대한 중독증이 아닌, 훌륭한 것이 주는 놀라움, 신기함에 끌려 만화를 보게 된 거죠.
만화를 접했을 때가 71년,72년 대학원 다닐 때로 프랑스문화관에서 영화담당으로 일을 하고 있었을 때였죠. 당시 누벨바그 영화가 유행하던 시기였는데, 영화 이외에도 프랑스 ‘저자(著者)만화’의 최초의 황금기였어요. 프랑스 68학생운동 이후였으니까, 뛰어난 작가들이 많이 배출되었지요.
작가들을 보면 뫼비우스, 빌랄, 멧지에, 여성작가로 브레테세, 코트리브 등 많았지요. 만화 속에 표현된 비판정신, 자유정신, 실험성을 보고 놀랐죠. 지금도 만화에 모두 가 있다기 보다는 느슨하게, 만화를 보면서 놀라운 아이디어, 그림, 표현능력, 창의력에 감탄하는 것이 많습니다.

Q. 그 시절 만화에 대한 애정이 싹텄고,「세계만화탐사」는 그 연장선상이라고 보면 될까요.
A. 프랑스 유학시절, 나는 파리국립장식미술학교와 함께, 만화강좌가 처음으로 개설된 파리 8대학(68운동 이후 생겨난 대학으로 좌파적 시각이 강한 대학)을 동시에 다녔는데 당시 멧지에와 뫼비우스 등이 강의를 했고, 그때 들었죠.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후 느슨하게 (만화를) 하다 83년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에 가 보게 되었죠.(연조가 내년이 30주년으로 깊죠) 그런데 그곳에서 본 만화전공학과의 작품전을 보게되었는데, 그들의 실력이 뛰어났습니다. 재미있고, 자유분방하고 실험정신이 느껴졌습니다.(한 예로 레코드판에 사는 인간이라는 주제, 경찰을 주제로 한 경찰만화전, 그린피스 지원을 위한 주제로 된 연극 등)
90년대 들어서 앙굴렘에 자주 가게 되었고, 개인적으로 자료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한번에 8~10박스씩 사왔던 것 같아요. 이와 함께 국내에서 한국종합예술학교의 영상원이 생기면서 만화?애니메이션 전공과목도 생기고 ‘만화읽기’(이는 만화의 문화적 코드, 분석적 읽기를 위한 교과목)나 ‘애니메이션?글쓰기’과목을 강의도 했지요. 또한 인하대학교, 민예총, 한겨레문화센터 강좌에서 만화관련 수업을 하면서 그동안 모아 두었던 자료를 다시 꺼내 보게 되었지요.
이와 맞물려 4년 전에「주간동아」의 전신인「뉴스플러스」에서 ‘성완경의 세계만화탐사’라는 책과 같은 제목의 칼럼을 25회 정도 연재하게 되었는데, 그동안 재미있게 읽던 책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죠. 나의 경우는 책을 천천히, 꼼꼼히 읽는 것을 즐기는 편인데, 연재하는 시기가 그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던 시기였죠. 그렇다고 만화의 예술적 가치만을 즐기고, 유머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고틀리예브’ ‘레제르’ 등의 유머를 좋아합니다. 책은 당시 썼던 것을 정리, 보충해서 책을 내게 된 것입니다.

Q. 만화에 대한 학술적 비평들이나 연구들이 있어야 이론이 쌓이게 되는데, 우리 나라에는 이런 역할을 하는 이들의 수가 적습니다.
A. 만화를 미학적 연장선상에서 보는 이들이 없어요. 문학이나 영화로 철학을 이야기하거나 하는 것은 많은데 만화는 사각지대입니다. 만화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없죠. 문학 이론가 오규원 씨,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씨가 그런 작업을 했었으나 적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그런 연구하는 이들도 많아졌어요. 웹진「두고보자」의 김낙호씨, 이명석씨, 박인하씨 등, 프랑스에서 만화로 학사를 준비하는 한상정씨, 미국의 린트 교수(이는 주로 아시아권, 제 3세계 만화에 정통하죠)들의 등장은 때늦은 감이 있으나 반가운 현상입니다.

Q. 창작에 대한 비평의 싹이 움터야 기반할 것입니다. 유럽만화는 이에 대한 기반이 탄탄히 쌓여 있어서인지, 우리 나라에 예술의 개념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 나라 만화에서 저자주의 만화의 움틈임은 없었는지요.
A. 서베이가 많지 않으나, 20대 중후반의 젊은 저자들을 보면 흥미롭게 느낍니다.
영상원의 박희준씨가 북디자인 교과에서 과제를 주었는데, 만화를 주제로 북디자인을 한 것입니다. 아주 다양한 결과물들이 나왔지요. 폭넓은 관계 속에서 1:1 대응은 아니겠지만 예술적 실험은 서서히 일어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일본만화 종속에서 다변화하고 있는 것이지요.

Q. 만화에 대한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부천만화정보센터의 역할과 함께, 기대도 높다고 생각하는데요.
A. 현재 지자체 단위(인구 70~80만 사이) 부천시의 문화사업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일의 중요성과 역할은 국립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앙굴렘의 ‘국립만화영상센터’처럼 말이지요. 불량, 검열도장으로 상징되듯, 만화는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처럼 만화를 문화적으로 수용하는 방패막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하나는 광대한 시각문화의 거대한 창고이며, 융합이 일어나는 만화는 21세기의 문화로 거대한 핵융합의 핵심중의 핵심입니다. 스토리텔링(미술, 영화, 멀티미디어를 꿰뚫는)과, ‘씬에스테시아’(공감각적 예술-냄새, 향기, 기억, 영상의 공감각적 환기력이 크다)의 요소가 있기 때문이죠. 만화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는 나같이 만화를 처음 시작하지 않은 이들이 그런 것을 더욱 느낄 수 있죠.

부천만화정보센터는 회화의 현대미술관 같은, 만화박물관이 스토리텔링 아트 같은, 교육프로그램에서 녹여 들어가야 합니다. 유통구조나 법률도 토론 등을 통해 환경개선을 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합니다. 비록 국립은 아니나 부천에서 시작한 것이 다행이지 않나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큰 야심으로 새로운 것을 가져야 하고, 한편으론 큰 난관(현 시스템이 정비없이 오래 갈 것인가) 등에 대한 새로운 각오가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 이제 광주 비엔날레가 끝나니까 새로운 각오로 발전방향을 모색해야죠. 데이터베이스를 보다 꼼꼼히 하구요.
우려할 것은 만화 일을 만화계 내부에서만 하는 거죠. 조금 더 시각확장이 필요합니다. 만화로 학술적, 비평적으로 문화기획 전문가, 다른 장르 예술가들의 공동참여도 가능합니다.
내년에 프랑스에서 하려는 한국만화특별전도 그런 의미인데, 문화컨텐츠진흥원이 진행하고 각종 만화단체와 센터, 문광부, 출판계가 참여한 회의에서, 특별전의 총괄 큐레이터로 결정되었는데, 모범이 되어야 겠죠.
새로운 구조를 협업형식의 형태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내년에는 ‘국제학술대회’도 열릴 예정입니다. ‘한국영상학회’와 ‘만화?애니메이션 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행사로, 발행 10주년이 되는 스콧 맥클루드의「만화의 이해」에 대한 평가 등을 진행하는 인문학적이고 구체적 학술대회가 될 것입니다.

Q. 우리 나라는 만화를 예술의 한 장르라기 보다는 ‘휴식’과 ‘오락’의 기능으로 봐온 측면이 강합니다. 그래서인지 지난 4월 문화방송의 한 오락프로그램에서 나온 ‘만화 비하표현’이 문제화되고 있는데요.
A. 얼마 전 온ㆍ오프로 수업이 진행되는 ‘만화의 이해’ 시간에 보았습니다. 20분 정도 보았는데 분개 했다기 보다는 책의 공식적 지위나 이미지와 달리 만화가 갖는 대중적, 하위 문화(그러나 실제하는)를 긍정적으로 측면도 있습니다.
만화의 특성을 대중적이고 친근하고 코믹하게 보여준, 그러나 무식하지 않은 성격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합니다. 만화란 특성을 잘살려서, 생생하게 보여준 것 같습니다. 일부 언사는 사과 받아야 할 것도 있지만 무조건 폄하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가벼움, 역동성이 있기에 1:1로, ‘왜 책에 비해 홀대하느냐’라고 다가가는 것은 반대합니다.
만화가 대중적이며 가벼움과 역동성이 있는 존재로써, 널널하게 봐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Q. 현재 많이 팔리고 있는 책들의 대부분은 일본만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ACA(아마추어만화동아리연합)는 아마추어지만 일본만화의 영향을 많이 받을 곳입니다. 이와는 다른 인디씬에서 활동하는 주위의 작가들을 보면, 만화는 예술성이 담보되어야 한다며, 이런 시류를 걱정하는데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A. 양쪽을 다봐야 할 듯합니다. 문화적 상대성으로, 한국의 만화 수준이 높다 아니다가 아니라 만화 수용자의 반응(채화하고 반응하는 것이 독특성)의 직접성, 독특성을 봐야 합니다.

Q. 한국만화를 이끌어 가고 있는 만화 창작자 외의 중요역할이 비평자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비평?평론에 대한 위치나 규정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앞으로 해야 할 과정은 무엇일까요.
A. 학교에서 강의를 하면 학생들이 만화를 읽고 이야기하는 스타일의 수업방식을 즐깁니다. 수평적 대화자리가 필요할 듯 합니다. 대등한 수용자끼리 진지하게 이야기, 합의를 이끌어 내는 자리가 생겨야죠. 책 저술할 때 여러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바른 저술이 되지 않습니까. 영상원 수업을 할 때「두고보자」의 김낙호씨 초청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만화의 칸 나누기를 어려운 말이 아닌, 식빵의 예를 들어서 아주 쉽게 설명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도 보다 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구요. 이런 것이 수평적 대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만화수용자한테 훨씬 효과적으로 다가가고 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온라인 강의를 통해서 공동저술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Q. 만화의 팽창과 더불어 많은 만화학과가 신설되었으나, 직접적인 만화 세계와 연결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A. 앞으로 해결될 과제입니다. 게토화(격리화)되는 것이 위험하죠.
지난해 우만연의 인사동 전시회를 봤는데, 방어적이고 메저키스트적이었습니다. 자조적이고, 이를 뛰어넘는 기획이 필요하죠. 벗어나려는 의식도 필요하구요.

Q. 앞으로 어떤 계획은
A. 내년 프랑스 앙굴렘에서 ‘한국만화특별전’을 하고 여름이나 가을 정도에 파리에서 전시회를, 2004년에는 동아시아 삼국, 한자문화권을 엮는 만화 전시회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려는 것이 미술영역을 바탕하기 때문에, 전시회를 통해 풍부히 다가가려 합니다. 또한 수요자들과의 대화의 재정비와 한국?일본만화 신중하게 연구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 국립만화영상센터(CNBDI)
프랑스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과 더불어 ‘만화도시’ 앙굴렘의 자랑거리중의 하나이다. 1990년 설립되었고, 만화박물관ㆍ만화정보자료관ㆍ디지털이미지센터의 기능을 하고 있다.
개관 이후 중요작가와 조류를 소개하는 수 십건의 전시회를 진행하였고, 많은 출판물 및 시청각 자료를 출간했다. 다양한 계층과 연령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육 및 활성화 프로그램이 있으며 센터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만화에 대한 인식과 감수성을 새로이 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평이다.

::::: 성완경 교수 주요약력 :::::
성완경 교수는 대전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회화과와 파리국립장식미술학교 벽화과를 졸업했으며 1979년「현실과 발언」의 창립동인으로 작가활동과 평론활동을 시작했다.
1988년 뉴욕시 아티스트 스페이스의「민중미술-한국의 새문화운동」전 공동 큐레이터, 93 후쿠이 비디오비엔날레 커미셔너, 95, 97 광주비엔날레 국제전 커미셔너, 99뉴욕시 퀸즈 뮤지엄의「세계의 개념주의: 다양한 기원들 1950년대-80년대」전 공동큐레이터 등 여러 국제 현대미술전을 기획했다.
현재 인하대 미술교육과 교수이며, 한국영상문화학회 회장 ,부천만화정보센터 이사장, 2002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이다. 최근에는 만화 등 영상문화 일반에 관한 학제적 연구의 조직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편이다. 내년에 프랑스에서 열리게 될 한국만화특별전의 총괄 큐레이터로 최근 지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