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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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일

어린 시절 만화가가 되고 싶은 꿈을 간직하고 오랫동안 지켜오다, 나름대로 지난한 과정을 통과해 드디어 만화가가 되었다. 자,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그릴 것인가. 종이는 하얗고 먹은 검다... 자격증도 없는 만화가란 직업을 스스로가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나는 어떤 직업관을 가질 것인가... 여기서 만화가는 다시 고민에 빠진다...

2005-05-01 김대중



어린 시절 만화가가 되고 싶은 꿈을 간직하고 오랫동안 지켜오다, 나름대로 지난한 과정을 통과해 드디어 만화가가 되었다. 자,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그릴 것인가. 종이는 하얗고 먹은 검다... 자격증도 없는 만화가란 직업을 스스로가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나는 어떤 직업관을 가질 것인가... 여기서 만화가는 다시 고민에 빠진다. 만화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그 이야기는 자신에게서, 세계 속에 존재하는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며, 따라서 자신과 세계에 대한 시선을 정리하고 돌아보는 것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고영일, 그는 그렇게 첫 발을 내딛기로 단단히 맘먹었다.




- 노틀코믹스 중에서


Q. 얼마 전에 스위스 뤼체른 만화페스티벌에 다녀오셨죠...?
A. 기대하지 않은 여행을 떠나게 되었고, 또 거기서 기대하지 않은 만남을 가졌고... 아주 즐거웠습니다.  


Q. 여행 후 좀 붕 떠 있는 것 같은데...
A. 아니에요... 겉모양과는 달리 맘은 정리가 되는 것 같아요. 보두앵을 만난 게 도움이 됐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천재일우, 천우신조 같은 일이었는데... 거기 올 거라는 건 알았지만, 정말로 보게 되리라고는 생각 못 했거든요. 그를 만나고 대화하면서 그림 그리는 데에 있어서 뭔가 좀 틈이 보였다고 할까? 여하튼 그랬습니다...  


Q. 틈?
A. * <푸른 끝에 서다> 를 준비하면서 그림에 많이 신경 썼죠. 근데 뭔가 늘 답답했는데... 원화들과 함께 보두앵이 그리는 모습을 직접 보니까... 백 마디 말 듣는 거보다... 뚫리는 기분이었죠. ‘아... 이렇게 하는구나. ...그랬습니다. 나에게 몇 가지 작업의 팁을 알려주었는데... 그러니까 천천히 또박또박 긋는 선, 흑과 백의 균형, 그리고 꼼꼼하게 생각하고 계획하는 그림 또... 늘 손에서 펜을 놓지 않고 꾸준히 그림 그리는 것, 이런 것들이었죠.  



  △ 푸른끝에서다 


Q.  작업 중인 <푸른 끝에 서다> 에 대해서 잠깐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학생운동의 경험을 그린 만화잖아요. 자기 경험을 그린다는 게 쉽진 않은 일일 겁니다. 
A. 전에 운동했던 선배들을 보면 부끄럽죠. 함부로 운동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기 힘들어요. 제가 93학번이었으니까 그 전 세대처럼 뭔가 두드러지게 보여줄 성과가 있는 게 아니니까요. 더 일찍 만화로 옮겼으면 좋았을 텐데 이제야 하게 됐습니다.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어쨌든 더 지났다간 아예 그 때 일들이 기억에서 모두 지워져 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한 일 년 정도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지금까지 4회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
작업을 하는 과정이 곧, 제 자신을 찾고 상처들을 객관적으로 보는 과정이 되는 것 같아요. <푸른 끝에 서다> 를 처음 시작할 때 주변에서는 늘 객관적으로 작품을 그리라고 들었는데, 진행하면서 저를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것 같네요.  


Q. 그렇게 본 자신은 어떻던가요? 어떤 사람이던가요?  
A. 많이 여리고 상처도 잘 받고... 약한 사람이죠. 저는 아주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그렇지 않더군요. 군대 가기 전엔 제가 독립운동가인 줄 알았죠...  


Q. ‘작품을 통해 자신을 본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요?  
A. 한 명의 인간으로서 어딘가 떠나기 위해서는 내가 있는 위치를 알아야지 방향을 결정할 수가 있겠죠. 또 그 반대이기도 하고요. 만화가 인간으로서 나에게 그런 역할을 해 주는 게 지금으로서는 가장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만화라는 것은 저에겐 한 방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X 같이 살면서 만화는 따뜻하게 살자고 하는 것은 좀 그러니까요.나에 대한 만화를 그리면서, 제 스스로를 많이 조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스운 얘기지만, 담배 꽁초 하나에도 신경을 쓰는 거죠. 나는 약한 사람이지만, 작품이 부끄럽지 않게 하려는 겁니다. 제 만화와 저의 삶이 일치되길 희망하는 거죠. 그렇다고 내가 착하게 산다는 말은 아니고, 지금 엉망이면 난 이러이러해서 엉망이다, 제 자신을 고백하고 들여다보게 됩니다. 



 



     △ 푸른끝에 서다 4화 


Q. 앞으로 만화 속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가요?  
A. 하고 싶은 이야기는 수없이 많죠. 우선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착하게 살려고 하는데 그럴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그리고 싶어요. 저는 제 주변에서 그런 삶들을 많이 봐요. 저는 그것의 가치를 따지기보다는 그에 대한 고백적인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작년에 했던 ‘젊은 그대라는 이야기에 애정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Q. 헌데 순환적인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솔직하고, 고백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을 둘러싼 세계관에서 나온 작품이라는 거죠.  
A. 그렇겠죠.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인정합니다. 작업하면서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 그런 생각도 들지만, 아까도 얘기했듯이 내가 사는 모습과 내가 그리는 만화가 한 가지가 되려고 노력하고, 그러한 의식의 깨어 있음을 항상 유지하는 게 우선 중요하다고 봅니다.  




△ 젊은그대


Q. 이전의 <엄마 없는 하늘 아래> 같은 만화에서 요즘에 사실적인 이야기로 바뀌면서 그림도 무게가 생긴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너무 이미지가 무거워지면서 이야기가 전처럼 물 흐르듯 하지 않다는 느낌도 있고요...  
A. 네, 맞아요. 아무래도 그 때 생각도 많이 나고 내 감정에 몰입하다 보니까 무거워질 때가 많아요. 그리고 다른 일들로 작업을 꾸준히 하지 못하니까 흐름이 끊기는 느낌을 받는 것이 사실이죠. 저도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 봅니다. 그냥....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듯이... 사실 쉬운 얘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엄청 괴롭거나 헤쳐 나오지 못하거나 하진 않으니까 말이죠. 



△ 엄마없는 하늘 아래 중에서   


Q. 우리 만화는 <푸른 끝에서 서다> 와 같은 만화가 없었잖아요. 아직 얘기가 많이 나오진 않았지만. 우리 만화문화에 있어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거라고 기대가 됩니다. 새로운 소재와 스타일이죠.  
A. 그렇게 된다면 영광이죠.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만화 문화에서는 다소 새로운 것 아닐까 생각이 드는데요. 우선 내가 안에 갖고 있는 것들을 다... 그리고 잘 풀어내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Q.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까요? 계획은...?  
A. 한 5회까지는 실험한다는 각오로 임했으니까... 한 회 남았네요 앞으로 제가 기무대에서 조사받고 영창에 들어가는 이야기가 나오겠죠.  


Q. 50이 되고, 60이 되고, 70이 되어도 좋은 만화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겠습니다.  
A. 계속 연습하고 수련하고 마음 공부도 하고 그래야겠죠... 




△ 웰빙 김대리




    △ Moonchild


 <푸른 끝에 서다> 는 고영일이 90년대 초중반의 경험과 당시의 일들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자전적인 만화이다. 학생운동과 그로 인한 후유증-감옥생활, 프락치 사건 등-을 통해 고영일은 자신과 자기 세대의 혼란과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보여주려 한다. 현재 Akize.com에 연재 중이며, 올해 첫 권을 출간할 예정이다.


 고영일 프로필

1993년 - 99년 : 연세대 원주 배움터 <연세학보> 사 객원 만평 기자
1999년 - 2000년 : <오마이뉴스> 만평 게재
2000년 : 한겨레 문화센터 만화전문반 수강
2002년 - 현재 : 만화문화 웹진 만화 연재
2003년 : 불안정 노동 철폐연대 기관지 <질라라비에> -‘고영일의 직설화법 연재
북경만화페스티벌 인디만화 부문에 작가로 참여 전시
2004년 : 잠실중앙교회 청년주보 신년특집호 -이라크에서 온 편지 게재
월간 <문화연대> - 노틀코믹스 연재
계간 <문화과학> 여름호 - 웰빙족 김대리의 일일 게재
<만화 규장각> - 알고있을까? 엄마는... 게재
<계간 만화> 가을호 - 젊은 그대 게재
- 현재 : 월간 <고래가 그랬어> -역사만화 그랬다며? 연재 중
2004년 : 문예진흥원 올해의 예술상 독립예술부문 Akzine 수상 기념 공연
오징거 프로젝트 리로리드 연출
2005년 : 나폴리 코믹콘 페스티벌 <만화> 전 참여 전시
2005년 : 로이비주얼 우비소년 애니북 제작
2005년 : 서울애니매이션 센터 창작 지원실 입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