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보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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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일라잇’은 팬픽에서 시작되었다, 2차적 저작물에 관하여

웹툰 보는 변호사 – 만화를 만드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알아야 할 법 이야기 11화

2024-11-03 서아람

‘트와일라잇’은 팬픽에서 시작되었다, 2차적 저작물에 관하여

  “탕탕후루후루 탕탕탕탕후루루루루!” 이 노래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SNS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서이브라는 키즈 유튜버의 마라탕후루송입니다. 저는 유치원생인 두 아이가 이 노래를 입이 닳도록 불러대서 제목을 알게 됐는데요. 처음 들었을 때는 뭐 저런 희한한 노래가 다 있나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이 노래에 푹 빠져버렸는데요. 저를 마라탕후루 송에 입문시킨 건 서이브의 원곡이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가수인 김범수의 편곡 버전이었습니다. 그 어마어마한 가창력으로 마라탕후루송을 재즈와 R&B느낌이 나게 편곡해서 부르는데, “이 노래가 이렇게 좋은 노래였어?”하고 깜짝 놀라게 되더라고요. 당연히 댓글창도 난리가 났습니다. ‘벤틀리로 운전면허 주행연습하는 격’, ‘재능낭비 갑’, ‘백만 번째 듣고 있습니다등등. 요즘은 이런 게 정말 흔한 것 같습니다. 보통 이라고 표현하는 노래나 춤이 한 번 유행하면, SNS를 통해 수십, 수백 가지 버전이 양산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골라 보는 재미를 선사하는 거죠. 이 현상은 저작권법과 관련해서 봤을 때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흔히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내는 이 수많은 버전들은, 법적으로 보면 그 하나하나가 전부 ‘2차적 저작물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바로 이 2차적 저작물에 관하여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저작권법 제5조 제1항에서는 원저작물을 번역·편곡·변형·각색·영상제작 그 밖의 방법으로 작성한 창작물은 독자적 저작물로서 보호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창작물이 바로 ‘2차적 저작물입니다. 자신 또는 타인의 저작물을 기초로 하되, 거기에 새로운 창작성을 더하여 변형해 만들어낸 독립적인 저작물을 의미합니다. 가령 우리가 웹소설을 원작으로 웹툰을 만들 때, 원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베껴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컷으로 분절해서 표현하는 웹툰의 특성에 맞게 웹소설의 스토리를 편집하고, 콘티의 형태로 먼저 바꾼 다음 만화로 그려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웹툰 독자들의 취향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과감히 삭제하거나 수정하기도 하고, 그림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이 또한 바꾸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원작보다 훨씬 낫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고, 반대로 원작의 좋은 점을 반도 못 살렸다는 혹평을 듣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결국 어떤 작품을 만들어내는가는 웹소설을 바탕으로 웹툰을 만들어내는 웹툰 창작자의 자질에 전적으로 달려 있는 셈입니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말입니다.

  웹툰을 원작으로 드라마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웹툰은 수익을 내기 위하여 장기간 연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방대한 양을 8부작 또는 16부작으로 줄이려면 창작 수준의 각색이 필요합니다. 캐릭터의 이미지에 맞는 배우를 캐스팅하고, 촬영 세트를 만들거나 로케이션을 정하고, 소품과 의상과 음악도 선정해야 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2D 평면으로만 표현되던 웹툰 속 캐릭터에 생생한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배우는 혼신의 힘을 쏟아 연기합니다. 그리고 카메라 감독과 조명 기사 등 스탭들은 그 모습을 실감나게 담아내기 위해 몇 달간 밤을 새고 온 몸을 던져가며 촬영하죠. 이렇게까지 엄청난 품과 공이 들어가는데, 그저 원작의 종속물이라고 여겨진다면 그건 분명히 부당하겠지요. 그래서 2차적 저작물의 저작자는 기본적으로 그 작품에 대한 온전한 권리를 갖습니다. 2차적 저작물의 기초가 된 1차적 저작물의 저자는 2차적 저작물 자체에 대해서는 그 어떤 권리도 갖지 못합니다. , 2차적 저작물을 만드는 데 있어서 1차적 저작물 저작자의 동의나 허락이 없었다면, 이는 1차적 저작물 저작자의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침해한 것이 되어 손해배상을 해 주어야 할 뿐입니다. 또한 2차적 저작물의 배포나 판매로 인하여 1차적 저작자의 수익 활동에 중대한 지장이 간다고 한다면, 2차적 저작물의 배포금지나 판매 중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는 소송까지 가기보다는 소송 전에 합의나 중재로 종결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기는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SNS으로 챌린지를 할 때, 릴스를 찍을 때, 심지어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때도 반드시 원작자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전부 불법이 될까요? 인기 많은 웹소설이나 웹툰,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경우 그걸 바탕으로 팬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동인지가 일반화되어 있고 심지어 동인지를 공유하고 판매하는 행사까지 대대적으로 하는데, 이들은 상습적으로 저작권 침해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조직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게 된다면, 영리 목적이 아니라 순수하게 즐겁게 팬 문화를 즐기려는 사람들까지 처벌받거나 배상금을 물어내게 되어 너무 가혹한 결과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등장하는 또다른 개념이 있으니, 바로 ‘2차 창작입니다.

  ‘2차 창작은 사실 법률 용어는 아닙니다. 보통 만화, 애니메이션, 소설, 영화, 드라마 팬들이 작품을 더 폭넓게 즐기기 위하여 작품 속 캐릭터를 가지고 소설을 쓰는 팬픽, 일러스트를 그리는 팬아트, 영상을 편집하거나 새롭게 만드는 팬 비디오 등을 ‘2차 창작이라고 통틀어 부르곤 합니다. 원칙에 충실해서 따진다면 이 팬 창작의 산물들에 대해서도 원작자나 원작자와 계약한 회사는 일일이 제재를 가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은 심각한 제재를 가하지 않고, 심지어 원작자나 회사가 이를 독려하거나 함께 즐기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예능 프로그램의 전설이었던 무한도전에서는 실제 무한도전의 막내 작가가 학창 시절 썼다는 무한도전 팬픽을 출연진들이 큰 소리로 낭독하는 에피소드가 나와 시청자들을 발칵 뒤집히게 만들기도 했죠. 2차 창작의 수준이 너무도 뛰어나 원작 못지 않거나 이를 뛰어넘는 지지를 얻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도발적인 인기를 모은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시리즈는, 놀랍게도 그 시작이 트와일라잇시리즈의 팬픽이었습니다. 10대 소녀를 주된 독자층으로 겨냥해 늑대인간과 평범한 소녀의 운명적인 사랑을 다루었던 하이틴 로맨스 소설이, 20대 이상 여성들이 남몰래 E북으로 구매해 열심히 읽는 성인소설이 된 겁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시리즈가 영화로도 나와 지금은 하나의 브랜드가 된 이후에도, 인터넷에는 여전히 순진하고 아름다운 여대생 벨라가 젊고 잘생긴 CEO 에드워드를 인터뷰하러 가는팬픽의 일부가 돌아다닙니다. 하지만 트와일라잇시리즈의 작가인 스테파니 메이어가 그레이시리즈에 반기를 들었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팬 제작의 산물을 ‘2차 창작으로 보아 그냥 내버려둘지, 아니면 불법 2차적 저작물로 보아 법의 칼날을 들이댈지는 원작자의 뜻에 달렸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원작자들은 보통 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2차 창작물의 허용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 해당 창작물이 1차 창작물의 본질이나 이미지를 훼손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이 쟁점을 가장 잘 보여준 것이 바로 1999닌텐도의 포켓몬 동인지 고소 사건인데요. 이 사건은 어떻게 보면 다소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으로 시작하는데요. 일본의 한 여중생이 포켓몬 주인공인 지우와 피카츄를 성적으로 묘사한 동인지를 구입했다가 어머니한테 들켰는데, 그게 뭔지 정확히 몰랐던 여중생의 어머니가 문제의 동인지를 닌텐도 본사에 보내면서 애들한테 이런 걸 팔아도 되느냐고 따졌고, 닌텐도 본사에서 해당 동인지의 제작자를 고소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당시 일본 경찰 또한 동인지가 뭔지 잘 몰랐고, 야쿠자들이 해적판 만화를 파는 것으로 수입을 올리던 시대이기에 야쿠자가 관여한 건인 줄 알고 본격적인 수사 본부까지 설치해 잠복 수사와 함정 수사를 펼쳤다고 합니다. 그렇게 본격적인 수사 끝에 잡은 범인은, 동인 만화를 즐겨 그리는 미치모리 사치에라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만화나 게임의 동인지를 그려 판매해 오던 사치에는 당시 돈으로 10만엔, 지금의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약 200만 원 정도 되는 벌금을 내고 풀려났습니다. 이 사건을 두고 일본의 수많은 동인지 제작자와 팬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심지어 닌텐도 불매운동을 펼치기까지 했지만, 닌텐도 측의 입장은 강경했습니다. “포켓몬을 사랑하는 아이들의 꿈이나 희망을 깨뜨리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다음으로 따져봐야 하는 부분은 경쟁 관계 여부입니다. , 원작자의 동의 없이 만든 2차적 저작물이 원작인 1차적 저작물과 시장 내에서 경쟁을 펼칠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원작을 판매, 대여, 전송하여 그 수익을 얻어야 하는 원작자 입장에서는, 소비자들이 무단 2차적 저작물을 원작 대신 구매하게 된다면 이를 허용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시장적 경쟁 관계라고도 표현합니다. 시장적 경쟁 관계가 있으면 2차적 저작물이고, 없으면 독립된 저작물이라고 구별하자는 방법론도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에 동의하진 않습니다. 시장적 경쟁 관계가 형성되는 데는 독립된 창작성 외에도 너무 많은 변수가 작용하여 도저히 예측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가령, 보통 영화가 개봉하는 시점에 영화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소설이나 영화의 원작 소설이 출간되면 서로 손해라고 하여 시기를 다르게 조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를 통해 이미 줄거리와 결말을 다 알게 된 사람은 굳이 소설을 사서 읽을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크린셀러라고 해서, 영화나 드라마가 흥행하면 원작 소설이나 2차적 저작물로서의 소설이 인기를 얻는 경우도 있습니다. 새 영화가 개봉할 때쯤 TV에서 그 내용을 요약해서 소개해 주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프로그램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영화를 보러 가고 싶어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영화를 이미 다 본 것 같다고 말합니다.

  결국 2차 창작이든, 2차적 저작물이든, 이에 대한 제재를 가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원작자가 결정하는 것이므로, 2차 창작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원작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게 맞습니다. “다른 작가들은 다 허용하는 데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구느냐는 말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이는 저작인격권의 일부에 포함되기도 하는 것이라서, 작가마다 다르게 표현할 수 있으며 이를 강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왕좌의 게임원작 작가인 판타지 소설가 R.R.마틴은 등장인물은 작가의 자식이다. 아무리 내 자식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자식들을 가로채는 것은 사양하겠다.”라고 팬픽에 대한 강경한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작품을 사랑하고 이를 바탕으로 팬 문화를 향유하는 건 일반적으로 반갑고 고마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이를 허용하는 것을 당연시하지는 말자는 뜻입니다. 특히 2차 창작 과정에서 작품의 본질이나 작가의 인격 자체를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겠습니다. 모두가 인지하고 주의한다면, 건전하고 생산적인 팬 문화가 정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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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람

필자 서아람은 전직 검사이자 현직 변호사로서, 카카오페이지 추미스 공모전 2회 수상으로 웹소설 작가로 데뷔한 후 에세이, 웹소설, 동화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서 출간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로서 주로 다루는 분야는 사기, 성범죄, 보이스피싱 등 형사사건과 학교폭력, 저작권 관련 분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