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은 ‘없습니다’, 빛 좋은 개살구 같은 공모전 걸러내기
작년 8월, 발라드 그룹 ‘비투비’의 멤버인 이창섭 씨가 SNS에 사과문을 하나 올렸습니다. 이창섭 씨가 운영하는 회사 ‘창꼬’에서 로고 공모전을 했는데, 그 결과가 ‘당선자 없음’이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공모전 공지에 당선자가 없을 수 있다는 사전 설명이 없었고, 많은 지원자로 하여금 헛수고를 하게 했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회사 및 대표가 연달아 사과에 나선 것이었습니다. “가이드 라인과 설명이 자세하지 못했던 점이 죄송하다.”, “처음 해보는 사업이기에 자세하게 알아보지 못하고 공모전을 진행한 것에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정중하게 가다듬어진 문장이지만, 이 내용은 예의에 관한 것이지 법률에 관한 것은 아닙니다. 공모전에서 당선자를 정하지 않은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될까요? 아니, 애초에 ‘공모전’이라는 것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이니, 공모전 주최 측은 당선자에게 일방적으로 은혜를 베풀어주는 것이고, 당선자는 주최 측에 뭔가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없는 걸까요?
사실 공모전의 본질은 ‘계약’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계약은 양쪽 당사자에게 권리나 의무 또는 권리와 의무 모두를 부여하는 법적인 강제력이 있는 약속을 의미합니다. 즉, 공모전 주최 측과 당선자가 일정한 법률관계로 묶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계약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계약을 합시다”라고 어느 한쪽이 먼저 제안하는 ‘청약’과, “좋습니다, 계약을 하겠습니다.”라고 다른 한쪽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승낙’이 필요합니다. 공모전에 이런 게 어딨나 싶겠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숨어 있습니다. 공모전 주최 측이 ‘이러이러한 작품을 공모합니다. 당선자에게는 얼마를 지급합니다.’라고 공지를 내는 것을 ‘청약’으로 보고, 당선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특정한 작품을 가지고 지원하는 행위를 하는 것 자체를 ‘승낙’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를 민법 제675조에서는 ‘현상광고’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들에게는 계약을 이행해야 할 의무가 주어집니다.
그렇다면 공모전에 관련된 당사자들의 법률적 의무는 무엇일까요? 지원자는 주최 측이 제시한 조건에 맞는 작품을 제출해 지원해야 할 의무가 있고, 주최 측은 자신들이 제시한 조건에 맞는 작품이 들어왔을 때 그에 대한 보수를 지급하여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전에 ‘당선작을 뽑지 않을 수 있음’이라는 고지 없이, 당선작을 뽑지 않은 것에 대한 분명한 설명도 없이 ‘당선작 없음’을 내 버리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가끔 공모전 작품을 다 받아놓고서는 회사 내부의 자금 사정 등을 이유로 당선작을 뽑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만일 이때 회사 내부의 기준에 맞는 작품이 실제로 들어왔는데도 이렇게 한 것이라면, 이는 엄연한 계약 위반입니다. 회사가 공지를 내면서 청약이 이루어졌고, 당선작이 될 수 있는 작품을 지원자가 제출한 시점에서 승낙이 이루어져 계약은 이미 성립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공모전 공지 이후 회사 내부 사정이 나빠졌다면, 이때는 그 사유를 명확하게 밝히고 공모전 자체를 취소하는 ‘청약 철회’ 행위를 하는 것이 법률적으로도, 물론 윤리적으로도 옳은 조치입니다. 청약철회를 하면 모든 것이 계약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양 당사자에게는 이미 지급된 것에 대한 반환 의무가 생기는데, 공모전 주최 측은 지원자들에게 제출 작품을 돌려주어야 하고, 그 데이터나 사본 등이 있다면 전부 삭제해야 합니다.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함께 마련한 ‘창작물 공모전 지침’을 보면, “주최자는 입상하지 않은 응모작에 대해서는 어떠한 권리도 취득할 수 없고, 별도의 반환 요청이 없는 한 입상하지 않은 응모작을 공모전 종료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모두 폐기하여야 한다. 주최자는 응모작 접수시 응모작 반환 여부에 대한 응모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를 마련하여야 하고, 응모자가 저작물의 반환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응모자에게 반환하되, 반환과 관련한 추가 비용은 응모자가 부담할 수 있다.”라고 매우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당선작이 나온 이후에, 갑자기 수상 조건을 바꾸어 상금을 깎는다거나 세부 내용을 함부로 바꾸어서도 안 됩니다. 이것도 당연히 계약 위반입니다. 2014년 주택조합과 건축업자 사이에 소송이 벌어졌는데, 바로 ‘현상광고보수금청구소송’이었습니다. 주택조합에서 40세대의 주택을 신축하는 공사를 하면서 공사 설계용역공모를 실시하였는데, 공모 내용에 따르면 당선자와 조합이 설계용역계약을 체결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고 건축업자가 당선작으로 선정된 후, 조합의 일부 임원들이 반대한다여 총회에서 부결되었다는 이유로 조합은 계약 체결을 포기하겠다고 당선자에게 통지하였습니다. 이에 당선자는 약정된 당선금, 즉, 이 사건에서는 설계비를 지급하라면서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조합 측은 당선자에게 ‘계약을 체결할 우선협상권’을 주기로 한 것이지 자동으로 계약이 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지만, 법원에서는 “현상광고(공모)에 따라 광고자는 당선자 이외의 제3자와 설계계약을 체결할 수 없게 되므로, 광고자가 부당한 내용을 계약 내용으로 주장하거나 광고자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계약이 체결되지 못했다면 당선자는 이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하면서 원고인 당선자의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공모전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많은 지원자 중 누군가를 ‘뽑는’ 개념이다 보니, 아무래도 갑을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습니다. ‘공모전 없음’ 사태 외에도, 공모전에서는 온갖 불공정한 행위가 벌어질 때가 많습니다. 민법에서 현상광고 규정을 두면서 보수를 두어야 한다는 내용만 두고 그 외의 세부적인 내용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웹툰이나 웹소설 공모전의 경우에서도 이런 일은 왕왕 벌어집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문제가 ‘2차적 저작물 작성권’과 ‘상금의 인세화’입니다. 웹소설이나 웹툰의 경우, 회사나 플랫폼에서 작품 자체를 연재하거나 출간하면서 얻는 수익만큼이나 영상화로 인한 수익도 기대하면서 계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그래서 보통 ‘2차적 저작물에 대한 우선 검토권이나 우선 협상권’을 계약의 중요 조건으로 내걸게 되는데요. 우선 검토권이나 우선 협상권을 넘어서 아예 2차 저작물 작성권이 회사에 귀속된다는 조건이나, 2차적 저작물 사업화에 대한 독점권을 공모전 조항으로 넣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요즘 작가들이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다 보니, 어느 플랫폼의 공모전에서는 “공모전 상금에 원소스 멀티 유즈 원고료가 포함된다.”는 애매한 문구로 은근슬쩍 2차적 저작물에 관한 권리를 가져가려는 시도를 한 적도 있습니다. 그 말이 그 말인줄 몰랐다고 해서 내가 찍은 도장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니, 공모전 조항이나 계약서 문구를 작가들이 두 눈 번쩍 뜨고 집중해서 읽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상금의 인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모전 당선자가 받는 상금은 기본적으로 공모전에서 수상한 것에 대한 보수이고, 이후 작품 계약을 정식으로 진행하여 출간이나 출판으로 나오는 인세를 정산받는 것은 이것과는 별개인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웹툰, 웹소설, 만화, 일반 소설 등의 공모전에서 상금을 인세로 취급하고 별도의 인세를 지급하지 않는 불공정 계약이 관습처럼 이루어져 온 게 문제였습니다. 작가들이 이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면서 최근에는 “상금과 별도로 인세를 지급한다”고 명시하는 공모전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일부 공모전에서는 “상금에는 인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금 및 인세 합계 ~원”이라는 문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출간 후 판매 부수에 대한 인세가 상금을 웃돌 경우 초과분에 대해 인세를 지급한다.”라는 문구도, 작가를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반대입니다. 상금에 해당하는 부분만큼은 인세를 지급하지 않겠다, 즉, 상금을 선인세로 공제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수상작의 출간 후 판매 부수에 대한 인세가 상금만큼 나오지 않을 경우 작가에게 ‘차기작 수익으로 공제하자’고 제안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명확한 불공정 거래이니 절대 응해선 안 됩니다.

그 외에도 공모전 갑질 사례는 숱하게 많습니다. 당선 이후 인턴 활동을 몇 년 이상 의무적으로 해야 하고 도중에 중단하면 당선을 취소한다든가, 예심 통과자들로부터 한 달에 2편씩 추가 작품을 받고 그중 최종 당선된 사람에게만 상금을 지급한다든가, 당선작에 대한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지만 주최 측에서 당선작을 마음대로 편집하여 공개할 수 있다든가 하는 식입니다. 어떤 공모전은 ‘공모전 수상’을 빌미로 젊은 창작자들의 노동력을 싼값에 가져다 쓰겠다는 속셈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내 ‘열정 노예 공모전이냐’는 불평이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계약의 자유가 있는데 어떠냐고, 공모전 주최 측에서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계약의 자유가 무한정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공모전 공지의 경우 똑같은 내용이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방식으로 ‘청약’이 이루어지는데요. 이처럼 문서나 전자문서를 통해 반복적으로,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지는 계약을 법에서는 ‘약관’이라고 합니다. 보통 약관은 기업과 소비자 간에 체결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법에 대해 잘 모르는 소비자가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약관규제법이라는 것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약관규제법에서는, 어느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부당하게 불리한 약관 조항은 공정성을 잃은 것으로 효력이 없다고 제6조에서 정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응모작에 대한 권리는 주최자에게 귀속된다’는 공모전 조건을 부당 약관으로 규정하고 시정 권고를 내린 사례가 있습니다.
부당 조건 외에 공모전의 함정은 또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장 무서운 함정이기도 한데요. 바로 ‘작품 탈취’입니다.

최근 영화계에서 열띤 논란이 되었던 ‘심해’라는 작품이 있는데요. 중년 남자와 탈북 청년이 북방한계선 인근 심해에서 죽음의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나는 이야기로, 원래는 ‘해인’이라는 제목이었다고 합니다. 김기용 작가가 2018년 ‘해인’ 트리트먼트를 공모전에 제출했다가 본선 탈락했지만, 예심 심사위원이었던 영화사 ‘꽃’의 대표인 최윤진 감독으로부터 작가 계약 제안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계약 이후 김 작가는 ‘심해’로 제목이 바뀐 작품의 시나리오 초고를 완성했지만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고, 이후 해당 작품이 최 감독의 이름으로 저작권협회에 저작권 등록 절차가 완료되었다는 것입니다. 최 감독은 “작가 본인의 숙련도가 떨어져 잘 이야기하여 계약을 중도해지했고, 잘 마무리했으며, 심각한 상태였던 시나리오를 내가 독자적으로 마무리했다.”라고 주장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김 작가는 “최 감독 버전의 시나리오가 있다는 것 자체도 몰랐으며, 내용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초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건 시나리오 탈취다.”라고 반박하면서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심해’ 사태는 아직도 현재 진행 중입니다.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은 ‘심해’를 김작가의 각본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정했지만, 김작가가 최감독을 저작권법위반혐의로 고소한 사건에 대하여 경찰은 불송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민사 소송으로 번지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누가 옳은지 여부를 떠나서, 공모전 관계자가 공모전 지원자와 공모전 외의 계약관계로 엮이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모든 창작자들은 교훈으로 삼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