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토끼, 뉴토끼, 마나토끼.. 범죄 조직이 된 토끼들
중학생 시절, 일 년 중 가장 재밌는 시기는 바로 ‘시험 끝나고 방학 전’이었습니다. 며칠 안 남은 시간을 때우는 게 목적이다 보니 수업이 제대로 될 리 없고, 선생님들도 그래, 놀아라, 사고만 안 치면 된다, 하고 내버려두시곤 했는데요. 누가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온 영화 비디오 두세 개와, 또 다른 누가 만화 대여점에서 빌려온 만화책 몇 질을 반 전체가 돌려보다 보면 하루가 훌쩍 가곤 했습니다. 철없는 그때는, 단독 삼백 원이면 반짝이는 새 커버의 만화책을 덥석 내주는 만화방 사장님이 천사처럼 보였더랬습니다. 비디오와 만화책을 빌리면서 학생들이 아끼는 돈이, 대여점 주인이 받는 가입비와 대여료가 사실은 만화가, 출판사, 영화사,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그 외 수많은 칭작 인력의 고혈이라는 사실을 그때는 까맣게 몰랐으니까요. 1990년대 초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만화 대여점은 199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그 수가 늘어났는데요. IMF사태 발발과 극심한 경제난으로 인하여 사람들의 소비 중 문화비 비중이 대폭 감소하고, 실업자가 증가한 것이 대여점의 증가세와 맞물린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대여점 확산으로 인하여 오히려 우리나라 만화업계가 성장한 것이라는 주장, 그런 불건전한 성장이라면 차라리 성장 따위 안 하는 게 낫다는 지적이 팽팽히 대립하면서 논쟁을 불러 일으켰는데요. 만화가들과 만화 팬들을 주축으로 한 대여점 반대 운동, 저작권법 개정 추진, 불법 음란만화 단속 등 대여점이라는 거대 세력에 고삐를 채우기 위한 각종 시도가 있었습니다만 큰 효과는 없었습니다. 그때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요. 마치 요즘의 카페처럼 한 블록 건너 하나씩 있던 대여점 시장이, 케이블TV와 인터넷, 그리고 웹툰의 등장으로 자연스럽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줄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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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들을 보면, 옛날의 대여점 문화는 차라리 양반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나마 그때는 ‘책’이라는 실물을 대여점에서 최초 1회는 정식 구매하고, 한 번에 한 사람에게 빌려주는 구조였으니 확산 규모와 회전율에 제약이라도 있었지요. 이미지 파일이나 압축 파일은 클릭 한 번이면 수백 명, 수천 명에게, 지구 반대편까지도 순식간에 전송되니 그 파급력이 엄청납니다. 우리나라 웹툰 시장이 덩치를 키우는 만큼, 아니, 때로는 그보다 더 크게 더 빨리, 불법 웹툰 유통 시장도 덩치를 키우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웹툰 플랫폼의 수는 35개에서 40개까지 늘었다가 33개로 줄어들었지만, 반대로 국내 웹툰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는 2016년 3개에서 시작해 110개, 145개, 244개로 해를 거듭할수록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그 여파는 곧바로 웹툰 창작자들과 제작자들의 경제적 타격으로 이어져, 가장 유명한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 ‘밤토끼’가 등장한 2017년부터 메이저 플랫폼에서의 신규 웹툰 제작편수는 매년 백여개씩 현저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불법 유통 시장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액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어서, 매년 팔천억 원 가량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는 합법적인 웹툰 시장 매출의 절반 정도에 해당한다고 하니, 한 마디로 수익의 반이 인터넷 해적단에게 털리고 있는 셈입니다. 심지어 트래픽으로 파악 가능한 웹툰 조회수, 클릭수는 합법 플랫폼보다 불법 유통 사이트가 더 많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이쯤 되면 항상 나오는 말이 있지요. ‘정부는 뭐 하고 있었느냐, 경찰은 놀고 있었느냐’ 하는 반발입니다. 물론 둘 다 놀고 있지 않습니다. 국내 기반의 사이트들은 수사와 검거가 쉽습니다. 2016년경 회원들로부터 문화상품권 핀 번호를 받아 포인트를 충전해주고 그 포인트로 웹소설, 웹툰 스캔본을 열람할 수 있게 해 주었던 ‘벚꽃 도서관’이라는 사이트가 있었는데, 4개월만에 운영진의 신원을 파악해 법적 처분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 생겨난 대부분의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들은 해외 서버를 이용하기 시작하였는데요. 이들을 수사하려면 해외 공조를 받아야 하는데, 협조해야 할 법률상 의무가 없는 해외 수사기관이나 기업에서는 적극적인 협조는커녕 협조요청문에 회신도 해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실제로 저도 검사 시절에 구글로부터 수사협조 회신을 받기 위해 무려 1년 6개월을 기다려본 경험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해외에 서버를 두거나, 해외에 서버를 둔 것처럼 우회하면 수사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 상식처럼 퍼져나가고, 불법 사이트들이 우후죽순 더 생겨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습니다. 이들 중에는 유명 웹툰, 유명 웹소설을 미끼 상품처럼 내걸어 회원들을 모은 후, 그 다음에는 불법 도박이나 불법 포르노로 유입시키는 경우가 많아 그야말로 사회악 그 자체였습니다.
이 악순환에 의미 있게 그어진 한 획이, 바로 2018년 있었던 ‘밤토끼 폐쇄’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경찰청, 방송통신위원회가 연합해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고, 밤토끼, 장시시, 마루마루 등의 유명 불법 사이트들 열두 곳을 일시에 폐쇄했습니다. 거기서 끝나면 안되겠죠. 경찰청은 이들 사이트가 미국의 사설 서버 업체인 클라우드 플레어에 가입되어 있다는 것을 파악한 후, 미 국토안보부와의 공조를 통해 서버 내역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결과 열두 개 전부는 아니지만 그 중 여덟 개 사이트 운영자를 형사 처벌할 수 있었습니다. 네이버, 레진코믹스 등의 웹툰 플랫폼은 이들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했고요. 뭉치면 산다는 말처럼, 여러 기관과 기업이 이번에야말로 철퇴를 휘두르겠다는 견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초대형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였던 ‘누누티비’의 사례도 비슷합니다. 3사로 칭해지는 정규 방송사와 케이블 방송사, 영화 제작사, 티빙과 웨이브 등 OTT가 ACE라는 불법복제 대응조직과 함께 협의체를 구려 누누티비를 형사 고소했고, 부산경찰성 사이버범죄수사대의 수사와 동시에 정보통신망이용법 개정안이 추진되었습니다.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겁을 먹었는지, 누누티비 운영진은 ‘국내 방송 콘텐츠에 한하여’ 동영상 자료를 전부 삭제하겠다는 공지문을 올리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사후적으로 동영상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그간 불법 스트리밍을 하면서 누누티비가 거뒀을 것으로 추정되는 약 4조원의 불법수익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싸움은 이제 시작입니다. 밤토끼가 폐쇄된 이후, 뉴토끼, 북토끼, 마나토끼, 낮토끼 등, 마치 정부와 경찰을 조롱하는 듯 밤토끼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가 창궐했습니다. 심지어 2018년 단속 당시 폐쇄되었던 사이트 운영자 중 일부가 새로운 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누누티비’를 대놓고 본딴 ‘후후티비’가 불법 스트리밍계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고 합니다.
단속 주체들이 연합하는 것처럼, 범죄자들도 연합하는데요. 요즘 불법 다운로드 플랫폼들은 서로 통합 합병해서 대형화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하네요. 그렇게 회원 수를 대폭 늘려 광고 수익을 높이고, 그 수익 중 일부를 추적 및 단속 회피 기술 개발에 쓰는 것입니다. 이들의 ‘서비스’ 또한 합법 플랫폼 못지 않아서, 회원들에게 안전하게 접속할 수 있는 우회 경로를 다양하게 제공하고, 무료 앱을 개발해 제공하며, 심지어 연중무휴 24시간 상담해주는 온라인 상담센터까지 운영한다니 그야말로 블랙 코미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수지 맞는 장사’라는 사람들의 비아냥처럼, 형사 처벌 수위나 민사 손해배상액에 비하여 벌어들이는 불법 수익이 현저히 크기에 불법 유통이 근절되지 않는 것입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만화는 공짜, 웹툰은 공짜로 봐야 한다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이 불법 다운로드가 판치는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과감히 말하겠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아주 오랜 과거부터, 기본적으로 ‘책값’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민족입니다. 예술을 숭상하고, 작가를 존중하고 예우할 줄 아는 민족입니다. 종이책이 대세였던 시절, 문학상이나 만화상을 을 어느 작가가 타느냐를 두고 9시 뉴스에 생중계까지 되던 이웃 나라 일본 정도는 아니어도, ‘작가’라는 명칭 뒤에 꼬박꼬박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인기 작가는 인기 가수가 전국 투어를 돌 듯 전국 팬사인회나 북콘서트를 하는 게 가능했습니다. 물가가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치킨 한 마리가 삼만 원에 육박하게 된 지금도, 엄마들은 자녀교육을 위해 스무 권 세트 학습만화를 턱턱 구매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건 그냥 인간의 본성 문제입니다. 아무도 감시하지 않는 골목길 한가운데 라면 한 박스가 놓여 있다면, 그걸 안 가져가고 그냥 둘 사람이 있을까요? 처음에는 그렇겠지만, 그 상태로 몇 주, 몇 달이 지나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걸 가져간다면, 어느 순간 모두가 가져가게 되겠지요. 현 사태는 그것과 비슷합니다. 제도와 시스템이 미비한 것을 개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돌리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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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다운로드를 차단하기 위한 노력은 현재 두 가지 갈래로 나뉘고 있습니다. 하나는 기술적인 차원입니다. 최근 네이버 웹툰은 인공지능 기반인 ‘툰레이더’ 시스템을 개발해, 불법 웹툰을 발견하는 동시에 AI가 최초 유출자 계정을 찾고 이를 차단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카카오 엔터테인먼트는 아예 전담 인력을 배치해 불법 웹툰을 SNS내에서 일일이 삭제하고 있습니다. 레진엔터테인먼트는 ‘툰키퍼’라는 저작권 보호 솔루션을 자체 개발해, 누군가가 웹툰을 불법 다운로드하려고 하면 웹툰 내 이미지들이 퍼즐처럼 뒤섞여 내용을 파악할 수 없게 하는 ‘스크램블’ 현상이 일어나도록 했습니다. 참으로 기발하죠? 문제는, 현재로서는 이러한 기술적인 개발 부담이 플랫폼과 기업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부에서 자체적으로 예산을 편성하여 불법 다운로드 방지 기술을 개발하거나, 사설 기업이 이를 개발할 경우 공익적인 차원에서 이를 보상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률의 정비도 필요합니다. 많은 웹툰 작가가, ‘불법 웹툰을 단순히 보기만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 조항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작권법에서는 저작물을 ‘복제, 공연, 공중송신, 전시, 배포, 대여, 2차적저작물 작성’의 방법으로 침해하는 경우를 처벌하는데, 단순히 불법으로 캡쳐한 웹툰 이미지가 담긴 게시물을 클릭해서 보기만 하는 것은 이중 어디에도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운 게 문제입니다. 클릭 한번 했다고 해서 수사받고, 벌금내고, 전과자가 되는 것은 너무한 것 같다고요? 길거리에 떨어진 지갑을 가져가면 점유이탈물횡령죄로 처벌받고, 찜질방 콘센트에 꽂아놓은 충전기를 가져가면 절도죄로 처벌받습니다. 다른 사람이 몇 달, 몇 년간 모든 것을 쏟아 쓰고 그린 작품을 대가없이 보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절도입니다. 범죄에 합당한 처벌이 이루어지는 사회가 되어야, 밤토끼든 뉴토끼든 깨끗이 몰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