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죽어서 자라고? 완결 전엔 죽지도 못하는 작가들
“그냥 휴재가 아니에요.. 유산했다고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려서 간신히 바뀐 공지지만.. 오늘 하루종일 쓰러져 있었더니 힘이 드네요.. 잠시만 누워있겠습니다. 늘 죽고 싶어요. 항우울제 먹어가며 버티고 있습니다.”, “혼절한 탓에 구급차에까지 실려가고도 런칭일 변경은 어렵다셔서 세이브 원고 덜 푸는 걸 정말 간곡히 부탁드렸는데도 안 된다셔서 그날 전후로 하혈하면서 원고를..”
웹툰 작가들의 근로 환경 문제가 수면에 떠오른 건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나 혼자만 레벨 업’이라는 초인기작의 그림 작가였던 장성락 작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과로사 논란이 일었지만 평소 지병이 있었고 이로 인한 뇌출혈이었다는 스튜디오 측 해명으로 논란은 잦아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약 한 달 후, ‘록시나-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이라는 로맨스 판타지 웹툰의 여름빛 작가가 트위터에 장문의 글을 올리면서 다시 이슈가 되었습니다. 여름빛 작가는 과도한 업무량으로 인하여 결국 유산하게 되었고, 유산 후에도 업무 일정에 있어서 전혀 배려를 받지 못해 그 후유증으로 온갖 질환과 공황장애, 우울증까지 앓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플랫폼은 작가의 휴재 요청을 거절하거나 론칭 일정을 강요한 적이 없다고 입장을 발표했는데요. 플랫폼이 강요를 했든, 아니면 작품의 성공적인 론칭을 위해 작가가 어쩔 수 없이 동의했든, 작가가 도저히 쉴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웹툰 작가라고 하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한달에 수억씩 버는 신흥 귀족인 줄 아는 일부 사람들의 비현실적인 상상과는 다르게 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육십 년 전,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법전과 함께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는 죽어가면서 외쳤습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고. 일요일은 쉬게 해달라고.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고, 자신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무일푼으로 상경해 평화시장에서 재단보조로 일하던 그는, 재단공장에서 일하는 공원들의 열악한 근로환경을 보고 충격을 받아 노동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어린 여공들은 1.6m도 되지 않는 낮은 공장에서 허리를 펴지 못한 채 온종일 옷감 먼지를 들이마시며 하루 열네 시간을 일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전태일의 분신을 계기로 사회 각계에서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여론의 변화는 곧 사회의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파업 농성 등 집단 행동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근로 환경은 점점 개선되어 갔습니다. 2024년 현재, 우리나라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그래도 OECD 국가 중 중위권으로 일본과 동일하며, 구매력 기준으로 평가하면 OECD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 되었으니 나쁘지 않은 편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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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웹툰 작가의 노동 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웹툰 작가들의 하루 평균 노동 시간은 9. 9시간, 마감 전날에는 11. 8시간이라고 합니다. 수면 시간과 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시간을 작업에 쏟는 셈입니다. 주당 근무 일수는 5.7일로 주 5일제는 당연히 지켜지지 않고, 주당 평균 근무 시간은 51시간으로, 대한민국 풀타임 근로자의 주당 평균 근로 시간인 42시간보다 무려 9시간이나 깁니다. 참고로, 미국인 근로자의 주당 평균 근로 시간은 34시간이라고 하네요, 허허. 너무도 당연하게, 과로는 건강 악화로 이어집니다. 전체 웹툰 작가의 34%가 건강 문제를 겪고 있고, 쉬어야 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진 적이 있다는 작가가 25%가 넘었습니다. 작가들은 손목 건초염, 거북목, 근시, 난시, 노안, 인구 건조증, 백내장, 허리디스크, 손가락 관절염, 치질, 우울증, 조울증, 공황장애 등을 겪는데요. 제가 아는 한 작가님은 책상에 앉을 때마다 도넛 방석을 깔고, 허리 보조기를 착용한 후, 중간중간 손을 담그기 위한 파라핀 마사지기를 예열 해놓는 기나긴 작업을 거치곤 합니다. 작업의 편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작업 도중 생존을 위해서라나요. 이런 식으로 몇 년을 버티다 보면, 몸뿐만 아니라 정신도 버텨내기가 힘듭니다. 웹툰 작가들은 같은 연령대의 인구 집단에 비하여 자살 계획 경험이 3.5배 이상, 자살 시도 경험도 3배 이상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작가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을까요. 일선 작가들은 세 가지 요소를 손꼽아 지적합니다. 첫째, 비정상적으로 많은 회당 컷수. 둘째, 세이브 원고의 압박, 셋째, 휴재 없는 연재입니다. 우선 컷수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요즘 웹툰 1화당 평균 컷수는 68컷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작가들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평균 컷수는 1화당 52컷 정도로, 그 격차가 꽤 큽니다. 회당 필수적으로 채워야 하는 연재 컷수를 계약서에 아예 명시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컷수가 조금이라도 들어들면 독자들이 댓글에 원성을 쏟아내며 유료 결제한 게 아깝다느니, 작가가 초심을 잃었다느니, 양심이 없다느니 비난을 하니 플랫폼으로서도 자꾸 컷수를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아직 공동작업이 보편화되지 않은 우리나라 만화계에서는 아직도 아이디어 구상, 스토리 구상, 콘티 작성, 스케치, 펜터치, 채색, 편집, 수정의 모든 작업이 작가 한 명에 의해 좌우되다 보니, 한 컷 한 컷의 부담이 엄청납니다. 많은 작가가 첫날에는 아이디어와 스토리 구상, 둘째 날에는 콘티 작성, 셋째 날에는 스케치, 넷째 날 펜터치, 닷새째 채색을 하고 여섯째 날에 텍스트 삽입 등 마무리 작업을 한다는데, 일곱 번째 날 원고를 편집자에게 보내고 수정 요청대로 보완하고 업로드까지 한다고 치면, 작가는 쉴 날이 아예 없게 됩니다. 그렇다고 스토리를 대충 짜거나, 그림을 조금이라도 게을리하면, 독수리처럼 예리한 눈을 가진 독자들은 귀신같이 알아보고 지적합니다. 메인 작가가 아닌 어시스턴트가 주요 인물의 작화나 채색을 맡게 되면, 그 변화조차 금방 알아차리고 마음에 안 든다는 댓글이 올라오니 말입니다. 일각에서는 AI 기술이 발달해서 AI가 작가 업무의 일부를 대체하게 되면 작가의 과로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대한민국 독자들의 까다롭고 수준 높은 안목을, 손가락을 여섯 개로 그리는 AI가 온전히 충족시킬 수 있는 날이 오려면 아직 한참 먼 것 같다는 게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월화수목금토일 미친듯이 빡빡한 일정이 진행되는 와중에, 작가들은 ‘세이브 원고’도 챙겨야 합니다. 저축과 적금을 좋아하는 민족답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웹툰에서도 ‘비축분’을 중요시합니다. 아무리 적어도 10화 이상, 많게는 50화 이상, 또는 전체 회차의 절반 이상의 완고를 가진 채로 연재를 진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중 일부를 ‘미리보기’로 공개하여 유료 수익을 올립니다. 일주일마다 한 번씩 공개되는 회차는 보통 무료로 풀어두고 그 다음 회차를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유료 결제를 통해 ‘미리보기’를 보기 때문에, 플랫폼 입장에서는 이 ‘미리보기’가 충분히 쌓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작가는 더더욱 쉴 수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는 곧 휴재의 부재와 직결됩니다. 웹툰 작가들의 과로 문제가 몇 년전부터 공론화되면서, 요즘 대형 플랫폼 중 작가의 휴재 요청을 대놓고 거절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작가들은 마음껏, 편안하게 휴재하지 못합니다.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가 되어서야 겨우 하루 쉴까말까. 왜일까요? ‘무한경쟁’ 때문입니다. 요일별로 웹툰이 공개되고, 조회수가 낮은 작품은 아래로 밀려나고, 조회수가 높은 작품은 위로 올라와 인기 많은 작품은 더 인기가 많아지고 인기 없는 작품은 인기가 더 없어지는 경쟁 시스템. 작가가 한 회차라도 휴재를 하면, 그 사이 다른 작품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옵니다. 독자들은 불성실한 작가를 탓하면서 떠나갑니다. 이는 곧 작가와 플랫폼의 손해로 직결됩니다. 요즘 ‘누칼협’이라는 말이 있죠. 누가 칼 들고 휴재하지 말라고 협박하는 건 아니지만, 휴재 한 번 할때마다 무섭게 떨어지는 ‘관심수’와 ‘조회수’와 ‘미리보기’ 수익이 곧 협박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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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모 정당에서 휴재권, 창작 대가 산정 방식, 수익 분배에 관한 규정을 담은 이른바 ‘웹툰법’ 제정을 추진했지만, 현재까지 소식이 없습니다. 워낙 여러 사람과 집단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고, 또 법안을 한 번 잘못 만들었다가는 산업 전체를 지나치게 규제하여 침체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어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작가들은 입을 모아 얘기합니다. ‘이대로 다 죽지 않으려면, 다 같이 쉬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모든 작가가 표준 약관 또는 계약을 통해 동등하게, 넉넉한 휴재 횟수를 보장받고, 그 횟수대로 쉬었을 때 비난하거나 불이익을 주지 않는 풍토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플랫폼에서는 작가가 휴재할 때 그것이 작가의 계약상 정당한 권리에 의한 것임을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공지하는 배려를 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컷수도 일주일 내에 소화 가능한 수준으로 ‘다같이’ 낮춰야 하고, 작품의 퀄리티를 현저히 떨어뜨리지 않는 선에서 보조 인력도 ‘다같이’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현재의 이 악순환을 깰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작가가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플랫폼이나 제작사 같은 대기업과 계약하거나 거래할 때, 작가가 상대적으로 을의 지위에 놓이기 쉬운 것도 기댈 수 있는 ‘소속’이 없다는 게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결국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집단화’가 필요합니다. 방송작가협회가 활성화되면서 방송작가들의 지위가 개선되기 시작한 것처럼, 웹툰 작가들 또한 협회를 통한 의사 표출과 합법적 단체행동을 해 나가야 합니다. 사실 웹툰작가협회도, 웹툰작가노동조합도 이미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 존재를 모르거나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하루하루 마감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신경을 끌수록, 나의 의무는 커지고 권리는 작아진다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거대한 공장 안에서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의 작은 나사 한 개일지 모르지만, 그 나사 한 개의 움직임으로, 공장 전체를 멈출 수도 있다는 것도. 육십 년 전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던 아름다운 청년의 메시지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