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그려도 이것보단 낫겠다! 악플인가 리뷰인가
저는 직업상 악플을 참 많이 봅니다. 그나마 지금은 그럴 일이 없지만, 검사 시절에는 법정에서 공소장을 낭독하면서 악플을 직접 낭독해야 할 때도 많았습니다. 명예훼손죄나 모욕죄에서 악플의 실제 내용은 핵심 공소사실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정말 이래도 되나 눈치 보고 머뭇거리다가, 나중에는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제법 찰지게 전국 팔도의 쌍욕과 패드립을 읊었던 기억이 납니다. 웬만한 악플에는 무덤덤한 저도, 이건 정말 너무하다 싶은 악플이 있었는데요. 제가 무척 좋아하고 존경하는 강풀 작가님이 부친상을 당하셨을 때 달렸던 악플들이었습니다. 암투병을 하시던 아버지께서 작고하셔서 어쩔 수 없이 휴재한다는 작가의 말에 “아빠 죽었네, 엄마도 죽어라”, “아빠 죽은 기념으로 엉덩이에 풀 발라줄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지 않는다 새꺄”, “너 고아원에서 데려왔지” 같은 말들을 적어놓은 걸 보고, 이게 지금 이 상황에서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할 수 있는 말인가 싶었습니다.

말은 사람을 찌르는 칼이 된다는데, 인터넷에서는 그 효과가 배가 됩니다. 단 몇 초만에 몇천, 몇만명에게 퍼져나갈 수 있고, 한 번 올라간 게시물은 캡쳐 되고 복제되어 몇 년이고 몇십 년이고 남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이렇게 남이 남긴 게시물을 복사하여 고정시켜 두는 행위를 ‘박제’라고 일컫기도 합니다. 결국 악플이라는 맹독은, 아무리 신고하고 지워도 완전히 없앨 수 없습니다. 온라인 장의사라는 신종 직업이 생겨나서 원치 않는 불법 게시물이나 사진, 영상을 지워준다고 하지만, 그 비용이 어마어마합니다. 온라인 장의사의 도움을 받는 비용은 기본적으로 이삼천만원을 호가하고, 심지어 그 돈을 주기적으로 지불해야 합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나쁜 소문이 돌면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서 새출발하면 그만이었지만, 요즘은 지구상 어디로 도망가도 안전한 곳이 없습니다. 성범죄로 복역하고 출소한 전직 가수 정준영이 프랑스 리옹의 클럽에서 외국인 여성들에게 접근하고 다니는 영상이 며칠만에 우리나라 인터넷 커뮤니티 전체에 퍼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웹툰이나 웹소설 작가들은 연예인 못지않게 일상적인 악플에 시달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좀처럼 고소를 하지 않습니다. 실제 작가들과 법률상담을 해보면, 그 이유는 다양합니다. 빡빡한 연재 일정 때문에 경찰서에 갈 시간이 없다는 작가, 변호사를 선임하고 싶지만 돈이 없다는 작가, 외면과 무관심보다는 비록 악플의 형태일지라도 관심을 받는 게 나은 것 같다는 작가, ‘독자를 고소하는 작가’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다는 작가 등등.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악플을 태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진 않습니다. 사람이기에 당연히 아프고 고통스럽습니다. 퀄리티 높은 작화와 그 작화를 현실로 구현한 듯한 미모로 화제를 모았던 네이버 웹툰의 ‘야옹이’ 작가는 연재 초기부터 유독 악플에 시달렸는데요. 주기적으로 형사 고소를 진행했는데도 악플이 멈추질 않았던 사례였습니다. 야옹이 작가는 웹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악플을 보다 보니 내가 정말 이상한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 정신과에도 가 보았다’라고 괴로웠던 심경을 토로했던 바 있습니다. 웹툰 자체로 인한 악플을 아니었지만, 자녀를 담당했던 특수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했던 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주호민 작가의 경우, 개인 방송에서 “기사가 나고 사흘 째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심하고 유서도 썼다. 가장 길고 괴로운 반년이었다.”고 하면서 온가족이 겪었던 정신적 고통을 털어놓았던 바 있습니다.
악플 중 흔히 말하는 ‘외모 비하’, ‘인신 공격’, ‘욕설’에 대해서는 형법상 모욕죄가 적용됩니다. 그 외 허위사실이나 사실적시를 하는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다음 칼럼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모욕의 경우 민법상 불법행위에도 해당하므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보통은 형사 고소를 먼저 하게 됩니다. 형사 고소를 하면 수사기관, 즉 관할 경찰서 담당 경찰관이 알아서 가해자도 찾아주고 증거도 확보해주기에 피해자 입장에서는 매우 편리하고, 또 형사 사건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가해자가 잘못했다고 하면서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는 ‘합의’를 하는 경우도 많아 민사소송의 번거로움을 덜 수가 있습니다. 다만 모든 종류의 악플이 모욕죄에 해당하여 처벌 가능하거나 손해배상금을 받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그 요건을 우선 명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악플에 대해 형사 고소를 하거나 민사 소송을 했을 때 내가 얻어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감수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형법 제311조에 따르면 모욕죄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하는 죄’입니다. ‘모욕’의 뜻은 형법에서 규정하고 있지 않으나, 판례에서는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경멸적인 표현으로 깎아내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사회적 평가가 실제로 저하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럴 위험이 있으면 충분하고, 어떠한 표현이 모욕에 해당하느냐 마느냐는 ‘사회 통념에 따라, 일반인의 기준에서, 객관적으로’ 정합니다. 단순히 듣는 사람이 기분이 나빴거나 모욕감을 느꼈다고 해서 모욕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모욕죄가 성립하려면 모욕적인 발언이 ‘공연하게’, 즉 공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없는 가운데 일대일로 대화하면서 주고받은 욕설이나 비하 발언은 모욕죄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대일 대화라고 하더라도 대화의 주체가 아닌 제3자에 대한 욕설이나 비하 발언이 오갔다면, 이는 ‘전파 가능성’으로 인해 공연성이 있다고 인정됩니다. 즉, A가 B에게 ‘C는 또라이다’라고 말했다면, 그 말을 들은 B가 다른 사람들에게 ‘C는 또라이다’라는 말을 옮길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그 말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예외가 있다면 B와 C간에 특수관계가 있는 경우인데, 가령 B와 C가 부모 자식간이나, 부부간이거나, 형제지간이어서 B가 C에 대해 나쁜 말을 떠들고 다닐 염려가 조금도 없다면 A가 B 앞에서 C를 ‘또라이’라고 부른 것은 모욕죄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모욕적 발언을 할 때 누가 있었는지도 중요하지만,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했는지도 중요합니다. 가령, 경찰서에서 신문을 받다가 타인에 대해 욕설하거나, 법정에서 비공개 재판을 받다가 욕설을 했다면 이는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수사나 재판에 관한 사항은 보안과 기밀이 지켜지기 때문입니다. 징계나 진정 절차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A작가가 B작가로부터 어떤 피해를 입어 B작가에 대하여 만화협회에 진정을 제기하면서 그 과정에서 B작가를 ‘미친놈’이라고 불렀다고 하더라도, 이 발언에 대해서는 공연성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다만 여기도 예외가 있는데, 겉으로는 진정이나 징계 목적인 것처럼 가장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다 알리고 다닐 목적으로 ‘징계 권한’이 없는 다수의 사람에게 발언을 하고 다녔다면 이 때는 모욕죄가 성립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봐도 느껴지시겠지만,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는 그 법리가 매우 복잡하고 섬세합니다. 그야말로 ‘케바케’,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례로 판단할 수밖에 없으며, 같은 사건을 두고 법조인들 간에도 의견이 갈리고, 1심, 2심, 3심의 결과가 모두 다르게 나오는 경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형법적으로 모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사람과 법인, 단체뿐입니다. 따라서 웹툰, 웹소설 등의 작가가 아닌 작품 자체를 모욕하는 행위는 처벌받지 않습니다. 또한 모욕의 대상은 ‘특정’되어야 합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바로 이 ‘특정성’ 요건에서 가장 많은 오해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쉽게 말해 ‘특정’되어야 한다는 것은, 모욕을 당한 피해자가 누군지 다른 사람들도 알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흔히 말하는 ‘주어 없는’ 모욕은 모욕죄로 처벌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의 실명이 아닌 인터넷 아이디나 닉네임을 모욕한 것도 처벌 대상이 되지 않고, ‘대한민국 웹툰 작가들’이라는 식으로 일반적인 집단을 지칭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원칙에는 다시 예외가 있습니다. ‘주어 없이’ 욕했더라도 문장의 앞뒤 맥락을 종합해봤을 때 생략된 주어가 무엇인지 충분히 유추 가능하다면 특정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 아이디나 닉 네임을 욕했더라도 당사자가 얼굴을 드러내놓고 활동하는 사람이거나, 포털 사이트에 프로필이 등록되어 있거나 언론에 많이 나오는 등 금새 그 신상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특정되었다고 봅니다. 단순히 ‘대한민국 웹툰 작가들’이 아니라, ‘네이버 웹툰 여성 작가들’이라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범위를 한정했다면 이 또한 특정된 것입니다.
여기까지 모든 문턱을 넘었다면, 마지막으로 ‘모욕에 해당하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판례에서는 ‘당사자의 사회적 가치를 현저히 훼손하는 경멸적 표현’이 아닌, ‘단순히 충동적이고 우발적인 순간의 감정표현’은 모욕으로 보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를 어떻게 구분해야 할지가 매우 어려운데, 판례를 최대한 단순하게 해석해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특정한 상황에 대해 화가 나서 하는 감정적인 욕설은 모욕이 아니다.’, ‘특정인을 기분 나쁘게 할 의도로 그 사람을 지칭해서 하는 욕설은 모욕이다’. 가령, 이중주차를 해 놓은 차를 보고 화가 나서 ‘에이, 씨X’이라고 외친 것은 모욕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중주차를 해놓은 차주를 향해 ‘이 거지같은 씨XX야’라고 외쳤다면 이는 명백히 모욕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웹툰의 악플에서도 비슷합니다. 좋아하는 작품이 불시에 휴재를 한 것을 본 독자가 ‘왜 또 휴재야, 진짜 거지같네’라고 댓글을 달았다면 이는 단순한 부정적 감정표현인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왜 자꾸 휴재냐, 이 거지같은 작가놈아’라고 댓글을 달았다면 이는 비하 발언으로 모욕죄가 성립하는 것입니다. 또한, 반드시 욕설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비하의 의도가 느껴지는 표현이라면 모욕이 될 수 있습니다. ‘싸구려 같은, 저질스러운, 멍청한, 개념 없는, 사기꾼 같은’ 등의 단어를 써서 사람을 공격하는 댓글은 모욕이 됩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흔히 말하는 ‘색드립’, 즉 음란하거나 저속한 문구를 함께 썼다면 이때는 모욕죄와 동시에 통신매체이용음란죄에도 성립합니다. 단, 아무리 객관적으로 기분 나쁜 말이라 하더라도 모욕적 표현이 없거나 특정인의 의견을 다소 과격하게 표현한 정도라면 모욕죄가 되지 않습니다. “발로 그려도 이것보단 잘 그리겠다”, “명품 쇼핑할 시간이 있으면 그림 연습이나 해라”, “연재중단해라”, ‘OO작가는 잘 그리던데“ 같은 말들은 모욕으로 고소하더라도 혐의가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뜻입니다. “이따위로 일할래?”, “시비 거냐?”, “제정신이냐? 병원 좀 가 봐라.” “나이 처먹은 게 자랑이냐?” 같은 발언은 모욕에 이르는 정도는 아니라는 판례도 있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모욕죄가 무엇이고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성립하는지를 개략적으로 알아보았습니다. 그 외 악플에 적용할 수 있는 명예훼손죄나 통신매체이용음란죄, 그리고 악플로 인한 범죄들의 처벌 수위나 합의 방식 등에 대해서는 본 칼럼의 다른 회차에서 또다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