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보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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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이 사생이 되고 스토커가 되기까지, 스토킹 법리

웹툰 보는 변호사 – 만화를 만드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알아야 할 법 이야기 19화

2025-03-09 서아람

팬이 사생이 되고 스토커가 되기까지, 스토킹 법리

  “당신을 만나서 사랑을 느끼고 많은 감정을 경험했습니다. 종일 한 사람만 생각난다는게 어떤건지 아실까요? 사랑해요, 그대.”

  로맨틱한 연애편지의 한 구절, 아니면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 대사처럼 보이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문장은 어느 여성 웹툰 작가의 스토커가 작가에게 보낸 메일의 일부분입니다. 일 년 동안 팬이라고 자처하면서 지속적인 메일을 보내던 이 남성을 견디지 못한 작가가 차단하자, 그는 다른 웹툰 작가들의 SNS를 돌아다니면서 ‘**작가님이면 연락주세요라며 연락처를 남겨놓고 다닙니다. 그러다가 불쾌하다는 지적을 받게 되자, 공개 사과문을 올리는데 이 사과문의 내용이 또 상당히 특이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이던 ***작가님에게 너무 서투른 나머지 잘못된 방식으로 다가가 대화를 하고.. 그 연애에 대해 SNS상에서 공론화되어.. *** 작가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자신을 작가의 남자친구인 것처럼 표현하는 해당 게시물에 작가 본인뿐만 아니라 팬들도 분개했고, 병원에 가보라는 댓글도 많이 달렸습니다. 그에 대한 답변은 랜선연애도 연애라고 생각합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견디다 못한 작가는 캡쳐 증거들과 함께 법적 절차에 들어간다는 입장문을 올렸습니다.

  웹툰 작가에 대한 스토킹 사례는 또 있습니다. 작년에는 스토킹 당하는 상황을 방송으로 보여준 남성 작가도 있었는데요. 초인종 소리가 나기에 인터폰 화면을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고, 이에 문을 조금 열어보았더니 처음 보는 여성이 문을 확 잡아당겨 안으로 쳐들어온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다짜고짜 내 닉네임을 알지 않느냐고 작가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녀의 일방적인 주장에 따르면, 작가가 오래전에 완결한 만화에 마음대로 자신을 그렸다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고 항의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냐는 작가의 질문에, 만화를 보고 유추했다는 기막힌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작가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화하면서 증거 수집을 위해 녹음하려고 하였지만, 상대방이 녹음하면 입을 다물겠다고 하여, 방송을 켜서 팬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증거도 수집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이 여성은 한 번 나갔다가 다시 쳐들어오기도 했는데, 그 상황이 작가의 개인 인터넷 방송에 그대로 송출되었던 것입니다. 경찰의 도착과 동시에 방송은 종료되었습니다. 다행히 더 위험한 사태로 번지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스토커가 폭력적으로 돌변하거나 했다면 생각만 해도 너무나 아찔한 상황이었습니다. 

  ‘Stalking’이라는 단어는 ‘stalk’라는 동사의 명사형인데, ‘stalk’는 맹수가 먹잇감을 사냥하기 전 몰래 따라다니면서 접근하는 행위를 일컫는 단어입니다. 상대방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상대방을 쫓아다니고, 연락하고, 기다리고, 뭘 보내는 등 자꾸만 접근하려고 하여 불쾌감과 공포감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통 연애하다가 헤어지면서 일방이 상대방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여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와는 별개로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상한 망상을 품고 스토킹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배우, 가수, 아이돌, 스포츠 스타 등 유명인도 종종 스토커의 타겟이 됩니다. 레이건 대통령을 저격한 존 힝클리는 영화배우 조니 포스터의 관심을 끌기 위해 총을 쏘았다고 진술했고, 비틀즈의 존 레논은 스토커의 손에 살해당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걸그룹 트와이스의 나연이 3년 넘게 독일인 남성에게 스토킹을 당하다가 접근금지가처분을 신청한 사건이 있었고, 미성년자인 트로트 가수를 쫓아다니면서 자신이 친아버지라고 주장하며 만나게 해달라고 하던 60대 남성 스토커가 집행유예 판결을 받기고 했습니다. 요즘은 웹툰 작가들 또한 SNS 인플루언서가 되기도 하고,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CF를 찍는 등 연예인 못지 않게 활발한 활동을 하는 만큼, 스토킹에 노출되기 매우 쉽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스토킹에 관한 특별법이 없고 경범죄로만 처벌되어 부당하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다행히 지금은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습니다. 현행 스토킹처벌법에서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 또는 그의 동거인, 가족을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거나, 그들에게 접근하거나, 집이나 회사나 학교 같은 곳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거나, 편지나 메시지나 물건을 보내거나 전화하거나, 물건을 두고 가는 등의 행동으로 상대방에게 불안감 또는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을 스토킹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스토킹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고,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스토킹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변호사사무실에 찾아오는 수많은 스토킹 피해자를 상담해 보면, 다른 범죄의 피해자들보다 훨씬 더 고소를 망설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상대방이 화가 나서 오히려 더 심하게 스토킹을 하거나, 보복할까 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토킹처벌법에서는 스토킹을 신고하거나 고소한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3단계 조치를 마련해놓고 있습니다. 우선 1단계 응급조치는, 경찰관이 스토킹 행위를 제지하거나 경고로 알리고, 피해자를 보호 가능한 시설로 인도하는 조치를 말합니다. 기존에는 스토킹 피해자 보호시설이 따로 없었는데, 바로 202212월부터 서울에 스토킹 피해자 보호시설들이 문을 열었고 그 중 한 곳은 남성을 위한 곳입니다. 1단계로 해결되지 않으면 2단계 긴급응급조치로 넘어갑니다. 가해자를 피해자의 주거지로 백 미터 내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하며, 전기 통신을 이용하여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리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카카오톡, 문자 메시지, 디엠이나 메신저 다 하지 말라는 겁니다. 만일 긴급응급조치를 위반하면 최대 1천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1단계 2단계를 했는데도 스토킹이 계속될 경우, 또는 1단계 2단계를 거치진 않았지만 범죄가 재발될 위험성이 현저한 경우, 경찰이 피해자 보호를 위해 잠정조치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건 영장과 비슷해서 경찰이 신청하면 검사가 법원에 청구하고, 법원에서 결정을 내려주게 됩니다. 잠정조치 1호는 스토킹 범죄 중단에 관한 서면경고, 2호는 100m 이내 접근금지, 3호는 전기 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4호는 유치장 또는 구치소에 유치하는 것으로, 잠정조치를 이행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별개의 범죄가 되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스토킹을 고소한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해 그 위치가 실시간으로 경찰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하고, 필요한 경우 피해자의 자택 주변을 경찰관이 경찰차로 순찰하는 등의 조치도 취할 수 있습니다.

 

  스토킹 고소를 생각하고 있다면, 두 가지를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첫째, ‘지속적인 스토킹에 대한 증거 확보입니다. 우리나라 법에서는 단순한 스토킹 행위스토킹 범죄를 구분합니다. 그게 뭔 소리인가 싶으시죠? 쉽게 말하면, 한 번이나 두 번 접근하거나 연락한 것은 스토킹 행위라서 처벌 대상이 되지 않고, 이를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해야 스토킹 범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지속성, 반복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보통 접근이 이루어진 기간과 빈도를 가지고 판단합니다. 가령 헤어진 전 남자 친구가 잘 지내?’라고 한 번 메시지를 보내온 건 스토킹으로 처벌할 수 없지만, 일주일 동안 삼십 번의 메시지를 보내면서 다시 만나자고 괴롭혔다면 이것은 스토킹이 됩니다. 따라서 상대방이 연락하거나 접근해 오거나 따라다닌 정황을 객관적인 증거로 남겨두는 게 중요합니다. 메시지 캡쳐, 통화녹음, CCTV나 홈캠 영상, 통화기록 등입니다. 소름 끼치는 선물이나 편지가 온 경우, 곧바로 찢거나 버리고 싶겠지만 그전에 일단 사진과 영상으로 증거를 남겨놓아야 합니다. 부재중 전화도 스토킹 행위로 해석될 수 있으니, 통화 차단 상태에서도 증거 수집은 가능합니다.

  둘째, ‘상대방에게 명확한 거절 의사를 밝힐 것입니다. 스토킹처벌법에서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한접근을 처벌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기서 상대방의 의사’, 피해자의 의사는 반드시 대놓고 얘기하지 않아도 묵시적인 거절의 의사도 포함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게 해석되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배우와 팬, 작가와 팬, 헤어진 연인 등의 사이에서, ‘앞으로 연락하지 말라, 연락받기 싫다라고 명확히 얘기하지 않으면 그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걸 상대방은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런 이유로 스토킹 사건이 경찰이나 검찰에서 불송치 또는 무혐의 처분이 나거나, 재판 단계에서 무죄 판결이 나는 경우가 흔치않게 있습니다. 그래서 스토킹 전문 변호사들이나 여성청소년과 경찰관들은 스토킹 피해자를 상담하게 되면, ‘지금 당장 휴대폰을 꺼내 상대방에게 연락받기 싫다고 명확히 얘기해라라는 조언을 가장 먼저 해주곤 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정보, 스토킹을 처벌할 때 목적을 따지진 않습니다. , 반드시 상대방에게 이성적 호감이 있어서 쫓아다녀야만 스토킹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웹툰 작가들이나 웹소설 작가들을 보면, 팬들과의 사이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동료 작가나 작가 지망생, 회사 관계자 등 다양한 사람들과 분쟁이 생기기도 합니다. 제가 상담했던 어떤 웹소설 작가는 자신에게 표절 시비를 제기했던 다른 웹소설 작가 및 그 팬들에게 몇 년간 사이버 불링을 당했는데, 심지어 개인 신상이 공개되고 집과 회사로 협박 우편물이 날아들기까지 했었습니다. 이처럼 상대방에게 보복 목적이나 적대감을 품고 계속 접근하는 것도 스토킹으로 처벌받습니다. 채권 채무 관계 등 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당한 절차로 해결하지 않고 스토커처럼 쫓아다니고 메시지 폭탄을 퍼붓는 것 또한 엄연한 스토킹입니다.

  웹툰 작가는 팬덤이 중요한 직업인 만큼, ‘안티들에게 시달릴 가능성도 큰 직업군입니다. 나와 내 가족, 내 주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스토킹 피해를 입었을 때 가만히 참고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응해 법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또한 평소 받는 DM이나 쪽지, 메일 중 이상한 느낌을 주는 메시지가 있다면 이 또한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됩니다. 팬이 사생이 되고, 스토커가 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스토킹의 공포를 가장 잘 담아냈다고 평가되는 영화 미저리의 무시무시한 스토커와의 만남도 처음에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저는 작가님의 넘버원 팬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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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람

필자 서아람은 전직 검사이자 현직 변호사로서, 카카오페이지 추미스 공모전 2회 수상으로 웹소설 작가로 데뷔한 후 에세이, 웹소설, 동화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서 출간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로서 주로 다루는 분야는 사기, 성범죄, 보이스피싱 등 형사사건과 학교폭력, 저작권 관련 분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