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보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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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러문은 아청법위반인가, 음란물과 창작물의 경계는?

웹툰 보는 변호사 – 만화를 만드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알아야 할 법 이야기 20화

2025-03-16 서아람

세일러문은 아청법위반인가, 음란물과 창작물의 경계는?

  올해 어린이날 연휴, 일산의 한 페스티벌 행사장에 난데없이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누군가 아동음란물을 전시하고 있다는 신고가 112에 접수된 것입니다. 문제의 행사장은 서브컬처 행사인 일러스트 페스티벌이었는데요. 한 부스에서 어린이 런치세트라는 제목으로 미성년자 캐릭터를 성적으로 표현한 패널을 전시하면서 일부 관객들에게 불쾌감을 준 게 문제였습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관은 어린이 런치세트전시물이 성인 입장객만 들어갈 수 있는 별도 공간에 설치된 것을 확인하고 부스 폐쇄 등 조치를 하지는 않고 돌아갔지만, 사건 접수는 이루어졌습니다. 다른 날도 아니고 어린이날, 아동을 성적 대상화하는 일러스트가 떳떳하게 전시되었다는 데 많은 사람이 분노를 금치 못했는데요. 일러스트 패널을 설치하는 형태의 전시물은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아청법)에서 처벌하는 영상물, 게임물, 이미지 파일의 형태로 된 음란물은 아니어서 아청법 적용대상은 아닙니다. 대신 일반 형법에 음화 등 공연전시죄가 있으므로, 형법에 의한 처벌은 가능합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성인 인증을 받고 들어가는 곳인데 뭐 어떠냐’, ‘실제 아동을 착취하는 것도 아니고 가상의 인물을 마음대로 표현하는 것도 안 되냐면서 반발이 일기도 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같은 날 다른 행사들도 함께 구설수에 올랐다는 것인데요. 한 성인 지향 웹툰 플랫폼에서는 어린이날 기념으로 아기가 등장하는 BL물 기획전을 선보여 논란이 됐습니다. 이 기획전에서 다룬 BL 웹툰들은 어디까지나 성인 캐릭터들의 연애를 소재로 하고 그 과정에서 아기가 나올 뿐이지만,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아기를 성적으로 소비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습니다. 물론, ‘도대체 뭐가 문제냐, 로맨스 웹툰에서 남녀 주인공간 아기를 낳는 것은 아름답다고 하면서 BL물은 안된다는 건 차별 아니냐는 반박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청법은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을 말하며, 아동과 청소년을 성범죄로부터 보호하고 아동, 청소년이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시행 이후 어느덧 12주년을 맞은 아청법은, 법안 발의 당시부터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특히 정의 조항인 2조가 애매모호하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아청법 제2조 제4호는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를 규정하면서, 대가를 제공하거나 약속하고 신체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접촉·노출하는 행위로서 일반인의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행위를 알선하거나, 아동·청소년에게 하게 하거나,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을 포함시켰습니다. 또한 제5호에서는, ‘아동·청소년성착취물에 대하여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하여 성교행위나 유사성교를 하거나, 신체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접촉·노출하거나, 자위를 하거나 그 밖의 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얼핏 보면 잘 만들어놓은 것 같지만, 저 문구에는 의외로 빈틈이 많습니다.

  아청법 제정 당시 한 여성 웹툰 작가는 당시 글을 올려 여고생 캐릭터가 짧은 치마를 입어서 일반인에게 수치심을 준다면 신고 대상이 되는 거냐, 그렇다면 어린 시절에 봤던 만화 속 세일러문이나 천사소녀도 단속 대상이 되는 거냐고 하면서, 만화는 아동과 청소년이 가장 큰 소비자인데 그들에 대한 표현의 범위가 엄격하게 제약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애초에 법 조항에 인식될 수 있는이라는 주관적인 기준이 들어간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해당 작가의 발언은, 상당히 정곡을 찌르는 지적입니다. 코스프레는 어떨까요? 아동·청소년이 입장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 행사장에서, 길이가 짧은 치마나 가슴이 파인 상의 등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고 돌아다닌다면? 이 또한 법리적으로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신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노출하여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성인물 중에는 성인 커플이 성적 환상을 충족시키기 위해 교복을 입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 또한 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 등장하여 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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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아청법에 대해서는 2015년에 이미 위헌법률심판, 헌법소원 등이 청구되었고, 헌법재판관들은 54로 합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다섯 명의 헌법재판관들은, 하지만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문구는 실제로 오인하기에 충분할 정도를 의,미한다고 하면서,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를 유발할 우려가 있는 수준의 것에 한정되어 헌법의 명확성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가상의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이라 하더라도 지속적인 유포 및 접촉은 아동·청소년의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비정상적 태도를 형성하게 할 수 있으므로, 형벌로 다스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반면, 네 명의 헌법 재판관들은,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표현물이라는 문구가 자의적으로 법을 해석하거나 집행하게 만들 우려가 있고, 가상의 아동·청소년이용 음란물과 실제 아동 성범죄 발생과의 사이에 인과관계에 대해서도 입증된 바가 없다고 하면서 위헌 의견을 냈습니다. 결국, 현행 법제하에서는 아동·청소년이 직접 출연하거나 아동·청소년을 주인공으로 삼지 않고 성인이 출연하거나 성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 의상을 교복으로 하더라도 그 내용이 성적인 것이라면 이를 전시, 배포, 판매했을 때 아동이 출연한 음란영상물과 똑같이 처벌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해당 판결이 나왔을 때, 신문 기사들은 영화 은교도 아청법위반이 될 수 있다는 요지의 기사를 일제히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내려진 지 십 년이 지나고 판례가 상당히 축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청법의 해석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림이나 영상 속의 특정한 인물이 미성년자로 보이는지 누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교복을 입히면 안 된다고 하는데, 교복만 아니면 되는 것인가. 하이틴 컨셉이나 하이틴 의상은 괜찮은 것인가. 안 된다고 하면 어떤 의상을 청소년 같은의상으로 볼 것인가. 심지어 사람이 아닌’ AI나 로봇을 그렸는데 그 AI나 로봇이 미성년자 같은 외모를 하고 노출을 한다면 그건 어떻게 볼 것인가 등등. 최근 RPG 게임에서는 캐릭터나 아바타를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는 옵션을 기본적으로 마련해두고 있는데, 성인의 외형을 가진 캐릭터나 아바타를 유저가 커스터마이징하여 미성년자처럼 꾸미고 노출을 시켜 공개한다면 이 또한 아청법위반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한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놓은 게임사도 법적인 제재를 받아야 하는 걸까요? 과연 이와 같은 규제가 표현의 자유와 창작의 자유를 부당하게 억압하고, 나아가 K-콘텐츠 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것일까요?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애꿎은 성인들만 잡는 것일까요? 그 대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기에, 정답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일단 현행 아청법이 존속될 것으로 보이는 현재 시점에서는, 작가 등 창작자로서 콘텐츠를 창작할 때 그 수위 조절에 매우 신경을 쓸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아동·청소년을 등장시키거나 아동·청소년에 대한 표현을 하게 되는 경우, 그 전체적인 맥락뿐만 아니라 해당 장면이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지 다각도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극적이거나 선정적인 묘사는 최대한 지양하고, 성적인 묘사나 내용이 포함되어야 할 경우에는 그 주제 의식을 분명히 드러내어 불필요한 성상품화라는 지적을 피해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반드시 형사처벌까지 이어지지 않더라도, 웹툰 작가나 웹툰에는 대중의 도덕성 평가 또한 실제 재판 못지않게 엄격하게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네이버 웹툰의 모 작가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의 가슴을 쓸데없이 도드라지게 그린다는 이유로 엄청난 비난 댓글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에 부임한 여자 교사가 남자 초등학생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갖게 되는 내용의 웹툰 또한 아청법 위반이라는 지적을 받아, 웹툰 담당자가 해명문을 올리기까지 했습니다. ‘주인공인 여자 교사는 남자 초등학생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품긴 하지만 연애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남자 초등학생의 연애를 응원하고 선생님으로서의 본분을 지킨다라는 설명이었지만, 반발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는 드라마화까지 되었던 모 웹툰도, 죽은 아내가 초등학생으로 환생해서 남편을 찾아오고 아내 노릇을 하려고 한다는 설정으로 인해 소아성애 같아 불쾌하다는 반응이 있었습니다.

  아청법의 규제 범위에 대한 의견은 중간이 별로 없습니다. 철통같이 규제해서 아동 성범죄의 뿌리를 뽑아버려야 한다는 강경론자들과, 대중은 현실과 창작물을 구별하지 못하는 바보가 아니니 가상의 표현에 있어서는 참견하지 말라는 자유론자들이 거세게 대립합니다. 몇 년 전 어느 국회의원이 아청법 개정안을 발의해 성착취물의 범위를 사진집, 화보집 등 간행물로까지 확대하겠다고 했을 때도, 국회 입법예고 홈페이지에서 오천여개나 되는 찬반 의견이 팽팽히 대립했을 정도입니다. 작가들이 자기검열을 하느라 창작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견해에는 분명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 범죄가 성행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만에 하나를 예방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지나치게 예민한’, ‘프로 불편러가 될 필요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건 하나하나에 대해서 지금처럼 사회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활발히 의견을 내면서, 모두는 아니더라도 대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합의 기준을 마련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판례에서 말하는 시대의 보편적 정서와 가치를 반영하는기준 말입니다. 실제 하급심 판례에서는 아청법 해석에 대한 조금 더 세부적인 기준들을 마련해서 혼란을 줄이려고 하고 있는데, 표현물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외모와 신체 발육에 대한 묘사, 음성 또는 말투, 머리 모양, 착용 복장, 상황 설정, 영상물의 제목, 배경이나 줄거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는 기준입니다. 성도덕 및 성문화가 많이 개방되었다 하더라도, 건강한 사회를 위해 건전한 성적 풍속 내지 성도덕을 보호할 필요성까지 사라진 건 아니라는, 판결문의 한 구절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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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람

필자 서아람은 전직 검사이자 현직 변호사로서, 카카오페이지 추미스 공모전 2회 수상으로 웹소설 작가로 데뷔한 후 에세이, 웹소설, 동화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써서 출간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로서 주로 다루는 분야는 사기, 성범죄, 보이스피싱 등 형사사건과 학교폭력, 저작권 관련 분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