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유학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 (上)
프랑스로 유학 가는 만화가들
만화 작가 중에 유학을 떠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이 이곳 한국이 아닌 저곳으로 유학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배울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경제적인 부담이 될지라도 용기 내 이국땅으로 향한다. 그렇다면 한국 만화가들은 주로 어느 나라로 떠나는 것일까. 배움을 자처하는 데 있어서 특정한 장소나 공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겠지만, 유럽 국가 중 ‘프랑스’는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나라 중에 하나일 것이다. 아무래도 ‘만화’에 대한 인식 자체가 긍정적이고 앙굴렘만화축제(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은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었던 프랑시스 그루와 장 마르디키앙, 그리고 만화학교의 클로드 몰리테르니가 설립하였다. 앙굴렘 시는 만화가들의 개인적인 발표회에 자극을 받아 1974년부터 지원하기 시작했고, 지금의 이름을 걸고 첫 축제를 열었으며, 1976년부터는 앙굴렘 시립박물관에서 작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0년대 프랑수아 메테랑 대통령의 대중문화 정책의 지원을 받아 칸 영화제를 비롯한 프랑스 5대 국제문화행사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프랑스에서 만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술로 인정받았고 점차적으로 만화전시회가 대중적인 인기와 전문가의 호평을 받으며 성공을 거두었다.”(위키백과에서 검색된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 ‘역사’ 부분에서 빌려옴))와 같은 세계적인 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니 그렇다. 그곳에서 자신의 만화를 그리고 발표한다면 국내의 독자뿐만 아니라 해외의 독자와도 만날 수 있으니, 창작자에게는 여러모로 유리한 지점이 있다. 만약 그곳에서 자신의 작품이 인기를 끌거나 상을 받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으니, 작가로서는 더는 바랄 게 없겠다.
따라서 만화가들은 자신의 예술을 펼치기 위해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이곳이 아닌 ‘저곳’으로 문을 두드린다. 오늘 소개할 작품도 이런 맥락 위에 놓여 있다. 좀 더 자세히 말해 김금숙의 <이방인>(딸기책방, 2021), 박윤선의 <아무튼 나는 프랑스에 산다>(사계절, 2017), 임성민의 <Point Zero>(이슾, 2022)는 ‘프랑스’ 유학생 신분으로 공부했었거나, 현재도 프랑스에서 활발히 작업하고 있는 작가이다. 무엇보다도 이 세 작품에는 그림 그리는 이야기가 ‘프랑스’라는 공간과 장소에서 펼쳐진다. 여기서 거론한 작품 이외에도 프랑스 유학생이 만든 작품은 많겠지만, 이 세 작품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프랑스에 가보지 못한 예비 만화가들에게 일정 부분 그곳의 향기와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물론, 이 짧은 글에서는 신인 작가인 임성민에게 초점이 맞추어질 것이다. 독자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한다. 우선, 작가의 ‘욕망’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 표지
최근에 홈통 만화연구실에서 ‘문화다양성추천만화’ 3호 ‘디아스포라’ 편을 작업했다. 이 작업이 완료된 후, 저널리즘 만화가 조 사코(Joe Sacco)에 대한 15분 분량의 짧은 강연(문종필, 서찬휘)과 함께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한 분(박이랑)을 초청해 ‘디아스포라’ 개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온주의(유대인들이 고국 팔레스타인(시온)에 유대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 유대 민족주의운동을 일컫는다. 시오니즘 운동의 확립에는 테오도르 헤르츨이 쓴 <유대국가>가 큰 역할을 했다. 그는 1897년 스위스의 바젤에서 제1차 시오니스트 회의를 소집했으며 이 회의는 1901년까지 5차례 열렸다. 1905년 러시아혁명의 실패 이후 러시아의 젊은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이주하는 유대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은 전쟁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 시오니즘을 지지함과 동시에 아랍인의 협력을 요청하였고, 양자 모두에게 팔레스타인을 내주겠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전쟁의 불씨를 만들었다. 아랍 측에 대해서는 맥마흔선언, 유대인 측에 대해서는 밸푸어선언을 한 것이다. 팔레스타인 문제로 인한 아랍인들과 시온주의자들 간의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영국은 이 문제를 국제연합에 일임하였다. 1947년 10월 27일 국제연합은 팔레스타인을 아랍국가 및 유대국가로 각각 분할할 것과 예루살렘을 국제화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후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국가가 정식으로 성립함으로써 시오니즘은 실현되었다. 또한 1948∼1949년 중동전쟁으로 이스라엘은 국제연합의 결의에 따라 제공받은 땅보다 많은 부분을 아랍으로부터 획득했다. 그러나 아랍 국가들의 반발로 국제연합(UN)이 1975년 11월 ‘결의안 3379조(시오니즘은 인종주의 및 인종차별주의의 한 유형)’를 통과시켰으나 1991년 12월 16일 유엔은 다시 이스라엘의 ‘시오니즘’을 하나의 국가이념으로 받아들이는 인정서를 교부, ‘유엔 결의안 3379조’를 무효화시켰다.(네이버 시사상식사전에서 빌려옴))로 무장한 일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에 살고있는 아랍인들을 내쫓았다. 조사코는 무참히 땅을 뺏겨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팔레스타인>(글논그림밭, 2002)에 담아 놓았다. 그는 민간인으로서 위험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용기 내 직접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가 당시의 부조리와 모순을 르포의 형식으로 재현했다. 이런 점만 놓고 본다면 조 사코는 정의롭고 의로운 인물임에는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도 이 사실에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저널리즘 작가라 하더라도 작가적 욕망을 숨길 수 없다. 이 욕망은 부정적인 것이기보다는 긍정적인 맥락에 작동되는 욕망이기도 하니 장점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부분에서 이 감정에 대한 구체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팔레스타인>에 수록된 〈남자들이란 언제나!〉라는 장에서는 이스라엘 군대와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는 아랍인과의 마찰를 다루고 있는데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팔레스타인을 점렴하고 있으니, 팔레스타인에 있는 아랍인들은 어떤 방식이든지 저항해야만 했다. 그러니 충돌을 목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것이 땅을 잃어버린 사람이 할 수 있는 의무일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을 목격한 조 사코는 다음과 같이 적는다.
나는 군인들이 이쪽 길을 수색하기 전에 떠버리고 싶었다. 그동안 나는 빌어먹게도 벌벌 떨고만 있었다. 이제 15분이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들은 우리를 제지하지 않았다. 나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만하면 모두 잘 됐어. 괜찮았어. 나는 기관총 사격 장면과 불타는 타이어 사진을 얻었다. 내 만화에 아주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뭘 더 바라겠는가... (조 사코, <팔레스타인Palestime>, 함규진 옮김, 글논그림밭, 2002, 143쪽.)
조 사코의 위의 발언에 귀 기울여야 하는 부분은 “내 만화에 아주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라는 대목일 것이다. 이 문장에는 저널리스트로서 자극적이고 위험한 장면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 것이라는 속마음이 숨겨져 있다. 이런 마음을 통해 우리는 아무리 사회적인 부조리와 모순을 이루고 있는 정의로운 예술가라 하더라도 자신의 작품에 쓸모가 없다면 함부로 용기 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부조리를 이용한다는 것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만화(작품)가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 구절이 어떻게 보면 예술가들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목숨을 잃어버린 「나르킷수스와 에코」의 소년처럼 스스로가 보기에 너무나도 사랑스럽기 때문에, 사람이 죽고 죽이는 공간에 직접 들어가 만화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만화가의 ‘욕망’은 조 사코 한 사람만의 것일까. 그렇지 않다. 만화를 그리며 자신의 작품과 세계관을 뽐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
▲ 김금숙의 〈이방인〉 표지
그렇다면, 김금숙의 텍스트 <이방인>은 어떤 욕망을 숨기고 있을까. 이 텍스트는 그림 그리는 것을 배우기 위해 프랑스로 떠난 지수라는 인물이 프랑스인 남편을 만난 후, 고향인 한국에 돌아와 느끼는 문화적 차이에 대해 다룬다. 그런데 만화가 그려진 순서를 생각해 보면 재미있다. 만화가는 분명히 프랑스인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유학 생활을 보냈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자 한국에 계신 부모님에게 남편을 소개하기 위해 방문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문화적 차이를 느끼게 되었을 것이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이 경험은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그러니 이 작품의 시선이 남편인 프레드릭에 의해 고정되었다는 것은 만화가가 자신의 과거를 멀리서 응시하며 작품을 완성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파리에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그림을 다시 시작했다. 붓을 놓은 지 꼬박 2년 만이었다”(김금숙, 「아내의 일기장」, <이방인>, 딸기책방, 2021, 159쪽.)라는 구절처럼 남편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야지만 창작자인 ‘나’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데 유리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 텍스트의 욕망은 자신이 경험한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적 차이를 작품에 녹여내는 데 있다. 어떻게 잘 녹여낼 수 있느냐를 고민했을 때, 관찰자의 시선을 ‘나’가 아닌 ‘남편’에게 줌으로써 가능했다.
이 작품은 김금숙 만화가의 데뷔작이다. 그녀는 최근에 이숲 출판사에서 <내 친구 김정은>(이숲출판사, 2024)을 출간하기도 했으니 정말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작가임을 알 수 있다. 그런 그녀의 데뷔작인 <이방인>은 이처럼 자신의 소소한 삶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시작의 출발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사랑’한다고 해서 마냥 긍정적인 것만을 떠올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랑의 형태는 아름다움과 추함도 섞여 있다. 여기서 아름다움과 추함이란 웃고 울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는 인간의 삶 전체를 말한다.
▲ 박윤선의 〈아무튼 나는 프랑스에 산다〉 표지
만화가 박윤선의 <아무튼 나는 프랑스에 산다> 역시 만화를 그리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겪은 일상을 담는다. 그는 프랑스에서 이방으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텍스트에서도 공감의 차원에서 그런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다양한 이방인들이 등장한다. 자신의 고향에서 추방된 난민부터, 프랑스 국적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이처럼 그가 응시하는 이방인을 향한 시선은 자연스럽게 예술적인 개념을 논하는 데까지 확장된다.
가령, 만화가는 2016년 한국에서 촛불 집회가 한창이던 때,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어떤 방식이든지 국민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물러나야 하는 정의로운 이치를 예술적 잣대와 연결한다. 좀 더 자세히 말해 자신의 작품이 동시대의 독자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쓸모없는 작품이 될 수 있다는 말일 테다. 만화가는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면서 아무리 열심히 개인 작업을 하고 있더라도 독자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잊힐 수밖에 없는 ‘불안’을 꺼내 놓는다. 하지만 최근에 그녀는 〈어마나, 이럴수가 방소저!〉(2024)라는 작품을 통해 “만화계의 ‘칸 영화제’로 불리는 제51회 프랑스 앙굴렘국제만화축에서 아동 부분 최고상”(김미경, 〈박윤선, 앙굴렘만화제 ‘아동 최고상’...‘엄마들’ 수상 불발〉, 이데일리, 2024. 1. 28.)을 받았으니, 그의 불안은 예전처럼 위태로운 것은 아니겠다. 여하튼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이든지 ‘프랑스’는 작가의 상징적인 욕망을 채워주는 장소이자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작가들은 프랑스로 향한다.
물론, 동시대는 프랑스 예술만화인 ‘그래픽 노블’이 정답은 아니다. 한국에서 출발한 웹툰의 경우, 성장세가 요즘 다소 주춤하지만, 최근 10년 동안 큰 성장과 함께한 웹툰을 배우기 위해 한국에 유학 오는 프랑스인도 상상도 해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대의 관성이 강력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종이책에 펼쳐지는 좋은 만화를 찾는다. 프랑스 만화를 상징하는 ‘앙굴렘’ 축제가 1973년에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오랜 전통과 함께 좋은 만화에 대한 관성 역시 막강하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야망이 있는 만화가들은 프랑스로 떠나 영광을 재현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에서 본격적으로 살펴볼 임성민 만화가의 <포인트 제로>는 어떤 프랑스 유학 시절을 담아낼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한 작가의 유학 생활을 그린 작품을 통해, 미래의 만화 지망생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임성민은 이 책 작업 이후, 카카오 웹툰에서 〈겨울의 글쓰기〉(2024)를 연재 완료했다는 것이다. 이 텍스트는 문창과에 입학한 주인공들이 합평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의미(작품)를 완성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는다. 그런데 생각해야 할 것은 이 작업이 임성민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임성민은 그림만을 담당했고, 윤노아가 글을 담당했으니, 공동 작업물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러한 이유로 이 작품은 논의에서 제외하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