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작가들에게 그림 그리는 것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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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有名)과 무명(無名) 사이 (下) - 죽음과 바꾼 능력

만화(웹툰) 작가들에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란? 5화

2024-10-27 문종필

유명(有名)과 무명(無名) 사이 (下)

– 죽음과 바꾼 능력

 

 <조각가> 표지

  「유명과 무명 사이2장에서는 만화가 레아 뭐라비에크의 <그랑 비드>와 만화가 조성환의 <배부르지않아 배부르잖아> 그리고 마이클 그랜디지 감독의 영화 <지니어스>를 통해 예술가의 강박허기실수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 장에서는 우리에게 <만화의 이해>(비즈앤비즈, 2008), <만화의 미래>(비즈앤비즈, 2008), <만화의 창작>(비즈앤비즈, 2008)으로 친숙한 스콧 맥클라우드의 장편 만화 <조각가>(미메시스, 2017)에 대해서 짧게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 텍스트의 주인공 데이비드는 조각가이다. 한때 잘나갔다. 대학생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예술계의 <미다스 왕>이라 불리는 거물급 투자가에게 픽업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주목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 한순간에 스타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6개월 만에 또다시 빈털터리가 되었다. 그의 이런 사연이 문제적인 이유는 그는 단순한 무명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때 많은 사람에게 호명 받으며 최고 작가로 불렸던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그가 지금은 그 누구도 쳐다봐 주지 않는 무명 작가가 된 것이다. 이런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고독은 배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최고의 위치에서 받을 수 있는 대접을 누려본 사람이니 그렇다. 애초부터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더라면 그에게는 올라갈 길밖에 보이지 않았겠지만, 데이비드는 이미 최고가 된 이후 밑바닥까지 내려앉았기 때문에 다시 올라가려는 것이 그 누구보다도 쉽지 않다. 그 과정에는 노력도 노력이겠지만, 우연도 작용했을 것이고 주변에서도 여러 가지 좋은 기운이 받쳐주어야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정점으로 향하는 것이 몹시 두렵다. 그래서 데이비드는 더욱더 무기력한 생활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쓸쓸한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러던 그에게 만화 같은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은 바로 데이비드의 큰할아버지인 해리가 등장해 거래를 제한한 것이다.

 <조각가> 39

  그 거래란 삶과 예술적 재능을 맞바꾸는 것이다. 해리는 데이비드의 삶과 죽음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인지, 어떤 사랑을 하는지, 어떤 가족을 꾸리게 되는지, 어떤 반려견을 키우게 되는지, 이혼한 후 또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만나는지, 아이를 낳고 손자를 언제 보게 되는지, 등 해리는 데이비의 삶과 죽음의 시간을 먼 미래에서 사후적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런 삶이 주어진 반면에 예술가의 삶도 있다고 알려준다. 데이비드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 두 삶 중 궁극적으로는 짧지만 화려한 예술가의 삶을 선택한다. 해리는 묻는다. 다시 예술을 할 수 있다면 뭘 걸겠니?”라고 말이다. 이에 대한 데이비드의 대답은 ……인생을 전 걸 수 있어요이다. 한마디로 말해 데이비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사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삶을 내려놓고, 역동적인 예술가의 삶을 살고 싶다고 해리에게 대답을 한 것이다. 이 발언 이후 그는 능력을 갖추게 되고 삶을 잃는다. 그러나 거래에는 공짜가 없다. , 능력을 갖추게 된 이후, 데이비드는 200일밖에 살지 못한다. 그가 얻은 능력은 조각가로서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초능력이다. 그에게는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고 이 아이디어로 생명과 맞바꾼 엄청난 능력을 활용해 자신의 의도를 반영한 작품들을 마음껏 사람들에게 뽐내게 된다. 물론, 200일의 시간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00일 동안 데이비드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삶을 돌파해 보지만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능력을 익숙하게 만들고 활용해 끝내는 모든 사람이 그의 이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해진다. 하지만 이 유명함이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쓸모가 있을까. 이 의지라는 것도 어느 정도 숭고한지 확신할 수 없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데이비드에게는 사랑하는 여자 메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것도 중요했지만, 이 의도와는 무관하게 데이비드의 삶 자체 역시 소중함을 부정할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면 아무리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곧 죽게 되면 또 무엇이 의미 있겠는가. 최소한의 의미야 있겠지마는 당사자에게는 고통스러울 수 있다. 어쩌면 보통의 삶이 값진 현실이고 예술 자체가 허상일 수 있는 것이다. 데이비드는 뒤늦게 깨달은 이런 소중한 순간을 아쉬워하면서 이 만화는 끝이 난다. 그만큼 이 텍스트는 무명 예술가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우리가 잊지 않고 새겨들어야 문장들이 있다. 이 부분을 독자들과 함께 공유할 필요가 있어서 적어두는 바다.

 <조각가> 258~259

  하나는 데이비드와 그의 친구 올리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올리는 예술을 보는 데 있어서 모든 건 다 주관적이라고 말한다. 반면에 데이비드는 절대적인 것이 있다고 믿는다. , 칸딘스키와 코트 걸이에는 분명한 차이라는 게 있어. 아무도 그 차이점을 인식하지 못해도 분명히, 차이는, 존재한다고 말이다. 이 맥락에서 우리는 동시대의 작품을 평가하는 잣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과연 잣대는 취향의 영역에 속하는가. 아니면 객관적인 지점을 담보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질문은 아주 오랜 시절부터 예술가들 사에서 계속 반복되는 이야기이다. 오랜 시간 동안 치열하게 논쟁 되었던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니 현재도 이 의문은 쉽게 해석되지도 풀리지도 않는다. 우리는 여기서 이 텍스트의 주인공인 데이비드는 잣대를 설득시킬 수 있는 절대적인 것을 찾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두자.

△ <조각가> 411

  다른 하나는 데이비드의 다음 대사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은 한심하게 생각되지만, 전 정말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이 말풍선 뒤에 페널로페 해머는 단지 아주……아주…… 천천히 바꿀 뿐이라고 말을 덧붙인다. 이 말은 굉장히 중요한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누군가는 또다시 예술로는 무엇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야기라는 것, 서사가 있다는 것은 개인적이든지 종합예술이든 좋은 이야기라면 어떤 방식이든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는다고 믿는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주었던 이야기처럼 좋은 이야기들은 여러 사람에게 바통을 이어주며 잊히지 않고 전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야기가 탄생한다는 것, 이야기가 발명된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가 구축된다는 말이 되고, 이런 경향 속에서 세상은 조금은 더 나은 세상으로 아주 천천히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야기를 만든 예술가의 경우는 이 광경을 하루빨리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일 테다. 물건을 사는 것처럼 돈을 지급하면 한순간에 손에 쥘 수 있는 경험과 예술은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예술의 가능성은 언급될 수 있으나, 예술의 효용은 즉답 될 수 없는 것이다. 가령, 시인이자 소설가인 한강의 경우, 그의 작품에서 518 광주와 제주 43을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사후적인 측면에서도 한 명의 소설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수많은 독자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현상으로 인해 지난 우리 역사 속에서 잊히거나 말해서는 안 되었던 금기의 이야기가 전 세계적으로 전파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예술은 어떤 방식이든지 세상을 천천히 바꿀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만화 역시 마찬가지다. 동시대의 만화는 시스템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경향이 지배적이지만, 일부의 소신 있는 만화가들은 자신만의 독법으로 세상을 향해 질문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작가들이라면 어느 정도 조금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이바지하는 것일 테다. 물론, 그 공은 당장 보상받을 수 없을지라도, 이 흔적과 감동은 독자들이 영원히 기억하리라 본다. 그러니 우리는 일확천금을 바라기보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묵묵히 자신의 세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스콧 매클라우드의 <조각가>에 등장하는 데이비드처럼 죽음을 응시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을 듯하다. 당신의 만화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신은 소신 있고 긍지 있게 밀고 나가면 그만이다. 내 몸의 주인은 자신이지 타인이 아니다. 타인의 영향으로 인해 는 발명되지만, 그 발명품으로 새롭게 나를 재생할 필요가 있다. 당신의 삶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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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필

글쓴이 문종필은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이 평론집으로 2023년 5회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밖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2021)과 「좋은 곳」(2022)과 「무제」(2023)을 발표하면서 만화평론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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