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작가들에게 그림 그리는 것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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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검열과 선한 시대의 응시적 검열 (下) - 만화의 검열

만화(웹툰) 작가들에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란? 6화

2024-11-24 문종필

시대의 검열과 선한 시대의 응시적 검열 (下)

- 만화의 검열

  만화 역시도 마찬가지다. 온 시대가 검열에 흔들렸으니, 만화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다. 만화의 검열에 대한 자료는 2017년에 만화영상진흥원에서 제작된 만화 검열의 역사 빼앗긴 창작의 자유(한국만화영상진흥원, 2017)에 잘 담겨 있다. 1990년대부터 최근 웹툰까지 시대적인 검열의 흔적과 검열 원인을 잘 갈무리해 주었다. 최근 웹툰인 이온균의 <전설의 주먹>과 <더파이브>2012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청소년유해매채물로 지정되었다는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 것을 보니, 100년 전 검열부터 최근의 검열 흐름을 독자들이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해두었다. 물론, 세부적이고 섬세한 검열의 흔적을 모두 담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검열이 무엇인지 만화의 영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했는지 독자들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갈무리해 준 텍스트라고 생각된다. 이 글에서도 잠시 살펴볼 테지만, 선한 정치적인 의미에서 작동되는 페미니즘에 의한 수정은 하나도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완해야 할 지점이 상당히 많지만, 당대에 발생했던 시대의 흔적을 정리했다는 데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과거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시대의 검열(?)2024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반복되고 재현된다는 데 있다. 가령, 대만 문화부의 번역출판지원금으로 국내에 출판된 유페이원과 저우젠신이 합작한 <대만의 소년>(마르코폴로, 2024)이 그렇다. 이 작품은 반공이라는 이유로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탄압했던 대만 역사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삶을 견디며 살아온 차이쿨린이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담아 놓은 그래픽 노블이다. 차이쿨린의 일대기라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을 하나로 응축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이 텍스트에서 우리는 과거 어떤 검열이 있었는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한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검열이라는 것이 특정한 나라에서 작동된 것이 아니라, 국적과 상관없이 힘 있는 집단이 힘없는 시민을 통제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여러 나라에 등장하는 검열의 흔적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인간이라는 동물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이기 보다는 이기적인 괴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 이 문장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는 말일 테다. 이런 시대의 검열을 응시하고 있으면 더욱 구체적으로 단순한 검열이 아닌, 인간의 검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 <대만의 소년> 391.

 <대만의 소년> 3권 89.

  “만화(의 내용이) 내용 황당하다는 기사, “귀신에게 홀린 듯 만화에 빠진 아이들이라는 기사, “중리 파출소 만화책 단속이라는 기사, “아동의 건전한 심리를 보호하기 위해 죽현경찰국 분소에서 만화책을 조사하다라는 기사, “무단으로 출판한 만화책 만 권 몰수 아동의 정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이라는 기사, “만화 출판은 반드시 교육부 심사를 거쳐야한다는 기사 등의 신문 내용은 당시의 검열이 어떠했는지를 확인하게 해준다. 그중에 귀신에게 홀린 듯 만화에 빠진 아이들이라는 구절이 특이하다. 현대인의 측면에서 본다면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빠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스마트폰을 모두 압수해 부수고 불태워버리는 것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적인 분위기 탓인지 당시 만화가들은 자유의지로 자신의 살결을 담아 그리기보다는 기계처럼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말해, 자의식이 빠진 만화만이 출판되고 창작될 수밖에 없는 시대적인 환경이 지배적이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당시의 만화가들은 부정적인 사람으로 간주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자의식을 가진 채 자신이 바라본 세상에 관해 이야기하지 못하고 건전하지 않은 오락물에 불과하다는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인 분위기는 만화에 대한 편견을 부각시켰다. 이런 검열 외에도 만화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에 놓여 있는 사람들도 동시에 곤란한 환경 속에 놓이기도 한다. 만화를 창작하는 창작자는 물론, 만화책을 편집하고 출판하는 관계자들 역시 검열된 만화로 인해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물론, 이 이야기가 대만의 이야기라지만 한국만화사를 떠올려보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작자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대는 어떤 방식이든지 창작자들을 제안하고 통제하고 억압했다.

 네이버 웹툰 퐁퐁 작가의 <이세계 퐁퐁남>과 기안84의 <복학왕>

  그런데 생각해야 할 것은 이런 검열의 형태가 단순히 통제나 제재 차원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동시대에는 부정적인 검열이 아닌 선한 검열(?)의 흔적이 페미니즘 담론과 함께한다. 우리는 이 사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물론, 이것은 과거의 검열과는 무관하다. 힘 있는 집단이 약자를 통제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약자가 강자를 검열하는 방식이다. 이런 검열은 권장되어야 한다. 크게 이슈화되어서 독자들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최근 이런 일이 있었다. 국내의 가장 큰 만화공모전인 [네이버 웹툰] ‘지상최대공모전에서 여성을 비하하고 성차별을 강화하는 혐오 표현을 담은 웹툰이 1차 심사를 통과(김효실, 정인선, 여성 혐오 퐁퐁남논란 네이버 웹툰...“가이드라인 있으면 뭐하나, 한겨레일보, 20241030,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1164759.html)해 논란이 발생한 것이다. 심사라고 하는 것은 엄격한 잣대로 덜 좋은 작품과 좋은 작품을 구별하는 행위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심사에서 특정한 대상을 혐오하는 작품이 손쉽게 통과된 것이다. 이는 매우 복잡한 사정을 품고 있는데, 이 작품을 뽑은 심사위원마저도 혐오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에게 선택은 자신의 취향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수많은 작품을 심사 발표날까지 빠르게 선정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해될 수 없는 실수 아닌 잘못이다. 그 작품은 바로 <이세계 퐁퐁남>이다. 여성 혐오가 짙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심사에서 통과되었다는 사실이 독자와 창작자들을 분노하게 했고, 이러한 이유로 이 작품은 플랫폼에서 차단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젠더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많은 독자에게 문제 제기를 받아 작품 연재가 중단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란은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만화가이자 유명 연예인이기도 한 기안84의 <복학왕> 역시 상사와 성관계를 맺은 후, 승진한다는 내용을 그려내 문제가 되었다. 만화가는 급하게 사과문(안녕하세요 기안84입니다. 작품에서의 부적절한 묘사로 다시금 심려를 끼쳐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지난 회차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봉지은이 귀여움으로 승부를 본다는 설정을 추가하면서, 이런 사회를 개그스럽게 풍자할 수 있는 장면을 고민하다가 귀여운 수달로 그려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수달이 조개를 깨서 먹을 것을 얻는 모습을 식당 의자를 제끼고 봉지은이 물에 떠 있는 수달로 겹쳐지게 표현해보고자 했는데 이 장면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또 캐릭터가 귀여움이나 상사와 연애해서 취직한다는 내용도 독자분들의 지적을 살펴보고 대사와 그림도 추가수정하였습니다. 더 많이 고민하고 원고작업을 했어야 했는데, 불쾌감을 드려 독자 여러분들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시는 만큼, 원고 내 크고 작은 표현에 더욱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을 올린 후, 웹툰 새롭게 수정했다.

  그렇다면 동시대는 어떤 방식이든지 페미니즘적인 입장에서 옳은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이 공존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 담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특정한 성을 지지하는 이론인가. 그렇지 않다. 페미니즘이 특정한 성()을 대변하기보다는 누군가를 혐오하고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편견을 품으려는 태도나 시선에 대해 반기든 이론(담론)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세계 퐁퐁남>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나 <복학왕>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인물이 성글다는 것이다. 혐오는 부정되어야 하고, 작가가 그렇게 그렸다면 잘못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생각해 보면 작가는 악인이든 괴물이든 혐오스러운 인물이든 어떤 캐릭터든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생각해 보라. 인간이 항상 정직한가. 인간은 변함없이 아름다운가. 인간은 늘 선한 것만을 추구하는가. 이에 대한 답변은 명쾌하게 답변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고 말이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정말로 다양한 성격의 사람과 괴물 인물이 넘쳐나는 곳이다. 그러니 그 어떤 인물을 그린다고 한들 그것이 무슨 죄가 되겠는가. 문제가 되는 것은 창작자가 인물을 잘 만들어내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혐오가 아니라 창작자가 어떤 의도를 지닌 채 인물을 만들어내느냐이다. 앞선 두 작품의 이야기나 장면들은 말 그대로 창작자가 깊이 생각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인물을 그리는 데 있어서 고심하기보다는 생각나는 대로 편하게 그린 것이다. , 작가주의 정신의 부재일 테다. 그러니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특정한 인물을 그리는 데 있어서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해 인물에 대해 섬세하게 생각하고 사고할 필요가 있다. ‘남성만화가들의 경우, 동시대의 페미니즘 담론이 두렵다거나 신경이 쓰인다고 말하기보다는 악인이어도 진정한 악인, 혐오 발언하더라도 진정한 쓰레기 같은 인물, 그려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인물은 동시대의 검열이 아닌 선한 검열을 슬기롭게 응시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돌파로 인해 만화는 조금은 더 나은 장르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만화연구자들은 단순한 검열이 아닌 잘 잡히지 않는 동시대의 선한 검열의 흔적을 집중적으로 대화하고 토론해야 한다. 작가 역시도 자신이 지목되었다고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예술을 수정하며 갱신해 나가면 된다. 인간은 누구나 과오를 범한다. 죄를 짓는다. 실수를 한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솔직하게 대화하지 못하는 당대의 분위기일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런 모순을 타파할 소중한 작품을 손에 쥐고 있다. 이 주제와 관련해 이 이야기는 언젠가 기회가 있을 때 꼭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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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필

글쓴이 문종필은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이 평론집으로 2023년 5회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밖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2021)과 「좋은 곳」(2022)과 「무제」(2023)을 발표하면서 만화평론을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