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에 음악이 직접적으로 녹아드는 시대 (下) - 만화 속에 펼쳐진 음악의 ‘사연’들
예전에 전지 만화가의 『선명한 거리』에 대해서 짧은 글(「마들렌’과 같은 만화(웹툰) 속 음악」(문종필, 「‘마들렌’과 같은 만화 속 음악」, 『지금, 만화』 22호, 한국만화영상진흥원, 2024, 134~139쪽.))을 쓴 적이 있다. 여기서 내가 ‘마들렌’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텍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이 소설의 주인공(‘나’)이 마들렌(그러다 갑자기 추억이 떠올랐다. …(중략)… 그러나 아주 오랜 과거로부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에도, 존재의 죽음과 사물의 파괴 후에도, 연약하지만 보다 생생하고, 비물적이지만 보다 집요하고 보다 충실한 냄새와 맛은, 오랫동안 영혼처럼 살아남아 다른 모든 것의 폐허 위에서 회상하고 기다리고 희망하며, 거의 만질 수 없는 미세한 물방울 위에서 추억의 거대한 건축물을 꿋꿋이 떠받치고 있다.”(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 스완네 집 쪽으로 1』, 김희영 옮김, 민음사, 2022, 90~91쪽.))을 먹는 순간 과거의 모든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마들렌의 맛과 향기는 그를 평생토록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붙잡는 요소가 굳이 후각과 미각을 품고 있는 음식에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감각은 각양각색인 사람의 성격만큼 다양하다. 자신을 붙잡는 요소가 누군가에게는 ‘마들렌’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넓게 펼쳐지는 ‘파도’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우연히 들렸던 여행 ‘장소’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고독할 때 피웠던 담배 한 개비일 수 있다. 소중했던 과거의 추억을 온전히 소환시키는 이런 요소는 사람이 품고 있는 성격처럼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다. 지금 이 글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마들렌’과 같은 역할을 한다.
앞서 언급한 『선명한 거리』에서도 이러한 사실은 분명히 드러난다. 자전적인 만화를 꾸렸던 만화가는 자신의 창작 여정을 만화로 연출하는 과정에서 음악을 의도적으로 배치한다. 이는 만화 속에 펼쳐지는 음악의 사연을 독자들에게 강인 시킨다. “예로 들면 이런 식이다. “인문계 간 애들을 속물인 양 무시하고, 취업 준비하는 애들을 호구 같다 쳐버리고, 대학 가려는 애들의 노력에도 코웃음 쳤지만, 정작 나는 속 빈 강정”이라고 말하는 과정에서 들려온 김현정의 〈되돌아온 이별〉(1999)의 가사, 미술을 하나의 탈출구로 여겨 미술학원에 다니게 된 주인공이 학원에서 그림을 그리며 들었던 베이비복스의 〈야야야〉(1998)의 노래 가사, 시간이 흘러 미대에 진학한 후 동료들과 강의실에서 그림을 그리며 들었던 김진표 4집 〈아직 못다한 이야기〉(2003)의 가사,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좋아했던 주인공이 텔레비전 앞에서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들었던 2인조 그룹 듀스의 〈나를 돌아봐〉(1993)의 가사, 식구들과 놀이공원 나들이를 갔을 때 들려오던 투투의 〈1과 2분의 1〉(1995) 가사, 가부장적이었지만 따듯한 존재였던 아버지가 들려주던 노래 가사, 마지막으로 힘든 예술가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인디 밴드 그룹〈언니네 이발관〉의 이원석을”(문종필, 위의 글, 136~137쪽.) 텍스트에서 언급한 것은 모두 작품 속 주인공이 삶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펼쳐진 음악이다. 작가는 이 음악을 기억했고 자신의 서사를 논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형식’은 만화가 전지‘만’의 특별한 연출일까. 그렇지 않다. 유페이원과 저우젠신의 최근 텍스트 『대만의 소년』에서도 이러한 형식은 반복된다. 이 텍스트는 중국에서부터 벗어난 독립적이지만 독립적이지 않은 대만의 역사와 함께 펼쳐진다. 주인공인 차이 쿨린이 견뎌낸 대만사를 논하는 과정에서 앞서 다룬 작품처럼 무수히 많은 노래가 대만 현대사와 함께 펼쳐진다. 음악은 이처럼 창작자의 마음을 청각으로 은유‘화’한다.

“저녁 노을 고추잠자리. 어릴 적 본 적이 언제였던가. 산밭의 뽕나무 열매를 조그마한 바구니에 담았던 일은 꿈이었을까?”(1:51) / 동요 〈고추잠자리〉 작사: 미키 로후 작곡: 야마다 고사쿠

“해질녘 먼 곳에 낙엽이 흩날리네 가로수 길에 이별의 정이 애틋하구나 그대를 태운 마차를 떠나 보내고 작년의 이별은 영원한 작별이 되었네 산등성이에는 이루 다 털어놓을 수 없는 추억이 많아요 아득히 먼 곳에서 이국의 하늘을 바라봐요 한 해 동안 쌓인 그리움은 환상이 되고 무심한 세월에 눈물이 솟구치네 수레 바퀴는 그리움의 소리 가로수 길에 이별의 정이 애틋하네 말이 울부짖는 소리 메아리 되어 아득히 저 먼 곳으로 사라지네” (2:37) / 〈황마차의 노래〉 작사・야마다 토시오, 작곡・하라노 타메지, 노래・와다 하루코. 1932년에 발표되었으며, 경쾌한 왈츠 선율로 일본에서 널리 불려진 노래이다.

“편히 잠드소서! 희생된 동지여, 조국을 위하여 더 이상 근심하지 마세요 그대가 흘린 피가 밝힌 길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이끌고 있어요 그대는 민주의 영광이었고 나라사랑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어요 겨울엔 쓸쓸한 바람이 불지만, 봄의 요람이지요 편히 잠드소서! 희생된 동지여, 조국을 위하여 더 이상 근심하지 마세요 그대가 흘린 피가 밝힌 길에서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게요.”(2:44~45) / 〈안식가〉: 원래 제목은 〈편히 잠드소서, 희생된 벗들이여〉이다. 1945년 ‘쿤밍 121참사’에서 진압된 시난연합대학 학생들을 기념하기 위한 노래였다. 대만의 백색테러 시기에 희생당한 동지와 이별의 노래로 각색되었고, 〈편히 잠드소서, 희생된 동지들이여〉로도 불렸다.

“반격, 반격, 대륙을 발견하러 가자! 반격, 반격, 대륙을 반격하러 가자! 대륙은 우리의 국토, 대륙은 우리의 강역 우리의 국토, 우리의 강역 반격해서 돌아가야 한다. 반격해서 돌아가야 해! 반격해서 돌아가자, 반격해서 돌아가자! 대륙을 수복하자. 대륙을 수복하자!”(2:58) / 〈대륙을 반격하러 가자〉: 작곡 ︳리중허. 작사 ︳징수. 중화민국 정부가 추진한 ‘반격과 국가 탈환’의 정치 교육 노래이다.

“토끼를 쫓던 그 산 붕어를 낚았던 그 강은 이젠 꿈속에서만 만날 수 있네 영원히 잊지 못할 내 고향 아버님 어머님은 안녕하십니까? 어린 시절의 소꿉친구들 모두 잘 있지?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릴 때마다 나는 고향 생각이 나요 내 꿈만 이루면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갈 거예요. 산림이 울창한 고향 강물이 맑은 고향”(2:93) / 〈후루사토〉: ‘고향’이라는 뜻의 일본 동요. 오카노 데이이치 작곡, 타카노 작사. 1914년에 발표되었으며 당시 일본 소학교 6학년 음악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어머니는 우리집을 밝히는 달이예요 맑음, 상냥함, 사랑의 빛줄기 창문을 비추고 언제나 어루만져줘요 흐리지 않고 빈틈 없이 어머니, 어머니를 칭송합니다, 찬미합니다”(2:119)

“그대의 웃음과 노랫소리가 내 가슴에 남아요 뜰 안의 햇살은 맑고 아름다워 비할 데가 없고 국화꽃은 곳곳에서 향기를 내뿜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에 내가 어찌 그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대와 나 이별하고부터 내 맘속에 슬픔이 밀려와 이 사랑스런 곳에서 그대 돌아올 날을 헤아리고 있어요 돌아와요 돌아와 날 잊지 말아요 돌아와요 돌아와 난 그대를 기다려요”(2:165) / 〈돌아와요, 소렌토〉: 20세기 초의 이탈리아 민요. 일어와 중국어 판본이 있다.

“그물을 보니, 벌건 눈마냥, 구멍이 크게 뚫렸네. 그물을 수선하려는데, 도구가 없으니, 누가 내 근심을 알까요? 만약 오늘 그만두면, 영원히 희망이 없죠. 앞날을 위해, 그물을 고칠 도구를 찾아야지.”(3:71) / 〈망가진 그물을 고치다〉: 1948년 왕윈평이 작곡하고 리린추가 작사했던 대만어 노래. 원래는 실연의 심정을 하소연하는 것인데, 가사 내용이 전후사회를 ‘망가진 그물’처럼 수리가 필요함을 암시한다는 이유로 1977년 전까지 금지곡이 되었다.

“내가 태어난 마을에 바다를 항해하던 선원이 살았어요 그는 잠수함 속의 세계가 어떤지 우리에게 들려주었지요 그래서 우리는 태양을 향해 항해를 했어요. 푸른 빛의 바다를 찾을 때까지 그리고 우린 파도 아래 노란 잠수함 안에 살았어요 우린 모두 노란 잠수함에 살았어요. 노란 잠수함, 노란 잠수함 우린 모두 노란 잠수함에 살았어요. 노란 잠수함, 노란 잠수함...랄라라-”(3:158~160)

“느낌 따라 떠나요~ 꿈과 손을 맞잡고~ 느낌 따라 떠나요”(4:88) / 〈느낌 따라 떠나요〉: 천자리 작곡, 천즈위안 작사, 쑤루이 노래.

“친애하는 우리의 조국을 노래하자, 오늘부터 번영과 부강을 향해 걸어가리 산을 넘고 들판을 건너, 용솟음치는 황하와 장강도 건너리”(4:126)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오 나는 거기 없소 나는 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오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나는 이미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저 넓은 하늘 위를 지나가네 가을에는 들판 사이에 흩뿌려지는 햇빛이 되고 겨울에는 다이아몬드같이 빛나는 하얀 눈이 되어 아침에는 당신을 깨우는 새가 되고 밤에는 당신을 지키는 별이 되어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나는 이미 천 개의 바람이 되어”(4:134~136) / 〈천 개의 바람이 되어〉 가사는 미국의 시 ‘내 무덤에 서서 울지 마오’에서 유래됐다. 이 시를 일본의 작가이자 가수인 아라이 만이 일본어로 번역하면서 ‘천 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제목을 지었으며, 곡을 붙여 2023년 발매했다.
만화 속 음악의 예가 나열된 감이 없지 않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만화 속에서 ‘음악’의 요소는 1부에서 다룬 것처럼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활용되고, 지금 다루고 있는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창작자가 의미를 부각하며 사용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음악’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음악’적인 요소를 직접 서술하는 방식도 있겠지만, 음악의 요소를 오로지 ‘만화’만으로 재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방법은 1부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음악의 요소를 숨기고 음악의 요소를 만화로 강조하는 연출이 그것이다. 가령, 최근에 읽은 요나스 실드레의 『음과 음 사이에서: 아르보 패르트의 음악 여정』(2024, 마르코폴로)이 이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이 텍스트는 한 음악가의 여정을 통해 ‘소리’의 영역을 차이를 통해 풀어낸다. 이 텍스트는 그림으로 음악을 짓는다. 따라서 동시대의 젊은 만화가 지망생들은 ‘소리’의 영역을 만화‘화’할 줄도 알아야 한다. 더불어 김소희 작가의 『먼지행성』(2024, 아름드리미디어)처럼 텍스트에 적합한 ‘만화음악(주제곡)’을 만들어도 좋을 것 같고, 바람이기는 하지만 미래의 의욕 있고 의식 있는 만화가가 등장해 동시대의 영화 OST처럼 만화책 전부를 총괄하는 OST 만화(웹툰) 음악을 만드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런 날이 언젠가는 꼭 오기를 학수고대해본다. 중요한 것은 이런 진정성 있는 만화가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느리게 작업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무작정 돈을 벌기 위해 만화를 기계처럼 뽑아내는 시스템 속에서는 명작이 나오기는 불가능하다. 만화계는 이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