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웹툰의 만화 강국 공략법 ① 일본 (上)
세계 최고의 만화 강국, 일본을 뒤흔든 K-웹툰
세계 만화 시장을 좌지우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일본 만화계에서 한국 웹툰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일본 주간지 플래시(FLASH)는 “한국 웹툰의 강세로 만화 강국 일본에 위기가 닥치고 있다”면서 일본 만화 앱 시장에서 네이버 웹툰의 일본어 서비스인 ‘라인망가’와 카카오픽코마(구 카카오재팬)의 디지털 만화 플랫폼인 ‘픽코마’의 시장 점유율이 절반 가까이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현재 일본 웹툰 플랫폼 업계는 한국 기업이 양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픽코마’는 2020년 하반기부터 세계 디지털 만화 플랫폼 소비자 지출 1위를 기록했으며,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연간 거래액 1천억 엔을 달성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라인망가’의 성장세가 눈에 띈다. 2023년 12월 기준 ‘라인망가’의 월간 활성 이용자(MAU)는 일본 만화 앱 가운데 최초로 1천만 명을 넘겼다. 작품별 인기도 높아졌다. ‘입학용병’ 한 작품만으로 연 거래액 10억 엔을 넘겼다. 이에 힘입어 ‘라인망가’와 ‘이북재팬’을 운영하는 라인 디지털 프런티어는 지난해 11개월 만에 총거래액 1천억 엔을 돌파하기도 했다. 특히, 네이버 웹툰의 대표작 중 하나인 ‘입학용병’(글 YC, 그림 락현)이 일본 시장에서 거둔 성과는 주목할 만하다. 최근 발표에 의하면, 이 웹툰은 일본 ‘라인망가’에서 월 거래액 16억3천만 원을 돌파했다고 한다.

△ 웹툰 입학용병 ⓒ네이버웹툰
<입학용병>은 어린 시절 비행기 추락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유일한 생존자가 된 유이진이 오직 살아남기 위해 용병으로 살아가던 중 10년 만에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뛰어난 액션과 몰입감 있는 스토리 전개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에서 처음 연재를 시작한 이후 계속해서 높은 인기를 유지해왔으며, 일본에서는 밀리터리 액션과 학원물의 결합이라는 신선한 설정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단일 작품으로 연간 거래액 10억 엔을 돌파한 것은 ‘라인망가’ 역대 최대 기록이다. <입학용병>은 현재 총 10개 언어로 서비스되면서, 3년 만에 글로벌 누적 조회수 13억 뷰의 대형 인기작으로 성장했다. 이 중에서 일본에서만 2년간 누적 조회 수 4억 뷰를 돌파했다.
세계 웹툰 시장의 교두보, 일본
<입학용병>이 대형 인기작으로 성장한 데는 일본 시장에서의 인기가 큰 역할을 했다. 일본에서의 성공이 세계 무대로 나아가는 교두보가 된 셈이다. 카카오픽코마가 최근 유럽 법인의 철수를 결정한 것도 일본 시장에 집중해, 일본에서의 우위를 확고히 하는 쪽으로 사업 전략을 바꾸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왜 한국 웹툰 업계들은 일본 시장에 주목할까.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일본 웹툰 시장을 뒤흔든 한국 웹툰의 영향력(2024)> 보고서에 따르면 ‘만화의 나라’라 불릴 정도로 큰 규모의 만화 시장을 자랑하는 일본은 전 세계 만화 시장의 1/3을 차지하고 있다. 2023년 일본의 만화 시장 규모는 약 6,937억 엔으로 우리나라 전체 만하 시장(웹툰 포함)의 3배에 달한다.
△ 일본 전체 만화 시장 규모(2016-2023, 단위 : 10억엔)
(출처 : shuppankagaku, 出版指標, 報道關係各位(2024.02.26.))
일본은 다채로운 만화 소비 경험을 추구하는 경향과 개별 만화작품에 대한 높은 관심을 토대로 출판만화에 대한 수요를 꾸준히 이어갔으며, 이는 일본 내 웹툰 보급 둔화로 이어졌다. 하지만 한국 기업 네이버와 카카오의 웹툰 플랫폼 ‘라인망가’와 ‘픽코마’는 한국에서의 웹툰 서비스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에 성공적으로 웹툰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네이버의 ‘라인망가’는 만화책처럼 한 장 한 장 넘기는 방식이 아닌, 위에서 아래로 화면을 이동해서 읽을 수 있는 방식(스크롤 방식)을 일본에 처음 도입해 호평을 얻었다. 카카오재팬의 ‘픽코마’는 2016년 말에 일본에서 서비스를 시작하며 ‘라인망가’의 후발주자로 나섰지만, ‘기다리면 무료(기다리면 0엔)’‘1화 단위 연재 시스템’ 등 한국 웹툰 플랫폼의 요소를 적극 도입, 2020년 7월 일본 시장에서 ‘라인망가’를 누르고 만화 앱 매출 1위에 등극했으며, 2023년에는 전 세계 만화 앱 수익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 네이버의 '라인망가' 로고(왼) / 카카오의 '픽코마' 로고(오)
(출처 : 네이버웹툰(왼), 픽코마(오))
주요 콘텐츠가 일본 현지의 출판 만화로 한정되어 있던 ‘라인망가’와 달리 ‘픽코마’는 번역된 한국 웹툰 및 전자책을 제공하면서 <좋아하면 울리는>,<황제의 외동딸>과 같이 국내에서 흥행한 한국 웹툰을 일본에 선보이는 방식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한국 기업들의 노력으로 일본 내 사용자들은 편리하게 웹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고, 만화 소비를 즐기는 만큼 결제 능력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는 일본 내 사용자들 덕분에 한국 웹툰 기업들의 전 세계 만화 앱 수익 중 77%가 일본에서 집계되기에 이르렀다.
한국은 국내와 해외를 아우르는 웹툰 서비스를 제공하며, 웹툰 산업에 있어 괄목할 만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과 일본 웹툰 시장의 성장률을 살펴보면, 일본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은 64.6%의 성장률을, 일본은 31.9%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두드러진 차이를 보였다. ‘만화 강국’ 일본에서 철저한 현지화로 웹툰 생태계를 구축해 시장 견인에 나선 결과다.

△ 한국의 웹툰 시장 산업 규모(2017~2022) (왼), 일본의 웹툰 시장 수익 규모(2027~2023) (오)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2022 웹툰 사업체 실태조사", 2012.(왼), shuppankagaku, 出版指標, 報道関係各位, 2024.02.26.(오))
1억 엔 클럽 : 일본에서 인기몰이 중인 한국 작품들
2024년 6월 4일 모바일 데이터 분석 업체 데이터닷에이아이에 따르면, 지난 5월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를 포함한 일본 앱 마켓에서 네이버가 운영하는 ‘라인망가’가 전체 앱 매출 1위를 기록했다. 2위는 카카오가 운영하는 ‘픽코마’가 차지했다. 올해 초까지만해도 앱 매출에서 ‘픽코마’에 뒤쳐졌던 ‘라인망가’가 단숨에 1위에 올라선 것은 흥행 작품을 연이어 배출한 덕분이다. ‘라인망가’는 지난해 웹툰 <입학용병>,<약탈신부>,<재혼황후> 등에 이어 일본 현지에서 제작한 <신혈의 구세주>까지 월거래액 1억 엔을 넘기는 데 성공했다. 카카오의 ‘픽코마’는 근소한 차이로 ‘라인망가’에 1위 자리를 내줬지만, 여전히 일본 내에서 두드러진 성장을 이어나가고 있다. 카카오픽코마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과 중국 등에서 제작된 웹툰을 일본 시장에 공급하고, 일본 만화를 전자책으로 만들며 서비스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 연간 거래액 10억 엔을 달성하며 인기몰이 중인 <입합용병> 외에 일본에서 1억 엔 이상의 거래액을 달성한 한국 웹툰은 뭐가 있을까?
① 나 혼자만 레벨업
카카오페이지 웹소설로 시작해 웹툰으로 확장한 대작 <나 혼자만 레벨업>은 ‘픽코마’의 일본 시장진출을 성공시킨 기념비적 작품이다. E급 헌터였던 성진우가 성장형 헌터로 각성해 악의 무리와 싸우며 가족과 인류를 지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작품은 2016년 웹소설 연재를 시작으로, 2018년 웹툰화가 진행됐다. ‘픽코마’의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 10위 가운데 최다 조회수를 기록한 작품으로 본편이 약 1억8953만5000회, 외전은 758만6400회가량 조회되며 2억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일본에서의 성공 이후, 전 세계 누적 조회 수가 143억 회를 돌파하며, 글로벌 웹툰 시장을 확장하려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대표 IP로 자리 잡았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나 혼자만 레벨업>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으며 넷플릭스, 티빙 등 OTT에 공개돼 10개국에서 4위 안에 드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심지어 <나 혼자만 레벨업> 애니메이션이 일본 애니메이션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대만 온라인 매체인 입보보전(立報傳媒)은 "나 혼자만 레벨업이 아직 첫 번째 시즌이 끝나지 않았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일본 만화 독점 생태계를 크게 변화시킬 것으로 예상한다"고 분석했다. <나 혼자만 레벨업>은 한국에서 제작된 웹툰이지만, 애니메이션은 일본의 유명 제작사인 A-1픽쳐스가 참여했다. A-1픽쳐스는 <소드 아트 온라인>, <페어리 테일>, <청의 엑소시스트>, <일곱 개의 대죄> 등 유명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경력이 있는 스튜디오다. 나 혼자만 레벨업의 애니메이션의 감독, 각본, 캐릭터 디자인, 음악 등 대부분의 요소가 일본 제작자의 손에서 탄생했다. 입보보전(立報傳媒)은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와 협력하는 외국 만화작품도 있지만 대중성 있는 작품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며 "한국 만화는 물론 타 국가의 만화도 일본 제작사에 높은 평가를 받고 있어 일본 애니메이션 생태계의 다양성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 ⓒ픽코마
② 신혈의 구세주
이계의 생물에 대항해 혈액을 조종하는 능력으로 세계를 구하는 주인공의 성장기를 그린 <신혈의 구제주>는 2024년 1월 일본 현지 웹툰 최초로 월 거래액 1억 엔을 돌파했다. 이는 지금까지 ‘라인망가’에서 연재된 일본 웹툰 가운데 최고액이다. 그동안 일본에서 한국 웹툰이 번역돼 인기를 끈 경우는 많았지만, 현지에서 제작한 세로 스크롤 방식 웹툰이 이처럼 눈에 띄는 성과를 낸 것은 처음이다. 일본 웹툰 제작사 ‘스튜디오넘버나인’에서 제작한 이 작품은 주인공의 성장을 다룬 스토리와 판타지 액션 작화도 흡입력 있다는 평가를 받지만, 무엇보다 일본 제작사에서 만든 웹툰으로 성공했다는 점이 이목을 끈다. 라인망가 내에서 월 거래액 1억엔을 넘긴 웹툰은 이전에도 많았다. 웹툰 <재혼황후>, <약탈신부>가 모두 월 거래액 1억 엔을 넘겼고, <입학용병>의 경우 연간 거래액 10억 엔을 달성했다. 하지만 이는 모두 한국 웹툰을 일본어로 번역한 작품이었다. 웹툰 생태계가 정착되려면 현지 작품이 현지 독자에게 읽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던 중에 성공사례가 나오면서 현지 웹툰 제작 분위기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 웹툰 '신혈의 구세주' ⓒ 라인망가
③ 상남자
2024년 4월 ‘라인망가’에서는 <재혼황후>,<약탈신부>,<입학용병>,<신혈의 구세주>에 이어 1억 엔 클럽에 안착한 작품이 또 나왔다. 오로지 성공만을 바라보며 평범한 직장인에서 유명 기업 CEO 자리까지 오른 주인공이 신입사원 시절로 돌아가 과거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은 웹툰 <상남자>다. <상남자>는 4월 한 달 거래액이 1억1500만 엔을 기록했다. 이 작품은 2020년 네이버웹툰에서 첫선을 보인 후, 탄탄한 스토리와 완성도 높은 작화 및 연출로 호평받으며 한국에서도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현재 네이버웹툰의 자회사인 스튜디오N이 드라마로 제작 중이기도 하다. 한국과 유사한 기업 문화를 지닌 일본에서 평범한 샐러리맨들의 희로애락을 생생한 상황 묘사와 통쾌한 전개로 풀어낸 것이 일본 독자층을 사로잡은 인기비결로 보인다. 그 결과, 한때 ‘라인망가’ 남성 인기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 해외에서는 네이버웹툰 플랫폼을 통해 영어, 일본어, 인니어, 태국어 등으로 연재하고 있다. 김신배 라인 디지털 프론티어 CGO(최고성장책임자)는 "독자 접점을 확대하기 위한 라인망가의 노력과 콘텐츠 경쟁력이 시너지를 내면서 대형 인기작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어 고무적"이라며 "라인망가를 비롯한 네이버웹툰 글로벌 플랫폼에서 작품이 전 세계 독자를 만나 수익을 확대하고 글로벌 IP로 성장하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 웹툰 '상남자' ⓒ 네이버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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