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기반 K-콘텐츠의 성공 비결 ① 드라마 (下)
드라마 시장에서 웹툰이 사랑받는 이유
웹툰 원작 드라마가 우리나라에서 활발히 제작되는 배경에는 웹툰 플랫폼과 드라마 방송 제작자들의 고민이 녹아있다. 물론 웹툰 원작의 드라마가 기대 이상의 흥행성적을 거둔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2021년 당시 웹툰 제작자들과 드라마 제작자들은 한정된 시장으로 인한 수익 창출의 한계와 높은 제작비로 인한 리스크, 새로운 대본 수급의 어려움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웹툰의 드라마 화’는 이러한 문제들에 활로를 열어줬다.
① 웹툰 수익의 증가
웹툰의 드라마 화는 웹툰 플랫폼들이 원작의 영상화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서 더 크게 불붙기 시작했다. 카카오페이지는 ‘2020 슈퍼 웹툰 프로젝트’를 통해 자사의 웹툰을 드라마로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메가 히트 IP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은 바로 <이태원 클라쓰>다. 조광진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웹툰 작가가 직접 드라마를 집필한 첫 작품으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태원이란 작은 거리에서 각자의 가치관으로 자유를 쫓는 젊은이들의 창업 신화 그린 <이태원 클라쓰>는 박새로이 신드롬을 불러일으켰고, 일본 TV 아사히는 이 작품을 <롯폰기 클라쓰>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이태원 클라쓰>는 드라마 방영 후 누적 구독자가 기존의 두 배를 훌쩍 넘긴 1500만, 누적 조회 수는 3억 6000만을 기록하면서 인기 IP의 파급력에 주목하게 했다.

▲(좌) 이태원 클라쓰, (우) 롯폰기 클라쓰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성공을 거두면, 그 인기가 다시 웹툰으로 돌아온다는 공식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웹툰이 영상화되면 원작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는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2022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이후 글로벌 순위 1위까지 오르며 전 세계적 관심을 받았던 <지금 우리 학교는>의 원작 웹툰은 드라마 공개 이후 조회 수가 80배까지 증가했고, 2021년 <지옥>의 원작 웹툰은 첫 2주간 주간 평균 조회 수가 22배, 결제자 수는 14배 증가했다. 디즈니+의 대표작인 <무빙>도 마찬가지다. 이미 2015년 완결된 작품이지만 드라마의 인기를 타고 원작을 다시 보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무려 8년이 지난 작품임에도 드라마 <무빙> 방영 후 하루 평균 조회 수가 카카오페이지에서 22배, 카카오웹툰에서 9배 늘었다. 일평균 매출 역시 카카오페이지에서 12배, 카카오웹툰에서 8배 증가했다.
최근 tvN에서 방영된 <선재업고 튀어>도 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원작 웹소설 매출액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드라마 방영일 기준으로 직전 2주와 이후 2주의 수치를 비교한 결과, 드라마 방영 이후 2주간 매출이 직전 2주 대비 8.2배, 조회 수는 4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웹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동명 웹툰의 매출과 조회 수도 각각 5.5배, 3.6배 뛰었다. 원작 웹소설과 웹툰 모두 드라마 방영 후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한 것이다. <선재업고 튀어>의 원작인 <내일의 으뜸:선재업고 튀어>는 아이돌 류선재와 그의 팬인 임솔의 로맨스를 그린 타임슬립 웹소설로,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연재됐다. 완결하고도 3년이 지난 작품이 다시 주목받는 것은 순전히 드라마의 영향이었다.

▲(좌) 웹소설 ‘내일은 으뜸’(카카오엔터 제공)과 드라마 ‘선재업고 튀어’(tvN 제공)
네이버웹툰에 따르면 웹툰과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상(2019년 6월~2023년 6월 기준·53개 작품)의 공개 10일 전과 공개 후 10일을 비교할 때 원작 거래액은 평균 439배, 조회 수는 33배 상승했다. 이처럼 웹툰과 드라마가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유기적으로 연결된 가운데 앞으로도 공개 예정인 작품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넷플릭스는 <광장>과 <악연>을, 티빙은 <스터디그룹>을, 디즈니+는 <조명가게>를 선보일 계획이다. 또한, 드라마 제작이 이뤄지면 원작 작가의 다른 작품도 특수를 누렸다. 넷플릭스에서 <마스크 걸>이 공개된 뒤 원작 작가 매미(글)·희세(그림)의 <팔이피플>,<위대한 방옥숙>의 조회 수는 각각 18배, 40배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웹툰이 드라마로 제작되면 원작 수익이 증가할 뿐 아니라, 원천 IP의 수명도 덩달아 길어지는 것이다.
② 제작 기간 단축과 안정성
<무빙>의 원작자이자 드라마를 집필한 강풀 작가는 “최근 웹툰의 드라마 화가 많아진 이유는 대중성을 검증받은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대중에게 인기를 끈 웹툰 원작이 흥행보증수표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미 완결된 스토리를 가지고 시장성을 검증 받은 작품은 두 가지 면에서 장점을 가진다. 첫째, 마케팅 효과다. 이미 두터운 팬 층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드라마로 제작될 경우, 세간의 관심을 끌 수 있다. 2D를 통해 만 볼 수 있었던 나의 최애가 배우가 연기하는 실제 인물로 구현된다는 기대감이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불러 모으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제작 리스크 축소다. 기존의 한국 드라마는 16부작 중 절반 정도의 대본을 가지고 제작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보니 한국 드라마는 용두사미라는 오명을 안기도 했다. 하지만 웹툰은 이미 완결된 스토리이기 때문에 그런 위험 요소를 방지할 수 있다. 더구나 당시 몇몇 스타 작가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제작자들은 신인 작가 발굴이 절실했는데, 신인 작가 개인의 역량으로 16부작의 긴 호흡을 끌고 간다는 것은 무리인 경우가 많았다. 웹툰 원작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됐다. 신인 작가와 인기 웹툰 원작을 패키징 함으로써, 신인 작가 발굴과 안정적인 대본 수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길이 열린 것이다. 안정적인 대본은 곧 안정적인 제작 스케줄을 의미했고, 쪽 대본으로 상징되던 불합리한 제작 환경의 개선에도 한 몫을 할 수 있었다. 오리지널에 비해 대본 개발 기간이 단축되니, 제작 기간도 단축됐다. 원작 스토리의 흥행이 검증되고 제작 리스크 관리가 용이하다보니, 배우 섭외나 투자를 받기도 훨씬 수월해졌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오리지널이 작품으로 탄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웹툰의 경우 비교적 빠르고 쉽게 제작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트렌드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영상화에 도전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매력적인 새로운 세계관을 가진 완결된 스토리와 흥행 안정성이 웹툰 원작 드라마 제작의 강점이라는 것이다.
웹툰으로 다시 태어난 드라마
최근에는 웹툰을 드라마로 제작하는 일방향성에서 벗어나, 드라마를 웹툰으로 만드는 경향까지 등장하고 있다. 그간 인기 웹툰이 드라마로 재탄생한 적은 있었지만, 이미 방영된 드라마를 웹툰으로 제작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 주목된다. 이는 하나의 IP(지적재산권)를 다양한 콘텐츠로 가공하는 ‘원 소스 멀티 유스’(OSMU)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네이버웹툰에서 공개된 <굿 닥터>는 드라마를 웹툰으로 제작한 성공적인 사례다. 드라마 <굿 닥터>는 2013년 배우 주원과 문채원이 주연을 맡아 인기를 끈 작품으로, 미국에서 시즌 7까지 리메이크 돼 한국 드라마의 할리우드 진출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자폐성 장애와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주인공이 대학병원 소아외과 레지던트로 활약하는 내용으로 웹툰은 드라마의 큰 줄기를 그대로 따왔다. 뿐만 아니라, 웹툰 특성에 맞게 세부 내용을 각색하거나 새 에피소드를 일부 추가해 독자의 흥미를 끌고 있다.

▲ (좌)드라마 ‘굿닥터’(KBS 제공)와 (우)웹툰 ‘굿닥터’(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웹툰 <해피니스>도 드라마가 원작이다. tvN 드라마 <해피니스>는 가까운 미래에 의문의 바이러스 감염자가 속출하는 세상을 배경으로 한다. 드라마에선 배우 한효주와 박형식이 봉쇄된 아파트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사투를 그렸는데, 웹툰도 같은 설정에서 출발한다. 다만 웹툰에선 주인공이 체내에 감염자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등 드라마와 세부 설정을 다르게 했다. KBS 드라마 <연애의 발견>과 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도 각각 네이버웹툰과 카카오페이지에서 대중과 만나고 있다. 댓글 중에는 드라마와 웹툰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OCN의 <다크홀>과 SBS의 <그해 우리는>은 드라마와 웹툰을 동시에 공개하기도 했다. 웹툰 업계 관계자는 “인기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웹툰은 기존 팬층을 유입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매력적”이라며 “우리 기업의 해외 웹툰 시장 진출도 늘고 있어 드라마와 웹툰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양한 이점에도 불구하고, 모든 웹툰 원작 드라마가 성공한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웹툰에 의존하는 한국 드라마 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나오고 있다. 드라마 업계 관계자는 "지금 웹툰 원작 드라마 쏠림 현상도 결국 유행의 한 부분이다. 웹툰 원작 드라마와 오리지널 드라마의 균형이 필요한데 최근 그 균형이 웹툰 원작 드라마로 급격하게 쏠리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실제 웹툰 원작 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있다고는 하지만 모든 흥행 드라마가 웹툰을 기반으로 제작된 건 아니다. <오징어 게임>을 비롯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연인>등 대중의 큰 사랑을 받은 드라마는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작품이다. 드라마 제작 시장이 어렵다보니 모험을 하지 않는 분위기가 웹툰 원작 드라마의 양산으로 이어졌다는 견해도 있다. 이런 현상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국 드라마 제작 시장을 위해 바람직한 방향성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안정성만을 추구하는 제작 환경은 한국 드라마 시장의 다양성 저해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 이에 드라마 업계에서는 안정성보다 도전을 통해 독창적인 작품을 제작해 다양성을 넓힐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탄탄한 팬층이 있다는 것은 시작부터 비교 대상을 가지고 시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처음 작품을 보는 시청자뿐만 아니라 원작 팬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아야 하는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KBS의 <환상연가>, MBC의 <오늘도 사랑스럽개>는 섣부른 드라마화로 씁쓸함을 맛봤다. <환상연가>는 상반된 두 인격을 가진 남자와 그 남자를 사랑한 여자, 풋풋한 사랑과 지독한 집착을 넘나드는 판타지 사극 로맨스로 반지운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환상연가>는 드라마로 만드는 과정에서 사조현과 악히의 과거, 연월의 성장 스토리 등을 추가했지만, 각색된 부분이 기존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고 전개가 다소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혜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오늘도 사랑스럽개>도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오늘도 사랑스럽개>는 키스를 하면 개로 변하는 저주에 걸린 여자와 그 저주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치트 키지만 개를 무서워하는 남자의 예측불허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로, 차은우, 박규영이 원작과의 높은 싱크로율과 비주얼 합을 자랑해 방영 전 화제를 모았다. 원작 웹툰 역시 평균 별점 9.99를 기록하는 등 1020 여성 사이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고 태국어, 중국어, 영어, 인도네시아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으로 번역돼 한국 웹툰의 힘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마 <오늘도 사랑스럽개>는 1화 2.2%로 시작해 1.5%로 종영하는 씁쓸함을 맛 봤다.
제작비가 치솟고 드라마 제작이 축소되는 현 시점에서 안전한 콘텐츠를 찾고자 하는 것은 방송사와 제작사 입장에서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원작 웹툰은 좋은 소재에 불과하다. 좋은 소재가 모두 성공한 드라마가 되는 것은 아니듯, 좋은 드라마로 재탄생하기 위해서는 드라마에 맞는 각색, 캐릭터에 잘 맞는 배우 등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 있도록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 서로 다른 매체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원작의 인기에만 기댄 드라마가 나오게 되면 K드라마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는 "매체적 특성상 웹툰의 서사와 캐릭터가 드라마에 비해 약할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각색하지 않으면 알맹이 없는 콘텐츠로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야기 완성도에 대한 고민을 기반으로 작품의 질을 높여야 문화 산업으로의 경쟁력을 잃지 않을 수 있다"고 제언했다.
웹툰 원작을 드라마로 제작하는 경향은 IP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시장을 확장시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성이 ‘웹툰다운 웹툰’과 ‘드라마다운 드라마’를 만드는 데 방해요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웹툰과 드라마가 가진 고유한 매력을 키워나가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서로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자극과 시너지를 주고받아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