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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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REA (더 코리아)

사실 한국사(韓國史) 혹은 세계사(世界史)를 다루는 데 있어서, 실증주의적 역사관에 입각하여 문헌이나 유물로 확인할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이야기만큼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도 없다. 과거로 가면 갈수록 신(神)과 인간(人間)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사람들의 집단...

2004-05-07 양준용
사실 한국사(韓國史) 혹은 세계사(世界史)를 다루는 데 있어서, 실증주의적 역사관에 입각하여 문헌이나 유물로 확인할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이야기만큼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도 없다. 과거로 가면 갈수록 신(神)과 인간(人間)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사람들의 집단적인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규범이나 가치관이 제시되는가 하면, 때때로 현대 과학으로도 만들기 어려운 첨단 병기에 대한 묘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무기나 고대의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라마다, 그리고 민족마다 전해오는 이야기가 제각기 다르면서도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민족적 특수성과 인류의 보편성이 결합하여 이러한 종류의 상상은 종종 SF적인 것으로 비약하기도 한다. 물론 대부분 황당무계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매력적인 소재임에는 분명하다. 어떤 이유에서건 ‘과거의 유물에 “초자연적인 힘”이 숨어있고, 그것을 얻는 자가 천하(天下)를 뒤 흔든다’는 것만큼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심을 자극하는 것도 드물기 때문이다. 때문에 만화 『드래곤 볼』에서는 손오공과 부르마가 힘을 합쳐 소원을 들어준다는 7개의 “드래곤 볼”을 모으기 위해 애를 썼고, 영화 『인디애너 존스』에선 고고학자 인디애너 존스와 히틀러의 명령을 받은 나치 독일의 장교가 성궤와 성배를 찾아 서로 죽고 죽이며 사막을 헤맸던 것이다. 그것을 패러디한 만화 『몬타나 존스』는 말할 것도 없고... 어쨌건 간에, 이 만화 『더 코리아(The COREA)』가 이처럼 아직까지도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은 불확실한 과거사에 대해 ‘대담한 가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 작품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천부인(天符印)을 모티브로 한 “천계의 유품”이라는 세 가지 물건을 일종의 병기(兵器)로 해석한 부분에, 이웃 나라 일본의 건국 신화에 나오는 세 가지 신기(神器)를 연결지음으로써, 한일(韓日) 양국간 ‘민족의 시원(始原)’에 대한 논쟁거리를 우리의 시각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자의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것은 주요 배경의 상당 부분을 웅장한 전통 한옥을 묘사하는데 할애한 것을 비롯해서, 비밀 조직과 주요 캐릭터의 이름에 “고려”나 “마립간” 따위를 붙인 것 등에서도 볼 수 있듯, 한편으로는 자문화 중심주의 내지는 배타적 민족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만화에 등장하는 미국과 일본 등 “강하지만 나쁜” 나라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문제는 뒷전으로 돌리더라도) 대다수 한국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동의 하고 있는 민족적 자긍심 내지는 애국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만화는 위정자들이 잠시 실수한 까닭에 잠깐 동안은 다른 나라의 식민지 상태에 놓였던 적도 있었고, 또 지금까지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는 자랑스럽게 말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긴 하지만, “본래 우리가 최고로 잘났다”라든가 “우리에겐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릴 의무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만화의 등장인물들이 필요 이상으로 영어와 독일어를 남발하고, 독일 군복 스타일의 패션과 메카닉 디자인을 선호한다는 점은, 이 만화의 역사관이 그 배경지식과 상상력에 대한 인과관계를 넘어서 단순히 “감성”과 “취향”의 수준에서 머물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를테면 이 작품은 미처 보여주지 못한 설정 자료들과 캐릭터 디자인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만화는 만화일 뿐,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말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온갖 잡다한 지식을 총 동원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후, 스스로 만족할 뿐인 일본의 “오타쿠(おたく) 족(族)”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