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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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늙은 프랑스인의 바

아주 오랜만에 유려한 색채의 만화-전통적인 프랑스 만화에 더 가까운-작품을 한번 만나보자.

2006-03-01 한상정

<한 늙은 프랑스인의 바(Le Bar du vieux francais:1992?1999)>,드퓌(Dupuis)출판사

장-필립 스타센(Jean-Philippe Stassen:1966-)과 드니 라피에르(Denis Lapiere:1958-)


아주 오랜만에 유려한 색채의 만화-전통적인 프랑스 만화에 더 가까운-작품을 한번 만나보자. 이 작품은 드니 라피에르의 시나리오와 장-필립 스타센의 그림체로 탄생했다. 둘 다 벨기에 출신에, 비슷한 도시에서 활동을 시작한 걸 고려해본다면 둘의 공동 작업이 그다지 낯선 일도 아닐 듯 하다. 그림 작가인 스타센은 1986년 데뷔 이후 지금까지 총 7종의 작품을 발표했는데, 이 중 3작품을 글 작가인 라피에르와 함께 작업했고, 나머지는 독자적인 작품이다. 스타센의 최근작들은 거의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룬다. 2000년 드퓌 출판사에서 출간된 <데오크라티아스(Deogratias)>는 르완다에서 일어난 인종학살을 다루고 있으며, 2002년 델쿠르(Delcourt)에서 출간된 <파와, 달의 산들의 나라의 연대기(Pawa, Chroniques du Pays des Monts de la Lune)> 역시 아프리카 소수 부족에 대한 르포 형식의 작품이다. 이렇게 맥락에서 본다면, 모로코의 한 사막에 위치한 바를 중심으로 그린 <한 늙은 프랑스인의 바>는 그림체에 있어서, 더 나아가 소재 면에 있어서도 이후 그의 작품의 모체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첫 권이 출간되자마자 1993년 앙굴렘에서 <감동상>을 비롯 그 외 다양한 상들을 수상한 경력을 가질 정도로 그 작품성을 인정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볼때 그림 작가 스타센을, 그리고 그의 작품 중에서 이 작품, <한 늙은 프랑스인의 바>을 선택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을까.

작품의 겉 표지를 보자마자, 우리는 어딘가 익숙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 테두리 선을 유난히 강조한 선명한 색채, 광기 어린 듯한 눈빛. 위의 이미지에서 우리는 칼날 같은 맛이 부족한 판화작가 오 윤(목판화의 맛을 그 만큼 살린 사람이 어디 있으랴)를 만나고, 그리고 또 다른 묵직한 무게를 만나게 된다.
아프리카에서 돌아와서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제안하는 스타센에게, 라피에르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그림체를 주문했으며, 라피에르가 형성한 시나리오와 스타센이 형성해 낸 그림체는 서로의 요구에 맞아 떨어졌고, 그래서 작품이 만들어 진것이다.
 
이번에는 책의 이어진 몇 페이지를 잘라내어 온 것이 아니라, 군데군데에서 추출해 보았다. 그 선택 기준은, 프랑스 만화의 전통적인 특색이라고 보여지는, 일종의 칸에서의 회화성이자, 또한 이야기의 진행과정 중에서 나름의 중요한 맥락을 차지하는 것, 이 두 가지였다. 그러나 실상은 첫 번째로 더 많이 기울어지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두 번째 기준으로 축출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이유는 ? 음...일단 본 다음에 다시 생각해보자.


주인공인 라일라는 유럽에 사는 아랍계이며,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결국 가출하게 되고 , 모로코로 우연히 가게 된다. 또다른 주인공인 셀레스탕은 이유는 설명되지 않지만, 자신의 부족으로부터 어린 동생 쿠디와 함께 도망쳐 나오지만, 쿠디는 결국 목숨을 잃는게 된다. 셀레스탕은 혼자 떠돌다가... 모로코로 오게 된다.
 



책의 1권의 끝에 이르면, 이 두 주인공들의 과거를 위의 그림에서 나오는 노인이 독자에게 이야기 해 준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두 각 주인공은 다른 주인공의 과거를 전혀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헤어지고 나서야 편지로 서로에게 과거를 고백하기 시작했지만, 거주지가 불명확한 그들은 둘 다 편지를 노인이 운영하는 바(술집)에 보내기 때문이다. 즉, 오로지 이 노인만이 그 편지들을 뜯어 보고 이야기를 구성해서 이 바(술집)에 들리는 사람들에게 또는 우리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2권에 들어와서 드디어 두 주인공이 실지로 만나는 부분이 그려진다. 이후, 이 두 소년 소녀는 차를 훔쳐 함께 달아나고, 사랑을 나누고...결국은 1년 뒤 다시 나레이터인 노인의 바(술집)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그 사이 서로 편지를 보내기로 한다. 그러나 노인이 운영하는 바(술집)에 불이 나게 되고, 주인인 노인은 불이 난 가게에서 주인공들이 서로 주고 받은 편지들을 건지기 위해 다시 들어갔다가 죽고 만다. 1년이 지난 날, 약속대로 먼저 라일라가 찾아와서 불 타 없어진 바(술집)를 보고 놀란다.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마호메드는 그의 죽음은 자기 탓이 제일 크다며 책망한다.


이후 그 주인공 둘은...마호메드는...어떻게 이야기가 끝나는 지는 그냥 남겨두자. 단지, 지금껏 몇 페이지들을 살펴 보면서, 우리가 이 페이지들을 선택할 때, 왜 내용을 기준으로 선택하기가 어려웠는지 이제는 대답이 약간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특성 자체가 프랑스 만화의 특징과도 연결된다. 아까 얼핏, 첫번째 이미지에서도 보았듯이, 한 페이지에서 한 칸을 오려내서 보면, 그 칸의 시각적 완결성, 정지성, 함축성 등이 쉽게 보인다. 이 한 칸을 따로 액자에 넣어서 책상 앞에 붙여 놓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칸들을 위에 골라 낸 페이지에서 꽤나 많이 찾을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한 페이지가 담고 있는 정보량이 우리 만화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더 많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페이지를 넘기기가 힘들고, 페이지를 요약한다는 것도 쉽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엔 낯설었던 그림체도 2권째로 넘어가면, 이 등장 인물들의 낭만성, 또 그로 인한 사회에의 부적응성, 대책 없음, 사막의 외로움을 표현하는데 적절해 보인다. 윤곽선 외에 무엇이 그와 외부를 분리시키겠는가 ?
그리고 누군가는 또 사막에서 수없이 흘러가는 이야기를 담아 들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 듣는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확실히 <듣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물론 시각적 즐거움도 마찬가지로. top

 

2006년 3월 vol. 37호_02
글 한상정

필진이미지

한상정

만화평론가
인천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