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초기화
글자확대
글자축소

난 꽃미남이 좋아

1990년대를 넘어서면서, 우리 사회의 한 조류로 뚜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다. 물론 여성들이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가꾸고자 하는 시도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어왔으며, 또 그것의 형식적인 측면에 있어서 변화하는 시점이 한 ...

2003-09-30 양준용
1990년대를 넘어서면서, 우리 사회의 한 조류로 뚜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다. 물론 여성들이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가꾸고자 하는 시도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있어왔으며, 또 그것의 형식적인 측면에 있어서 변화하는 시점이 한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의 하나로 자리잡은 것 또한 현실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남성들이 그것을 부추긴 측면 또한 없지 않게 있다고 할 수도 있을 테지만. 그러나 황미리의 이 만화 『난 꽃미남이 좋아』에서 보이는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은 위의 “여성 스스로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시도”와는 격이 다르다. 우선, 아름다움의 대상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초점이 이동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의 관심이, 예전에는 “미인(美人)을 얻기 위한 용기 있는 남자들”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반대로 “꽃미남을 얻기 위한 여자의 자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비교적 최근까지 수동적인 여성에 대한 능동적인 남성의 프로포즈를 다룬 이야기는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왔으며, 그리고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동안은 그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것이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시각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미 이러한 “성(性) 역할에 있어서의 고정관념”이 상당한 수준에서 무너지고 있으며, 또한 그것이 다채로운 수단과 방법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성(異性)을 유혹하기 위해 스스로의 외모를 치장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동성(同性)끼리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은 동물들의 세계에서도 흔한 일이거니와, 새삼 여기서 다시 주목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만화 『난 꽃미남이 좋아』는 다르다. 이 작품은 기존의 성 정체성에 대한 고정관념의 근간을 뒤흔든다. 『난 꽃미남이 좋아』의 남성 캐릭터들은 (적어도 여성 캐릭터의 눈을 통해서 본 독자들의 관점에선) 오로지 외모에 의해 평가되며, 또한 외모를 꾸미기 위해 시간과 정성을 쏟거나 혹은 성형수술 등을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닌 “선천적으로 타고난 미모”에 대해서만 고집스레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집착은 남성들이 이른바 “화장발”이나 “조명발”로 왜곡된 여성의 외모를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혹은 미인 대회의 엄격한 심사 기준에 비추어 성형수술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과도 다를 것이 없다. 이 작품에 있어서 만큼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역할이 철저하게 역전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독자들이 이 작품의 많은 부분에서 그 억지스러운 설정(딸을 데리고 4차례나 재혼을 하면서도 바람을 피우는 주인공 최마리의 아버지나, 아버지의 재혼 상대들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보통의 노력으로는 단 하나라도 평상시엔 미처 접하기 어려운 갖가지 취미생활을 마음껏 즐기는 최마리 등)을 참고 그냥 보아 넘긴다고 하더라도, 이 만화를 선호하는(혹은 재미있어하는)가에 대한 여부는 극명하게 나뉘게 된다. 즉, 남성들이 아름다운 여성들의 외모를 감상하며 점수를 매기는 경향 이상으로 여성들 역시 남성들의 외모를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평가하며 즐기는 경향이 있다면, 이러한 부류의 독자들에게 있어서 이 만화는 참으로 재미있고 도움이 되는(?) 만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어디까지나 꽃미남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기 위해 조직 폭력배를 동원해서 방화와 납치 등의 범죄 행위를 서슴지 않고, 또 엄청난 액수의 돈으로 매수하는 등의 과장되고 억지스런 내용을 참아 낼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단순히 특정 독자들에게 재미있는 작품으로 남기엔 이 만화가 짊어지고 있는 “과장과 억지”라는 짐은... 너무 무거운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