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길리마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세계를 하나쯤 갖고 싶어 한다. 특히 어린 아이들의 경우, 그 세계가 더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예쁜 꽃들이 온 땅을 뒤덮고, 푸른 숲 사이로 요정들이 춤을 추는 나라. 인형들이 말을 하고, 동화책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왕자와 공주가 살...
2002-12-04
정모아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세계를 하나쯤 갖고 싶어 한다. 특히 어린 아이들의 경우, 그 세계가 더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예쁜 꽃들이 온 땅을 뒤덮고, 푸른 숲 사이로 요정들이 춤을 추는 나라. 인형들이 말을 하고, 동화책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왕자와 공주가 살고 있는 그런 나라. 있을 수 없는 나라다. 하지만 만화는 우리를 그 나라로 데려다 준다. 어린 시절 우리가 꿈꾸어왔던 그런 세계로… [낭길리마]는 예쁜 만화이다. 작가 하시현의 말마따나 공중에 떠다니는 부유감(浮遊感)을 가지고 읽을 수 있는 만화이기도 하다. 이 만화에서 느껴지는 부유감이란 바로 환상이다. 그리고 낭만. 예쁜 상상의 세계에 부푼 가슴 때문에 몸이 가벼워져 버린 그런 느낌이랄까? 주인공 송보늬는 14살 소녀로 밤의 속껍질이라는 뜻의 독특한 이름을 가진 마르고 귀여운 아이다. 엄마가 보늬에게 11살이나 어린 동생 무늬를 맡기고 나간 어느 날, 무늬는 보늬의 소중한 인형에 낙서를 한다. 화가 치민 보늬는 동생의 엉덩이를 때리고 마침 들어온 엄마는 오히려 잘못을 저지른 무늬를 감싸주며 보늬의 뺨을 때린다. 화가 난 상태에서 학원으로 향하는 보늬. 지하철 역 한구석에서 소리를 지르며 억울함을 삭이고 있는데 이 때 한 열차가 들어온다.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놀랍게도 만화 주인공. 그 열차는 은하철도 999라나! 원래 발레학원이 있는 신사동에서 내려야 하는 보늬. 하지만 열차는 그대로 안드로메다를 향해 떠난다. 바로 여기서부터 작가의 동화적인 상상력이 시작된다. 이왕 타게 된 열차, 좀 더 재미난 곳을 찾아 내려야겠다고 생각한 보늬. 우연히 노선도에서 낭길리마라는 곳을 발견한다. 동화책에서 바라던 꿈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말을 읽은 기억을 떠올리며 그곳에서 내린다. 내리자마자 보늬는 그곳의 공룡들에게 놀라 도망치다가 로위나 공주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 함께 낭길리마의 성으로 향한다. 공주는 그 곳에서 왕자병에 걸린 진짜 왕자 요나탄과 결혼하기로 되어있다. 정말 동화 속에서만 나오는 이야기들이 눈앞에 펼쳐져 감동을 받은 보늬. 하지만 마왕이 보낸 용이 왕자를 납치해가고 성은 아수라장이 된다. 걱정에 휩싸인 낭길리마 사람들. 그런데 낮에 사라진 용이 왕자는 두고 가벼운 로위나 공주를 다시 납치해간다. 정신차린 요나탄 왕자는 보늬와 함께 마왕이 살고 있다는 까르만요까를 향해 로위나 공주를 구하러 간다. 한편 까르만요까에서는 꽃미남 마왕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 까르만요까로 향하는 요나탄과 보늬, 거기에 택시 운전수 토끼(사실은 마차를 몰지만 택시라고 한다). 그들의 모험은 그리 만만치 않은데… 이들의 이야기는 섬세하면서도 시원한 그림체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한다. 이런 그림체는 이 후 [코믹]이나 [프리티]와 같은 작품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바로 이 그림체가 하시현을 인기 작가로 만드는데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화려한 컬러일러스트 역시 반드시 눈여겨 보아야할 부분이다. 10대 소녀들의 온갖 상상력을 다 묶어놓은 종합선물세트 같은 [낭길리마]는 초등학생에서부터 대학생까지 무난하게 읽을 수 있도록 그린 만화라지만 사실 10대 초중반의 학생들에게 가장 크게 어필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꿈을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20대나 30대라 해도 읽어볼 것을 권한다. 마음이 조금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