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입니까?
원래 다 그런 거다. 뭔가 너무 빨리 지나쳐가서 한 대 맞았는데도 가만히 5초 정도 멈추어 서 있다. 그러다가 ‘어? 뭐야?’라고 고개를 돌려본다. 뭔지 알지 못하지만 심증(?)가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도 그렇다. 싫어, 싫어하다가도 어느 순간에 좋...
2002-12-03
정모아
원래 다 그런 거다. 뭔가 너무 빨리 지나쳐가서 한 대 맞았는데도 가만히 5초 정도 멈추어 서 있다. 그러다가 ‘어? 뭐야?’라고 고개를 돌려본다. 뭔지 알지 못하지만 심증(?)가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도 그렇다. 싫어, 싫어하다가도 어느 순간에 좋아라고 말하게 되는 감정. 고량주 따위를 마시고 난 뒤에 느끼는 알딸딸한 느낌. 묘한 감정 속에 순간 묻고 싶어진다. “허걱, 사랑입니까? “ 이미라의 순정 만화 [사랑입니까?]는 바로 이런 내용이다. 사실 이런 제목은 우리 나라에 나와 있는 순정만화 중 70 내지 80 퍼센트 정도의 작품에 그냥 갖다 붙여도 될 만큼 흔한 느낌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미라가 선점한 것이라고 해야 할까? 다소 통속적인 순정만화이지만 제목에 충실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음은 인정한다. 주인공 해인은 그야말로 공주다. 연약함이 지나쳐 집에서 쉬고 있으니까. 게다가 성격마저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싸우는 부모님은 어느 날 별거에 들어가고, 해인은 아버지와 단 둘이 살게 된다. 한편 이런 사정도 알지 못한 체, 친구인 정학을 자기 집에 하숙 시켜주는 대가로 선금을 받아 탕진해버린 해인의 동생 종인. 결국 정학은 해인의 집으로 들어오게 되고, 낯선 남자의 방문이 걱정되는 해인은 친구인 미예에게 정학이 오는 날 함께 있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그 날, 미예는 앞으로 해인과 엮어지게 될 강유를 함께 데리고 오게 된다. 작가의 설정상(!) 그들은 자주 마주치게 되는데… 그 다음은? 이런, 물어보시다니. 앵두나무 우물가에서 물동이와 호미자루를 내팽개친 봄처녀 마냥 마음이 울렁거리는 두 사람의 피어 오르는 사랑의 냄새가 슬쩍 나지 않는가? 두 사람이라면? 짐작하신 바대로 해인과 강유다. 어리숙하면서도 마음 여린 해인과 냉정한 모습에 마음 속 아픈 상처를 지닌 강유와의 사랑 이야기는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다. 자고로 바람기 많은 풍운아를 잡는 것은 요녀도 아니요, 지혜가 넘쳐나는 여자도 아닌, 이런 다소곳하고 여린 여인네이니까. 이 두 사람의 이야기에 작품의 전체적인 초점이 놓여져 있지만 주변의 조연들도 작품 곳곳에서 그들만의 에너지를 뿜고 있다. 해인을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강유를 연적으로 여기는 정학, 사랑보다는 우정을 택하는 해인의 의리파 친구 미예, 다소 방관자 같으면서도 괜시리 강유와 해인이 잘 되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해인의 동생 종인까지… 이 작품을 읽을 생각이 있으신 분이 계시다면 이들도 필히 기억해주실 것! 그리고 그들의 재미있는 별명과 그 의미를 찾는 것도 꼭 해보기 바람!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림체이다. 작가가 2권의 머리말에서 밝힌 바 대로 [사랑입니까]의 그림체는 이전 작품인 [인어공주를 위하여] 혹은 [은비가 내리는 나라]보다 조금 정성이 덜 들어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전작을 읽어본 독자라면 곧 알아챌 수 있으며, 작가 스스로도 반성하고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여전히 90년대 순정만화를 풍미했던 그렁그렁 커다란 눈망울은 이 작품 안에서도 유효하다. 조금 부족해보이는 그림체는 순정만화의 지존께서 잠시 노곤하셔서 그랬거나 혹은 문하생들의 탓이라고 차치한다해도, 작품 속에서 가녀린 모습으로 “사랑입니까?”라고 묻는 듯한 해인의 눈빛이 아직 살아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