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별
『극한의 별』은,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SF(Science Fiction)이다. 이제 겨우 달을 왕복하는 과학 수준을 갖고 있는 인류이기에, 독자들에게 있어서 화성을 주된 모티브로 삼고 있는 이 만화는 ‘상당히 먼 미래’를 다루고 있는 공상과학만화 중의 하나로 여...
2002-12-01
양준용
『극한의 별』은,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SF(Science Fiction)이다. 이제 겨우 달을 왕복하는 과학 수준을 갖고 있는 인류이기에, 독자들에게 있어서 화성을 주된 모티브로 삼고 있는 이 만화는 ‘상당히 먼 미래’를 다루고 있는 공상과학만화 중의 하나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이미 숱한 소설과 영화 그리고 만화에서, 우리 은하계 반대쪽을 제집 드나들 듯 왕복하고 외계인(그런 것이 존재한다면)과 마음대로 의사 소통하는 등, 이 작품 이상으로 머나먼 미래에 관한 이야기들을 해온 탓에, ‘겨우’ 화성에 가는 문제 때문에 자기들끼리 싸우고 목숨을 걸고 신념을 이야기하는 이 만화의 내용이 지극히 ‘현실’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 만화는 단행본 4권속에 “화성”과 그것이 상징하고 있는 “우주”, 나아가서는 온갖 “미지의 것”에 대한 인간의 “도전”을 짧지만 알차게 담고 있는, 보기 드물게 짜임새 있는 작품 중의 하나다. 『극한의 별』은 두 개의 줄거리 축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는 지구와 화성이라는 공간적인 차이만 있을 뿐 동일한 시간대에서 진행된다. 이 만화는 인류 최초로 화성에 선 우주 비행사 스튜어트가 화성 착륙 성공을 지구에 알린 바로 그 직후 미지의 물체에 의해 자신이 타고 온 우주 비행선이 부서지는 것을 목격하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화성으로부터의 통신이 두절되자, 지구에서는 화성 탐사 계획을 중단하라는 압력과 더불어 혹시라도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우주 비행사들을 구조해야 한다는 여론이 팽팽히 맞서고, 이 와중에 21세의 트럭 운전사인 도쿄라는 청년은 NASDA(일본 우주 개발 사업단)의 우주 비행사 선발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바로 이 주인공 도쿄가 다른 후보생들과 함께 NASDA의 우주 비행사 선발 과정에 참가하여 우주 비행사가 되기까지의 치열한 경쟁에 관한 것이다. 이 만화에서는 쉴 새 없이 긴장감을 유지하는 여러 가지 대칭적인 구성을 살펴볼 수 있는데, 한편에서는 대화를 나눌 상대조차 하나도 없고 지속적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불분명한 화성의 열악한 조건 속에서 기존의 물리학적 법칙들로는 해석 불가능한 미지의 물체(스튜어트가 “테세락”이라 이름 붙인)와 마주친 스튜어트의 외로운 싸움이 계속되고, 그와 동시에 지구에서는 미지의 별 화성으로 가기 위해 우주 비행사가 되고자 치열한 경쟁과 정신적 육체적 극한 상황을 극복하는 등장인물들을 배치하여, 내용상 한번도 서로 마주치지 않는 이 두 공간의 주인공들이 “화성”과 “미지의 물체-테세락”이라는 제각각의 목적 의식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구조를 위해 화성에 오고 반드시 구조를 위해 화성에 갈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 모습에서, 이 두 공간 사이를 잇는 매개체 역할을 독자들이 하게 되고 등장인물들의 공감대를 연결시켜주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 스스로 등장인물들과 같은 시간 속에서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 것이다. 구성상의 특징 외에도 우주 비행사를 선발하는 과정, 우주선과 각종 기자재 및 시설, 우주 공간 특히 화성에 대한 사실적이고도 상세한 묘사 등은 충분히 이 작품에 몰입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장치다. 더불어 미지의 물체 “테세락”에 관한 묘사나 “초끈 이론”같은 일반인에게 생소한 현대 물리학의 첨단 이론을 이야기 전개 중에 무리 없이 소개하는 부분 또한 이 작품이 여느 SF 이상의 수준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극한 상황을 견뎌내는 등장인물들의 상식 밖의 발상이야말로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채 이야기를 마무리짓지 않고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서 종결된 야마다 요시히로의 이 작품 『극한의 별』은, 그래서 더욱 볼수록 재미있고 볼수록 안타까운 만화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