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수국 이야기
가끔씩 생각보다 별로 아는 게 없다고 느낄 때, 참으로 당황스럽다. 물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최근 경제학 이론 정도면 오히려 안심이다. 하지만 아주 간단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말문이 막혔을 때면 스스로도 참담해진다. 예를 들면 동물이 그러하다. 돼지, 소, ...
2002-11-30
김경임
가끔씩 생각보다 별로 아는 게 없다고 느낄 때, 참으로 당황스럽다. 물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최근 경제학 이론 정도면 오히려 안심이다. 하지만 아주 간단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말문이 막혔을 때면 스스로도 참담해진다. 예를 들면 동물이 그러하다. 돼지, 소, 고양이, 말, 개, 사자, 호랑이, 얼룩말, 코끼리 등 알고 있는 것을 꼽다보면 초등학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도시에서만 살아서 그렇다는 변명도 너무나 궁색하다. 때문에 동물들, 그것도 흔히 볼 수 없는 것을 능숙하게 그려낸 만화들을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환수국 이야기』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환상의 동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작품이다. 나츠메는 고양이 라오와 함께 환수들의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환수국 휘론의 공주와 기사였던 부모님의 고향이기에 나츠메는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곧 전쟁에 휘말리면서 지구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환수국은 12년에 한번 그 문이 열리기 때문. 이 때 꿈속에서 아키츠의 왕자가 지구로 돌아갈 방법을 암시해준다. 이에 희망을 갖고 아키츠로 향하지만 아키츠의 쌍둥이 왕자들은 나츠메 일행에게 영지 침입으로 가혹한 처사를 행한다. 왕자들에게 쫓긴 나츠메는 성안의 성역에 떨어지고 거기서 최후의 수호동물 고려와 주종계약을 맺는다. 거기서 쌍둥이 왕자의 불행한 과거를 보게 되고, 꿈속의 왕자 히사키를 만난다. 지구로 통하는 문이 성안에 있음을 알게 되지만 나츠메는 쌍둥이 왕자를 구하기로 결심한다. 한편 환수국 나라간의 전쟁은 더욱 심화된다. 고려의 도움으로 새로운 힘에 눈을 뜬 나츠메는 지구 행을 포기하고 환수국에서 자신의 운명을 시험해보기로 한다. 『환수국 이야기』는 배경은 단지 이름 모를 곳, 현실과 다르다는 허술한 환타지 물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즉 환타지 하면 생각나는 것들, 마법사, 중세 풍 기사, 신비한 능력, 괴물과 요정 등을 조합해 놓은 것과는 다르다. 우선 단순한 선-악 대림을 떠나 각 나라간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교묘하게 얽혀있다. 때문에 이들 간의 전쟁은 나름의 정당성과 명분을 가지고 있고 긴박하게 진행된다. 여기에 환수국 자체의 거대한 힘과 관련된 주인공 나츠메가 자리한다. 또 풍성한 볼거리가 등장한다. 현실과는 다른 사건, 인물들의 이야기야말로 환타지의 미덕일 것이다. 작품에서는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종족이 등장하여 잔재미를 주고 있다. 예를 들면, 인어족은 부인이 아이만 낳고 떠나기 때문에 아버지가 자식 부양을 맡는다는 것 등 환수국의 풍습이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아무리 환상적인 세계일지라도 주인공의 고민은 항상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 등 그 밑바탕에는 항상 자신에 대한 문제가 깔려있다. 대단한 힘의 소유자, 한 나라의 공주일지라도 또래 소녀들과 다를 바 없다. 거창하게 환수국의 운명이 걸려있더라도 인간은 자신의 문제를 놓을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환타지 물은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드라마를 엮어간다. 다른 세계로의 유입-고난-인정-성장-귀환이라는 기본 구도 속에서 주인공이 얼마만큼 성장하는 가가 환타지 물의 관건이다. 이미 예정되어 있지만, 『환수국 이야기』의 나츠메가 보여 줄 성장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