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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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龍)

1990년대 초반 [여명의 눈동자]라는 TV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다. 한?중?일의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던 20세기초반을 배경으로,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삶, 사랑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는 내용이다. 평범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격정적인 이야기는 매력적...

2002-11-24 김경임
1990년대 초반 [여명의 눈동자]라는 TV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다. 한?중?일의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던 20세기초반을 배경으로,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삶, 사랑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는 내용이다. 평범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격정적인 이야기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대하드라마가 노리는 점도 바로 그것이 아닐까.『용』도 긴 호흡으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삶을 훑어간 작품이다. ‘서쪽의 용’으로 불릴 만큼 검도에 뛰어난 류는 교토의 무술전문학교에 입학, 평생의 스승 나이토와 만난다. 우연히 구해준 타츠루에게 이끌리게 되고 결혼을 약속한다. 한편 타츠루는 영화배우로 일하면서 국민적 배우로 성장해나간다.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둘은 계속 어긋나지만 결국 만나게 되고 결혼식을 올린다. 류는 자신의 이복 형제 주봉화를 만나면서 영아 때의 기억이 하나 둘 떠오르고 중국 황실의 옥새의 위치를 찾기에 이른다. 주봉화는 옥벽을 통해 홍룡의 국가을 재건하려고 한다. 만주 영화촬영소에 도착한 타츠루는 민영의 이사장 아마카스의 후원에 힘입어 감독으로서 무협영화를 만들게 된다. 작품은 개인의 삶을 통해 역사의 격변기의 시대상황을 고스란히 작품에 담아낸다. 배경은 일본이 아시아의 모든 국가를 일본의 체제하에 묶으려고 시도하던 때다. 시작은 다분 류의 개인적인 드라마에 초점이 맞추어졌지만 뒤로 갈수록 점차 세상을 바꾸려는 한 사나이의 이야기로 스케일이 점차 커지고 있다. 무리하게 작품을 불려나간다는 인상도 없잖아 있지만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변함없다. 당시 동북아의 정세가 어떻게 변하고 있었고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다는 것은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작품 속에서 진하게 느껴지는 것은 평화시대든, 격변기든 과연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이다. 남을 짓밟아야만 내가 살수 있는 상황에서도 과연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는가, 배고픔을 해소하기에 턱없이 모자란 빵 한 조각을 옆 사람과 선뜻 나눌 수 있는가. 작가는 다분히 이상적인 인물 류를 통해 이를 보여준다. 심지 곧은 바른 사나이 류는 검도에도 심취해보고, 걸인들과 같이 살기도 한다. 죽을 고비를 몇 번씩이나 넘기면서도 국가, 신분, 재력을 초월해 모든 사람에게 인간적인 존중으로 대한다. 심지어 자신을 해치려는 사람에게도 말이다. 이런 점에서 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 탁월한 재주를 지닌 인물이다. 그의 호탕함과 인간적인 면모에 반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주변에 모여들고, 이들과 힘을 모아 류는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켜간다. 모 광고를 보면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란 문구가 나온다. 개인적으로 그 힘이란 바로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한다. 동서를 막론하고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소수의 개인이다. 쉽게 영웅이라 부르는 사람들, 혹은 천재 혹은 독재자 등등 확실히 그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하지만 역사를 바꾸는 것,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달리 생각하면 사람들을 움직인다는 뜻일 것이다. 아무리 거창한 일일지라도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용』에서 주인공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씩 연결하면서 거대한 힘으로 만들어간다. 모인 마음은 소리 없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감동적인 이야기임에도 절로 한숨이 나온다. 오히려 너무나 인간적이기에 무지개 처럼 실체 없는 허상처럼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