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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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 시리즈 (거미 무늬 1)

1997년 국내에 1권이 발간되어 (일본에서는 1984년) 현재 26권 진행중인 타마키 신의 『팜 시리즈』는 장기 연재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대작이다. 이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호화롭거나 수선스럽지 않은 감동이 묵직하게 전해져 오기 ...

2002-11-23 박소현
1997년 국내에 1권이 발간되어 (일본에서는 1984년) 현재 26권 진행중인 타마키 신의 『팜 시리즈』는 장기 연재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대작이다. 이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호화롭거나 수선스럽지 않은 감동이 묵직하게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우직한 인내심과 끈기를 가진 전직 의사 카터 오거스는 너무 소중한 것은 오히려 손대지 못하는, 그리하여 사랑하는 여인 쟈넷이 자신에게 지쳐 다른 남자와 결혼할 때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던 바보 같은 남자다. 제임스 브라이언, 신디게이트 조직 보스 아더 네가트의 아들이자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다. 그 두뇌 때문에 양아버지의 미움을 받고 유괴되었다가 형무소 생활을 하는 등 험난한 유년을 살았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공정하고 지혜로운 남자이기도 하다. 카터가 의사를 그만두고 사립탐정을 시작하면서 제임스는 그의 조수가 된다. 또 하나의 주인공인 앤드류 글래스고우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케냐 밀림에서 사자와 유년시절을 보냈다. 동물들과 생활한 덕에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지닌, 제임스를 열렬히 사랑하는 청년이다. 여기에 날카롭고 이성적인 안젤라 번스타인이 합류하여 이상한 사람들의 이상한 동거가 시작된다. 사립탐정 카터에게 들어오는 의뢰를 해결해 가는 옴니버스 형식을 띄고 있는 이 만화의 매력은 각 사건을 통해 던져지는 작가의 진지한 질문들에 있다. 그 질문들은 복잡하거나 고차원적인 것들이 아니다. 오히려 당연시되던 질문들, 그래서 아무 고민없이 받아들이고 답습해 왔던 문제들에 대해 작가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제임스와 앤디(앤드류)의 사랑이 대표적이다. 흔히들 남성간의 사랑은 자극적인 동성애, 금기라는 편견을 가지기 마련이지만 작가의 관심은 사랑의 본질에 있다. 제임스를 사랑하여 하루만 떨어져 있어도 살 수가 없고 아예 그의 일부가 되고 싶어하는 앤디의 모습에서 독자들은 동성애를 읽기보다 "사랑"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한다. 물론 이들의 사랑은 플라토닉 러브와도 다르다.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는 육체를 배제한 정신뿐인 사랑을 의미하지만 제임스와 앤디의 사랑은 육체나 정신 따위의 구분없이 상대를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전부 던지는, 동물적인(순수한) 사랑이다. 제임스의 과거를 설명하는 2권에서는 작가의 소박하고 건실한 인생관을 읽을 수 있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어린 제임스에게 연구소의 박사는 말한다. "언젠가 무해한 사람을 만나거든… 작은 인류에의 공헌을 바라고, 분수를 아는… 그리고 자신의 미약함에 괴로워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거든… 주저 말고 그의 힘이 되어 주거라." 이 말은 제임스 인생의 최우선적인 신념이 된다. 이러한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답은 21권부터 시작된 "사랑이 아니라…" 시리즈에서 정점에 이른다. 아프리카 오와킹족의 자연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오와킹족 왕 샤카가 미국에 온다. 카터 일행은 샤카왕의 신변 보호를 계기로 이 사건에 개입한다. 그러나 이 의뢰는 단순한 신변보호에서 전세계를 상대로 펼치는 자연보호 운동으로 변모한다. 제임스의 연인 시드 캐롤의 강변에서 독자는 새삼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은연중 인간이 최고로 우월한 종이라고 확신해왔던 우리들이 무심코 자행하는 많은 악(惡)들 앞에 자유로운 인간이 누가 있는가, 작가의 외침은 제임스와 캐롤의 입을 통해 큰 울림이 된다. "끝없이 반복되는 기적 끝에… 끝없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난 모든 인간들 중의 한 사람인 내 자신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작가 타마키 신의 국내 유일한 작품 『팜 시리즈』. 이 만화를 통해 독자 여러분도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마련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