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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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과 금

세상에서 가장 참기 힘든 유혹은 무엇일까. 맛있는 음식 혹은 미남 미녀의 미소일수도 있을 것이다. 뭐니뭐니해도 돈을 당해낼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다. 누군가 당신에게 살인의 대가로 5천 만원을 준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물론 무죄를 보장받을 수 있는 안전한 일이다. 하지...

2002-08-20 김경임
세상에서 가장 참기 힘든 유혹은 무엇일까. 맛있는 음식 혹은 미남 미녀의 미소일수도 있을 것이다. 뭐니뭐니해도 돈을 당해낼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다. 누군가 당신에게 살인의 대가로 5천 만원을 준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물론 무죄를 보장받을 수 있는 안전한 일이다. 하지만 덥석 받아들이기도 단칼에 거절하기도 힘들 것이다. 윤리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쉽게 지나치기에는 만만치 않은 돈이기 때문이다. 액수가 커질수록 이러한 고민은 더할 것이다. 이성까지도 마비시키는 돈, 과연 인간은 그것을 지배할 수 있을까. 『은과 금』은 사람의 욕망을 부추기기도 하고 여지없이 짓밟기도 하는 돈의 실체가 실감나게 그려진 작품이다. 경마장에서 한탕을 노리던 모리타는 우연히 거물 긴지를 알게 된다. 그는 지하 금융계에서 일명 ‘은왕(銀王)’이라 불리는 사나이로 보통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돈을 불려간다. 모리타는 긴지 밑에서 돈 버는 방법을 익혀간다. 불법대출, 사기, 도박, 정치가와 뒷거래 등등. 은왕에 버금가는 금왕(金王)이 되기 위한 모리타의 수련이 시작된다. 하지만 회의를 느낀 모리타는 긴지 일당에게서 손을 떼고 악의 세계에서 살아나기 위한 긴지의 싸움은 계속된다. 작품은 제목부터 돈 냄새를 풍긴다. 은과 금은 현재의 화폐 체제 이전에 통화로 사용되었던 것이고 현재도 그 가치는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절대적인 재력을 갖기 위해서는 막연한 동경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야비한 권모술수나 속임수가 있기 마련이다. 작가는 돈을 통해 인간의 어두운 면을 파헤친다. 하지만 작가가 보여주는 우리의 얼굴이란 지긋지긋할 정도로 추악하다. 돈이 없으면 짓밟히고 적은 돈이라도 차지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는 것은 예사다. 인간다운 믿음은 저버린 지도 오래고 오로지 돈만을 쫓는다. 특히 돈의 제왕은 강한 운과 속임수의 귀재로 그려진다. 또 돈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악마로 변하는 무시무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작품 속의 쿠라마에 회장은 사람들을 지하실에서 사육하고 있고 슈호 회장은 자신의 아들들을 서슴없이 죽인다. 욕망에 눈이 어두운 인간의 추악한 면모는 다른 작품 『도박묵시록 카이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때문에 작품 속은 정글과 다름없다. 돈을 가진 자만이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짓밟히는 이름 없는 벌레일 뿐이다. 돈이 곧 인간의 상징이고 힘이다. 이를 차지하기 위해 속고 속이는 것이 되풀이되고 사람들의 얼굴은 일그러질 수밖에 없다. 노부유키 특유의 그림은 이러한 비정함을 한껏 높인다. 광기 어린 눈, 뾰족한 코와 턱, 늘 땀으로 범벅된 얼굴들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선인들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악당들만 가득하다. 악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절대 선이 아닌 절대 악이 있을 뿐이다. 이런 세계가 바로 작가가 보여주는 현실이다. 헝가리의 어느 학자는 돈에 대해 “빛은 나되 냄새 없고 마른 오물”이라 하였다. 또 흔히 세상에서 가장 지저분한 것이 돈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두 적당한 돈을 원하고 또 그것을 위해 일을 한다. 문제는 그 적당함이다.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은 그 적정수준이란 애매하기만 하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살 것인가 아니면 배부른 돼지로 살 것인가. 항상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