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다를 찾아서
이미라는 1986년 『바람의 방향』으로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꾸준히 작품을 내고 있는 중견작가다. 순정만화 독자들의 입맛에 맞는 그림체와 이야기로 지금까지도 인기를 얻고 있으며, 근래 들어 복간작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의 이야기는 지금의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가보...
2002-08-10
장하경
이미라는 1986년 『바람의 방향』으로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꾸준히 작품을 내고 있는 중견작가다. 순정만화 독자들의 입맛에 맞는 그림체와 이야기로 지금까지도 인기를 얻고 있으며, 근래 들어 복간작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의 이야기는 지금의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가보다. 『겔다를 찾아서』는 1992년 「요요」에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1993년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가 1998년 재간된 작품이다. 이미라의 작품들의 남녀의 사랑으로 가벼운 텃치로 그려내고 있는 것에 반해 이 작품은 동화의 내용을 모티프로 사용해 사춘기 남녀의 아련한 사랑의 상처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진부한 남녀간의 사랑이야기의 도식을 따르고 있다. 어린 적 친구였던 가을과 지원, 고등학생으로 다시 만난 두 사람, 이들의 만남을 반대하는 지원의 어머니와 이로 인해 헤어진 두 사람. 작가는 평범한 사랑이야기에 동화의 모티프를 집어넣음으로써 신비적 분위기가 풍기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처음 독자의 흥미를 끄는 점은 겨울 어느 날 사라진 서지원을 그리워하는 이가을에게 나타난 가이라는 눈나라 꼬마왕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그는 이가을을 동화 속 공주처럼 겔다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가을은 자신이 공주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겔다일까 아니면 점점 서지원처럼 변하는 가이라는 남자가 서진원의 영혼일까. 수수께끼를 풀 듯 이야기는 이가을과 서지원이 헤어지게 된 과거의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가이는 서진원의 무의식적 욕망이 현실로 구체화된 것이고, 서지원이 의식불명에 빠진 틈을 타고 현실로 튀어나온 것이다. 자신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가이는 얼음성에서 뛰쳐나와 성장함에 따라 서지원은 영원히 잠에서 깨어날 수 없게 된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된 가이는 이가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서진원은 잠에서 깨어나다. 『겔다를 찾아서』는 현실의 공간과 환상의 공간의 겹쳐 있다. 현실의 공간은 ‘이가을’과 ‘서지원’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환상의 공간은 눈나라의 얼음성에 갇힌 ‘게이’라는 왕자와 ‘겔다’라는 공주의 사랑이야기가 나온다. 두 공간의 겹침을 통해 판타지적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 작품의 수수께끼 구조는 이중적 반복의 서사구조이다. 현실의 세계에서 이가을-서지원-지원의 어머니의 관계는 판타지적 세계에서 겔다-가이-눈의 여왕으로 반복된다. 전자가 과거의 이야기라면 후자는 현재의 이야기이다. 과거(현실)에서 겪은 이가을의 상처는 현재(판타지)에서 동일하게 반복함으로써 치유된다. 이가을과 겔다는 동일인물이지만 서진원과 가이, 어머니와 눈의 여왕은 다른 인물이다. 비록 서진원의 가을에 대한 사랑이 억압되어 가이라는 인물로 결정화되었지만 가이는 독립된 존재로서 겔다(이가을이 아닌)를 사랑한다. 서진원의 희생이 이가을을 살리듯이 가이는 자신의 희생을 통해 겔다를 살린다. 현실과 판타지, 과거와 현재의 반복되는 이중구조는 같으면서도 다르게 반복되고 있고, 이러한 비동일적 반복이 서사를 이끌어 가는 힘이고 독자의 흥미를 끌어당기는 요인이다. 이미라의 여타 작품들이 사랑이야기를 코믹한 대사와 상황 설정, 순간 순간의 섬세한 장면처리로 독자에게 정서적으로 호소하는 반면 단순한 서사구조와 전형화된 인물 설정으로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겔다를 찾아서』는 이러한 비판을 무색하게 만들만큼 내용이나 형식에 있어서 짜임새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