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의 별
김혜린의 장편 데뷔작 『북해의 별』은 데뷔작이라고 볼 수 없는 주제의식과 당시로서는 매력적인 그림체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이다. 중세 북유럽을 배경으로 억울한 누명을 쓴 영웅의 사랑과 운명을 다룬 작품으로써 기존의 순정 만화에서는 찾기 힘들던 사회의식과 주제를 ...
2002-07-31
김규진
김혜린의 장편 데뷔작 『북해의 별』은 데뷔작이라고 볼 수 없는 주제의식과 당시로서는 매력적인 그림체로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이다. 중세 북유럽을 배경으로 억울한 누명을 쓴 영웅의 사랑과 운명을 다룬 작품으로써 기존의 순정 만화에서는 찾기 힘들던 사회의식과 주제를 담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뛰어난 작품성과 완성도 있는 그림으로 발표당시 큰 인기를 모았고 1996년에 복간되어 순정만화 팬의 환영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김혜린의 『북해의 별』은 작가의 장기인 역사만화에 대한 탁월한 능력을 증명하는 첫 번째 증거가 됐다. 주인공 유리핀 멤피스는 아름다운 귀족적 자태와 뛰어난 성품으로 이목의 집중에서 벗어날 수 없는 영웅이다. 범인이 넘볼 수 없는 아름다움 때문에 국왕의 미움을 사 억울한 누명을 쓰고 연인 에델과 헤어지는 유리핀은 동토의 감옥에서 동지들을 모아 탈출을 꾀한다. 검은 날개라는 해적으로 돌아온 유리핀은 조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에델의 결혼식을 듣게 된다. 『북해의 별』을 이야기할 때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 바로 역사를 배경으로 한 픽션 속에 담긴 사회의식이다. 이 작품이 발간될 당시 민중봉기에 대한 표현과 주제의식으로 대학 내 운동권 학생층으로부터 필독도서로 여겨져 왔을 정도이다. 사회와 민중에 대한 작가의 깊은 관찰은 『북해의 별』에서 끝나지 않고 『테르미도르』, 『불의 검』과 같은 작품을 통해서 재생산됐다. 특히 『테르미도르』는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하여 혁명군 유제니와 귀족 아가씨 알뤼르, 그리고 그녀의 연인 줄르라는 세 인물의 삼각구도가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흥미롭게 진행된다. 또한 작가는 여기에서도 인물의 갈등과 사건을 당시의 민중혁명과 전쟁의 혼란스러운 유럽 사회상과 역사적 인과관계로 맞물려서 표현함으로써 사실성을 담고 있다. 『북해의 별』도 유리핀이라는 이상적인 영웅을 통해서 민중의 권리와 부조리한 귀족의 억압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점으로 『북해의 별』은 다른 기존의 순정만화와 차별화를 두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해의 별』이 사회의식만은 담은 것은 아니다. 작가는 유리핀이 겪는 누명과 탈출, 다시 해적에서 조국을 구하려는 영웅으로 탄생하는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이어가고 있다. 유리핀이 20세에 원정을 마치고 조국으로 돌아오는 첫 장면부터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연인 에델과 처음 만나 군인이 되는 긴 성장 스토리를 회상과 같은 비순차적인 내러티브를 통해서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탈출을 회상하는 장면과 같이 역사극의 긴 시간적 구성에 따른 지루함을 그러한 역순의 방법을 이용해서 날려버리고 있다. 매력적인 그림체로 순정만화 팬을 확보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탐스럽고 긴 은발을 휘날리는 유리핀과 ‘검은머리의 고집스런 웨이브’의 비요른은 당시 『북해의 별』을 사랑하는 여학생의 가슴을 들뜨게 했던 인물들이다. 이처럼 작가는 뛰어난 스토리 텔링과 더불어 아름답고 매력적인 인물들을 표현함으로써 작품성과 인기, 모두 얻게 됐다. 이처럼 『북해의 별』은 탄탄한 스토리와 아름다운 그림,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작가의 주제와 의식이 드러나는 명작이다. 또한 김혜린이라는 우리 나라 순정만화계의 몇 안되는 진정한 작가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지금도 순정 만화의 고전으로 추앙 받으며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은 이 작품의 명성이 그저 시간이 오랜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