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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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

이소영이란 작가를 예전부터 아는 사람은 『체크』라는 작품에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데뷔작 『활옷』(1994)에서 지금까지 발표해왔던 그녀의 작품들과는 이미지나 느낌이 전혀 다른 색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사신』 『에시타』 『메르헨』 등등 단편시리즈에...

2002-04-24 이가진
이소영이란 작가를 예전부터 아는 사람은 『체크』라는 작품에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데뷔작 『활옷』(1994)에서 지금까지 발표해왔던 그녀의 작품들과는 이미지나 느낌이 전혀 다른 색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사신』 『에시타』 『메르헨』 등등 단편시리즈에서 순정월간지 「화이트」(2001년 폐간)에 연재를 시작해서 지금은 격주간지 「이슈」로 자리를 옮긴 『모델』까지. 그녀의 작품들은 판타지라는 장르 속에 머물러 있었다. 작가 스스로 ‘가장 선호하는 장르는 판타지’라 이야기할 정도로 판타지라는 장르에 엄청난 매력을 느끼고 있으며 판타지를 좋아하는 여타의 작가들처럼 공력이 어느정도 쌓이면 스케일 크고, 배경 빵빵하고, 거대한 세계관을 가진 작품을 하나 만들어 보는 것이 그녀의 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천재만화가 천계영이 『언플러그드 보이』를 발표하면서 순정만화계의 흐름은 완전히 바뀌었다. 천계영 이전엔 『별빛속에』 『리니지』 『레드문』 등등 SF 혹은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았다면 이후엔 현실에 바탕을 둔 학원물이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드래곤 라자」를 필두로 판타지 소설이 대중문화의 한 코드를 장식했지만 유독 순정만화계에서 판타지는 독자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이소영도 이런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9년 이소영은 첫 장편연재작으로 『모델』이라는 판타지적인 작품을 선택함으로써 작가로써의 고집과 의지를 비췄다. 물론 그녀는 판타지만 할줄 아는 작가는 아니었다. 이미 단편집 『느낌』에서 그녀만의 색깔을 가진 학원물을 선보인 전적이 있다. 발랄하고, 코믹하고, 가볍게 휙~ 스쳐가는 학원물이 아니라 학원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캐릭터에 묵직한 무게감이 배어 있었다. 사탕발림 같은 만화가 아니라 오래 두고 기억할 수 있는 만화를 그릴 수 있도록, 그리고 오랫동안 만화가로 남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단련시켜온 그녀에게 학원물은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그렇기에 이소영이 시작한 학원물 『<체크』는 가벼이 보아 넘길 수가 없다. 그만큼 작가의 눈이 넓어졌고, 본인 말대로 단골장르가 아닌 곳에 뛰어들 정도의 배짱과 공력을 이젠 갖췄기 때문이다. ꡐ체크- 넓고 좁은 서로 다른 색깔의 띠들이 가로 세로로 교차해서 지나가는 격자무늬ꡑ. 이렇게 보니 흔하디 흔하게 보던 체크무늬 속에도 뭔가 인생이 숨어있는듯한 느낌이 든다. 뭔가를 고집하기에는 가진 게 너무 없어서, 다른 사람의 색깔에 쉽게 물들 수 있고, 필사적으로 자신의 색깔을 찾고 싶어하며, 그래서 더욱 쉽게 상처를 받는 10대의 이미지이다. 『체크』는 10대 중고생을 타겟으로 한 격주간지 「케이크」(2002년 폐간)에서 처음 선을 보였다. 순수하고 내성적인 승아가 약간 복잡한 성격의 두 꽃미남들과 부딪치면서 사랑을 배우고, 성장해가는 이야기이다. 남자 캐릭터들의 카리스마는 여전하고, 여자 캐릭터들은 더 귀여워졌으며, 얼핏 학원물의 공식을 따라가는 듯 하면서도 특유의 내면세계가 언뜻언뜻 비춰져 이 점이 여타의 학원물들과 다른 그녀만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발랄 코믹하며 연애사건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학원물들 속에서 한 소녀의 성장을 그린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아직은 3권까지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세계는 더욱 단단해지리라는 느낌이다. 그런 의미에서 『체크』는 작가 이소영의 세계가 한발짝 더 넓어졌으며,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해갈 줄 아는 유연함이 생겼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