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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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없어

내가 처음으로 만화잡지의 존재를 알고 구입하게 된 것은, 만화를 좋아했던 꽤 어렸던 나이의 나에게 동네 서점 언니가 창간된지 얼마 되지 않은 순정 만화 잡지 「댕기」를 소개해 주시며 부터 였다. 단행본밖에 몰랐던 나에게 만화잡지라는 새로운 장르는 물론 나에게 꽤나 대단...

2002-04-23 김규진
내가 처음으로 만화잡지의 존재를 알고 구입하게 된 것은, 만화를 좋아했던 꽤 어렸던 나이의 나에게 동네 서점 언니가 창간된지 얼마 되지 않은 순정 만화 잡지 「댕기」를 소개해 주시며 부터 였다. 단행본밖에 몰랐던 나에게 만화잡지라는 새로운 장르는 물론 나에게 꽤나 대단한 호기심을 자극했지만, 그보다 더, 그 안에 수록된 주옥같은 작품들로 인해 나는 그 이전의 「댕기」의 창간호까지 구해다 사보는 열정까지 보였었다. 그 때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작품은 바로 김진의 『바람의 나라』와 이은혜의 『Jump Tree A+』, 권현수의 『내일도 맑음』이었다. 작가 권현수는 1980년 월간잡지 「여학생」에서 『청춘행진곡』으로 데뷔한 이후로 『내일도 맑음』, 『지붕아래 소네트』, 『내가 좋아하는 사람』 등등 지금까지도 수많은 작품을 그려오고 있는 순정만화계의 선두주자이며, 보통 십대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들의 고민과 꿈, 사랑에 대해 그려 오랜기간 동안 사랑 받고 있는 작가다. 2001년 시공사에서 출판된 『비밀은 없어』는 아직 우리 나라에는 많지 않은 추리물을 권현수 특유의 가볍고 명쾌하며 풋풋한 느낌으로 그려냈다. 탐정을 꿈꾸는 고교 2년생 양지요와 학교의 초 인기남 강빈, 아르바이트로 아버지의 용역일을 돕고 있는 대학생 최도일. 이들의 훌륭한 트리플 콤비로 하나하나 사건들을 명쾌히 풀어가는 과정은 독자들의 마음을 조였다 풀었다 마음껏 뒤흔들어 놓으며, 결국 사건이 해결되었을 땐 마음속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희열마저 느끼게 해준다. 호기심이 왕성할 시기인 십대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어 보았을 법한 유명인이 되고자 하는 소망, 요즘에도 한창 시끄러운 문제인 이지메, 유산을 둘러싼 문제 등등 다소 무겁게 진행될 법한 이야기를 작가 권현수는 개성있는 그림체와 솔직하고 담백한 스토리로 누구나 가볍게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더구나 한번 읽으면 빠져나올 수 없는 몰입력있는 스토리 구성에서는 오랜 기간 다작을 그려온 그녀의 프로로서의 관록을 보여준다. 단 한가지, 자연스럽지 못하고 약간 과장된 듯한 표정과 모션이 걸리긴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이것도 권현수 작품의 한가지 개성이라고 봐도 좋을 성 싶다. 무엇보다 그녀의 탄탄한 구성력이 그것을 커버해 주기 때문이다. 크게 튀는 비주얼도 아니고 충격적인 소재의 작품도 아니지만, 평범하면서도 언제나 꿈과 희망을 잃지 않아 편안히 친구처럼 독자들의 마음속에 다가가 용기를 북돋아주곤 한다. 이렇게 그녀는 언제나 자신의 포용력 있는 캐릭터들을 통해, 우울하고 슬플 때 보아도 불끈 힘을 내게 해주는 그런 만화들을 독자들에게 선사해주고 있다. 게다가 작품 구석구석에 보이는 그녀의 작품에 대한 애정이 그녀가 좀 더 좋은 퀄리티의 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어찌보면 -보통은 학원물이라는- 비슷한 소재로 쉽게 질릴 수도 있지만, 그와 반대로 타 장르의 작품들과 비교해 볼 때 가장 가까이 독자에게 접근해 동조하며 마음을 쓰다듬어 줄 수 있다는 점이 순정 만화의 강점이 아닐까. 이러한 면에서 언제나 독자에게 쉽게 서슴없이 다가오는 권현수의 만화를 오랫동안 보아온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꿈과 희망’이라는 타이틀 아래 수많은 소재를 시대에 뒤쳐지지 않게 만화로 계속해서 표현하고 있는 그녀의 노력과 작가적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