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량 단편집 1 비올 확률 50%?!
나는 단편집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중편과 장편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단편이라는 것은 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기승전결의 구성에 따라 얼마나 짜임새있게 구성하느냐가 관건인 작품들이 많다. 특히나 한 작가의 발전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그 작가의 초기 단편들과 현...
2002-04-22
김규진
나는 단편집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중편과 장편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단편이라는 것은 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기승전결의 구성에 따라 얼마나 짜임새있게 구성하느냐가 관건인 작품들이 많다. 특히나 한 작가의 발전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그 작가의 초기 단편들과 현재의 단편들을 비교해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림체의 발전보다는 내용 구성의 치밀함과 아이디어의 표현력이 얼마나 변화하였는지를 중요하게 보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단편집들 중에서도 작가의 데뷔부터 초기작들이 담겨있는 단편집을 주목하여 보는 편이다. 『비올 확률 50%』는 1996년 「윙크」 신인 공모전에서 가작으로 당선된 작가, 류량의 데뷔부터 97년까지 발표한 작품들을 모은 단편집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그림체와 짧은 분량에 잘 어울리는 소재들로 구성된 신선한 느낌의 단편들이 눈길을 끈다. 로미오와 줄리엣, 백설 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빨간 구두와 같은 고전작품이나 동화의 소재들을 나름대로 작가 자의적인 해석을 통해 유머스럽게 표현한 작품들로부터, 『비올 확률 50%』, 『허영이의 황금일』과 같은 단편에서는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을 짧은 내용 속에 함축해 넣었다. 특히 고전작품이나 동화의 소재를 채용한 작품들인 『로미엣과 줄리오』, 『잠자던 숲속의 공주』, 『적색경보』 등의 작품은 그 스토리의 뒷 이야기라던가 소재의 차용으로 재미있게 꾸미고 있다. 제목만 보아도 원전의 패러디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은가?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당시의 유행하던 몇몇 요소를 효과적으로 배치한 부분이 재미있어 보인다. 다만 초기의 작품들로 이루어진 탓일까? 조금은 진지하게도 풀어낼 수 있는 좋은 소재를 조금 어린 취향으로 그려낸 탓에 유치한 감이 없잖아 있다. 그림으로 보자면 거칠게 사용된 톤과 조금은 허전해 보이는 배경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데뷔 당시의 작품이므로 현재의 발전된 그림체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류량 작가는 『비올 확률 50%』 이후 단편집 『하데스』를 내고, 『솔직 담백하게』를 「밍크」에서 연재중이다. 잡지 「윙크」 연재에서 잡지 「밍크」로 연재방향을 바꾸며 연령대를 낮춘 격인데, 첫 단편집인 『비올 확률 50%』의 작품들에서부터 그러한 전망이 조금이나마 보였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물론 책 자체는 「밍크 코믹스」에서 나온 것이다.) 어릴적의 아련한 기억과도 같은, 데뷔당시의 풋풋한 작품들은 어떤 작가의 작품이라도 느낌이 좋다. 그 만큼 자라지 않은 새싹같은 청초한 느낌을 주는 단편들이며, 또한 몇 년이 지난 이후에는 작가 자신이 부끄러워할 정도의 내용들이 보여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나는 이 『비올 확률 50%』를 다시 읽어보기를 희망하고 있다. 언젠가 류량 작가가 메이저 작가로 성공을 거두었을 때, 이 단편집을 다시 보면서 어떻게 발전해갔는지 보고 싶어진다. 한번 반짝하고 빛을 낸 다음 사라지는, 삼류 댄스 그룹같은 작가가 아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