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미도르 (THERMIDOR)
『테르미도르』의 혁명시인 세자르는 이렇게 읊조린다. “우리들의 청춘에서 혁명을 빼놓고는 어느 것 하나 연결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들의 영광이자 우리들의 비극.” 1789년 프랑스 혁명의 발발을 시작으로 1794년 산악당의 혁명정부를 무너뜨린 테르미도르 (프랑스 ...
2002-04-20
김규진
『테르미도르』의 혁명시인 세자르는 이렇게 읊조린다. “우리들의 청춘에서 혁명을 빼놓고는 어느 것 하나 연결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들의 영광이자 우리들의 비극.” 1789년 프랑스 혁명의 발발을 시작으로 1794년 산악당의 혁명정부를 무너뜨린 테르미도르 (프랑스 혁명력의 열월) 쿠데타까지의 역사적 격동기는 등장인물들의 삶의 방식을 통제하고 규정하는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점에서 『테르미도르』는 본격적인 역사 만화이다. 소위 순정 작가이면서도 ‘순정’이라는 틀에 머물지 않는 김혜린 작품 세계의 화두는 한 마디로 ‘역사성’이다. 결국 인간의 삶이란 개별적이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나 사회와 불가분의 관계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인데, 상식적인 얘기인 듯 보이지만 이를 텍스트 속에서 짜임새 있게 풀어놓기는 쉽지 않다. 인간의 현실적 고통과 어려움이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조망되는 성격의 것임에도 전적으로 개인적인 차원으로 환원시키는 예를 우리는 대중매체 속에서 수없이 많이 보아왔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역사와 사회를 얘기한다는 것은 단순히 당대의 분위기나 스타일을 끌어오는 것과는 다르다. 여기에는 인간을 둘러싼 환경과 제 관계에 대한 인식과 통찰력이 요구되는데, 이는 두말할 나위 없이 성실한 공부가 요구되는 고단한 작업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적 충실함이 돋보이는 작품이 바로 『테르미도르』다. 이 점과 연결하여 본격적인 역사만화로서『테르미도르』를 꼽게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프랑스 혁명을 “실패한 계급혁명”으로 해석함으로써 작가의 뚜렷한 역사관을 피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사상혁명으로 시작한 프랑스 혁명은 성공한 시민 혁명으로써 그 기치를 드높인 역사적 사건이다. 하지만 인민의 이름으로 사회민주주의를 수행하려고 했던 자코뱅파(산악당)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는 실패한 혁명이 돼버린다. 우리는 흔히 역사란 그 자체로 객관적이라고 받아들이지만, 사건의 나열이 곧 역사가 되는 것이 아니므로 그 안에는 외적 현실을 이해하는 주체가 개입되기 마련이다. 또 공정하고 객관적인 주체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역사에서의 ‘객관성’은 차라리 허구 쪽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의 객관성이란 주체의 시선을 통해서 조망되는 외적 현실이 얼마만큼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 하는 당위성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하겠다. 『테르미도르』가 보여주는 역사관의 당위성은 유제니라는 순백의 영혼을 통해서 표현된다. 비극적 영웅주의에 압도된 감은 없지 않으나, 세속의 떼로 오염되지 않은(조금만 타협해도 좋으련만) 혁명에의 열정은 너무나 순결해서 그 속에서는 이념의 순수성에 대해 한 치의 의심조차 발 디딜 여지가 없다. ‘민중 속으로’라는 혁명의 이상을 머리로 받아들이는 줄르와 달리 유제니는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산악당의 실권 이후 그가 선택하는 비극적 최후도 어쩌면 필연적인 것일지 모른다. 궁극적으로 유제니의 삶을 통해 조망되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인식은 그 어떤 권위 있는 서술에 의해 얻어진 그것보다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또 하나, 『테르미도르』를 보면서 얘기하고 싶은 점은 여주인공의 캐릭터이다. 이 작품이 발표된 1980대 후반에는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역사 속의 여성은 대개가 도피적이거나 수동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 김혜린 역시 데뷔작인 『북해의 별』의 에델라이드는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이후에 그는 여성의 존재를 무대 한 가운데로 가져온 『불의 검』의 아라를 창조하는데, 에델라이드가 아라로 변화하기까지의 그 멀고 먼 여정 가운데에 바로 알뤼느가 있다. 그녀는 소로뉴 숲 레몬의 향기로 휘감은 노래하는 인형의 모습으로 머물지 않는다. 그녀가 그 인형의 집을 박차고 나왔을 때, 그녀는 순정만화의 전형적 캐릭터인 ‘소녀’에서 ‘여성’으로 성장하게 된다. 자신을 둘러싼 모순적 상황을 사회적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인 저항으로 이어가지 못하는 것은 역시 그녀의 한계다. 하지만, 격동기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써 의식의 전환을 일으키며 귀족의 허울을 벗어던지고 유제니를 받아들이는 알뤼느의 캐릭터 속에서 이미 아라의 탄생은 예고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