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와 테러리스트
천사를 소재로 한 만화는 많다. 보통은 하늘의 사자로서의 천사와 지령을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에서의 인간에 대해 그려지곤 한다. 그러나 만약 순진하고 다정다감한 천사와 열혈 소녀 테러리스트가 만난다면? 작가 김지영의 단편집 『천사와 테러리스트』에서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복...
2002-04-23
김규진
천사를 소재로 한 만화는 많다. 보통은 하늘의 사자로서의 천사와 지령을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에서의 인간에 대해 그려지곤 한다. 그러나 만약 순진하고 다정다감한 천사와 열혈 소녀 테러리스트가 만난다면? 작가 김지영의 단편집 『천사와 테러리스트』에서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테러리스트가 되고자 집을 뛰쳐나온 16세의 소녀 운희가 우연히 천사 단오, 그리고 다른 동거인 유결, 시영과 동거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과 감동을 그리고 있다. 신인 작가의 손을 거친만큼 이 작품에게서는 신세대와 공감을 이룰만한 요소들이 몇몇 보인다. 우선, 스토리 내내 보이는 스타일리쉬한 등장인물들의 화려한 복장과 다양한 헤어스타일은 신세대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만하다. 그리고 주연급 캐릭터들의 설정들도 꽤 조화롭다. 싸이코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저 유쾌함을 좋아할 뿐인 시영, 순수함의 상징으로 일행들의 활력소가 되어주는 단오, 불행한 과거를 딛고 쿨한 인생을 즐기고 있는 유결. 개성이 뚜렷한 성격에다 세 남성 캐릭의 수려한 외모까지 더해, 특히 중․고생 소녀층팬들이 즐겁게 감상할 만한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신선하면서 가볍고 유머스런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며, 다혈적이고 앞뒤못가리는 성격인 운희의 내면적 성장과정을 지켜 보는 동안 『천사와 테러리스트』를 보고 있는 독자 역시 운희의 행복과 실의에 따라 웃음, 또는 울음을 짓게 될 것이다. 또한 반항적이고 타인을 마음속으로부터 거부하던 운희가 단오일행을 만나면서 부터 형성해 가는 정신적 성숙과 더불어, 끝내는 어두운 현실을 직시하고 용기를 내 더 나은 미래를 움켜 쥐려는 장면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단편 만화의 특징은 아마도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만큼만 보여주는 깨끗한 스토리 구성이 아닐까. 이 작품 역시 여러 해프닝들이 여럿 있지만 대체로 서로 거스름 없이 자연스럽게 스토리가 진행되어 간다. 그러나 작품 후반에 들어서 너무 급조된 듯이 스토리가 도중 생략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구성이 끝까지 탄탄하지 못하고 소홀해 진 점은 조금 아쉽다. 문제 해결 과정에 조금더 신경을 써 주었다면 독자가 작품을 이해하는데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천사와 테러리스트』 뒤에는 김지영의 또 다른 단편인 『Best Choice』가 수록되어 있다. 우등생의 생활과 댄서로서의 생활을 양립하다, 결국 자신만의 꿈을 찾기 위해 교실 밖으로 자유로운 일탈을 하는 소년과 그런 소년의 든든한 지주가 되어 주고자 하는 소녀의 이야기에서 작가 김지영의 구속되지 않코자 하는 사상이 잘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이 작품 역시 스토리 후반부의 어색한 흐름이 아쉽게 느껴진다. 너무 비주얼적 면에만 취중한 나머지 스토리 진행에 소홀했던 것이 아닌지. 비단 이 『천사와 테러리스트』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름있는 작가들의 몇몇 작품에서도 그런 면들이 보여지곤 한다. 이것은 작가만의 잘못이 아니라 내용보다 외관미를 중시하는 독자들에게도 문제가 있을것이다. 하지만 여하튼간에 김지영씨가 아직 신인작가인 점을 고려해 볼 때, 앞으로 그의 좋은 만화작가로서의 성장가능성은 무궁하다. 누구나 처음부터 관록있는 프로작가 다운 법은 없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