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호의 『폭주기관차』
오래된 만화 팬이라면 배금택 선생의 『황제의 슛』 이라는 만화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운명이 엇갈린 형제의 대결을 그린 축구만화로서, 주인공이 서서히 파멸해가는 과정을 그린 비극의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만화이다.
2002-06-01
이치수
오래된 만화 팬이라면 배금택 선생의 『황제의 슛』 이라는 만화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운명이 엇갈린 형제의 대결을 그린 축구만화로서, 주인공이 서서히 파멸해가는 과정을 그린 비극의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만화이다. 그 『황제의 슛』을 배금택씨의 문하생이었던 조재호씨가 현대적인 감각으로 새롭게 리메이크 한 만화가 바로 이 『폭주기관차』이다.
형제간의 갈등이라는 틀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어두웠던 원작의 캐릭터들을 좀 더 밝고 명랑한 캐릭터로 바꾼 뒤, 프로축구와 월드컵, 실존하는 선수(심지어는 히딩크 감독까지도 등장한다) 를 등장시키는 등의 요소를 적절히 집어넣어 원작 『황제의 슛』의 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새로운 만화로 재탄생 시키면서 재미를 더했고, 드라마성은 강했지만 다소 전문성이 떨어졌던 원작에 비해 축구 전문가들의 의견과 철저한 현장취재를 통해 리얼리티를 살려 축구만화로서 전문성을 더해 독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폭주기관차』의 매력은 과장된 주인공 호천의 힘이다. 슛 한번에 수비수 2~3명을 날려보내고, 골키퍼를 반죽음으로 몰아넣는 등, 비현실적인 주인공의 각력은 마치 일본의 대표적인 축구만화 『캡틴 츠바사』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런 필살기를 사용하는 인물들이 수 십명씩 등장하는 『캡틴 츠바사』와는 달리 『폭주기관차』는 주인공인 호천만이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나타나, 정상인(?)들 속의 호천의 빼어난 활약을 보여줌으로서 주인공으로서의 능력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폭주기관차』는 경기장면을 절대 호천 중심으로 몰고 가지 않는다. 대부분의 초인(?)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축구만화가 전술적인 면은 제껴둔 채 주인공들의 강력한 필살 슛으로 게임이 마무리되는 반면, 『폭주기관차』는 포메이션 등의 전술적인 면을 부각시킴으로서 주인공이 강력한 필살기를 지닌 인물로 묘사됨에도 불구하고 리얼한 전술지향의 경기장면을 보여주어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나아가 이런 전술지향의 경기묘사는 강력한 주인공의 능력을 평범한 능력의 일반인들이 전술을 이용해 막아내는 모습까지 보여줌으로서 기존의 필살기형 축구만화와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폭주기관차』의 문제점 역시 강력한 주인공 호천에게서 비롯된다. 위에서 말한바와 같이 비현실적인 주인공이 리얼한 축구묘사속에 있다보니 곳곳에서 안 어울리는 부분이 발생한다. 호천이 프로축구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한 부분에서는 작가가 이 만화를 『캡틴 츠바사』 같은 비현실적인 판타지형 축구만화로 만들것인지 리얼한 축구묘사를 그릴 것인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그래서인지 『폭주기관차』는 호천이 본격적으로 프로무대를 밟고 얼마 안 있어 잠시 연재를 중단한 적이 있다. (정확히는 인터넷으로 무대를 옮겼지만 제대로 연재조차 못한채 연재하던 사이트가 문을 닫아버려 약 1년 이상을 쉬었다.)
『슬램덩크』 이후 가볍고 밝은 스토리의 스포츠 만화들이 주류를 이룬 가운데 『폭주기관차』는 마치 80년대의 외인구단을 연상시키는 “투혼”을 강조하는 몇 안되는(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스포츠 근성물이다. 지금은 활동이 뜸하지만 한때 우리나라의 축구만화를 주름잡았던 오일룡 선생의 일련의 축구만화를 연상시킨다.
단행본 말미에 실린 작가의 말이나, 부록 등을 보면 작가의 축구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온다. 정말로 축구에 대해서 많이 연구한 모습이 엿보인다. 그런 작가의 축구에 대한 관심과 만화적 상상력이 결합한 『폭주기관차』는 원작이 존재하지만, 원작인 『황제의 슛』 과는 다른 새로운 만화다. 이럴 때 가장 어울리는 말이 청출어람이라는 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