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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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텍사스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한 친구가 죽었다. 그 복수를 위해 펜실베이니아에서 텍사스까지 움직이기란 보통 근성을 가지고 저지르기 쉬운 일이 아니며, 더군다나 1860년대의 여자에게 있어서는 대단한 사건이다. 애니 브래니건과 데이빗 브래니건은 빅 위스키 마을에서 죽은 아버지 친...

2002-04-20 김규진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한 친구가 죽었다. 그 복수를 위해 펜실베이니아에서 텍사스까지 움직이기란 보통 근성을 가지고 저지르기 쉬운 일이 아니며, 더군다나 1860년대의 여자에게 있어서는 대단한 사건이다. 애니 브래니건과 데이빗 브래니건은 빅 위스키 마을에서 죽은 아버지 친구의 복수와, 마을의 치안 유지를 위한다는 목적을 내세우며 브래들리 일당의 일망타진을 위해 텍사스까지 기차에 몸을 담는다. 어쩌면 심각한 발단이지만, 문계주는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았다. 애니와 데이빗의 여정은 강도도 들이닥치지 않는다는 투덜거림과 장난스러운 농담 일색이다. 그들을 따라오는 미지의 인물이 존재하는데도 애니는 흘깃 돌아보고 잠깐 누구일까 생각하는 정도로 그만이다. 반 페이지가 간신히 할당됐다. 복수의 기치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으며 묵직한 우울이나 곤란한 사색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이든 어른부터 어린 소년소녀들까지, 『김치 텍사스』를 잡은 누구도 그 심각성의 부재에 불만을 가질 수는 없다. 『김치 텍사스』는 단지 서부를 배경으로 한 그림 예쁜 동화이고, 독자들에게 주어진 의무는 동심을 되찾는 것뿐이다. 문계주의 동화적 상상력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독자를 유혹한다. 그러나 독자는 유혹 당한다는 자각조차 하지 못하고 어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같이 포근하고 환상적인 문계주의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문계주는 마술사다. 문계주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의 장점은 그 끝 모를 "엄마다운" 여유로움과 어딘가 공허한 듯하면서도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부드러운 재치일 것이다. 문계주가 그리는 어떤 만화에서도 낙낙한 미소는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독자가 기대에 차서 문계주를 찾아내는 이유이다. 그녀가 가장 마술사다운, 그리고 엄마다운 작품은 『김치 텍사스』보다는 『엄마는 요술쟁이』이다. 여기에서 문계주는 만화가라기보다는 비란이 엄마가 되어 마음껏 요술을 부리고 독자들을 홀린다. 긴박하지도 충격적이지도 않은, 너무나 일상적인 마술의 세계를 구사하는 비란이 엄마는 작가의 분신이라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 없을 만큼 구체적이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고, 이야기의 화자이자 (어쩌면 작가로서) 만화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힘이 된다. 그러나 『김치 텍사스』에 비란이 엄마는 나오지 않는다. 문계주를 찾으러 온 독자라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김치 텍사스』에서는 별나게도 어머니 역할이 제거되어 있으며, 아직 철이 좀 덜든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만이 좌충우돌하고 로맨스를 벌이고 악당에 맞서 싸우고 있다. 꼭 문계주의 뚜렷한 목소리가 드러날 필요는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분명히, 가끔은 이런 것도 재미있다. 사실 『김치 텍사스』는 문계주 자신이 고백하듯이 "그저 서부가 그리고 싶어서" 만들어낸 짧은 농담에 불과하다. 그러나 『김치 텍사스』를 경시해서는 안된다. 문계주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그 "짧은 농담"으로 많은 사람들의 순수를 어루만지고 달래어 왔던가. 현실감각이 결여된 애니의, 보안관이라는 위치에서 벌이는 좌충우돌은 위험한 것이겠으나, 가벼운 어투로 풀어져나가는 이야기의 실마리를 따라가다 보면 현실성 같은 것은 어느새 잊어버리게 되고 만다. 재삼재사 강조하지 않더라도 이것은 동화다. 이 만화에서 구미에 맞게 완결된 이야기를 찾기는 힘들겠지만, 잠깐 소박하게 웃으면서 휴식을 취할 수는 있으리라. 그리고 어느새, 복잡하고 귀찮은 온갖 고민거리에서 멀리 떨어져 선 채로, 편안한 농담과 유쾌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자신을 보면서, 문계주 동화의 능력에 경이를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