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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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엔드)

아직 노스트라다무스의 세계 멸망의 대예언이 유효하던 1999년의 첫달, 바로 그런 세기말에 어울리는 ‘종말’이라는 의미의 제목으로 잡지 공모전 출신의 한 신인의 연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SMDM이라는 영문 이니셜로 더 유명한 당시의 신인은 자신의 첫 장편 연재...

2002-04-14 이가진
아직 노스트라다무스의 세계 멸망의 대예언이 유효하던 1999년의 첫달, 바로 그런 세기말에 어울리는 ‘종말’이라는 의미의 제목으로 잡지 공모전 출신의 한 신인의 연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SMDM이라는 영문 이니셜로 더 유명한 당시의 신인은 자신의 첫 장편 연재를 햇수로 4년여에 걸쳐 꾸준히 진행중이다. 바로 서문다미의 『END』 이야기이다. 『END』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철저하게 소년만화적이다. 비록 순정만화지인 「이슈」의 지면을 빌리고는 있지만, 연재지의 인터뷰 등을 통해 밝힌, 남성적인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비현실적인 상황을 즐겨 그린다는 작가 스스로의 고백그대로, 시원시원하고 깨끗한 선으로 처리된 날카로운 느낌의 캐릭터들이 속도감 있는 역동적인 액션으로 화면을 메워나가는 『END』는 전통적인 이미지의 ‘하늘하늘한 느낌‘의 순정만화와는 전혀 딴판이다. 감성에 호소하기보다는 장면의 전개가 주를 이루는 특성도 그러하지만 초능력 액션이라는 소재 자체가 애초에 전투적인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는 점에서, 그리고 나름대로 충실한 SF적 설정을 깔고 있다는 점에서도 『END』는 지극히 소년만화적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부모형제를 잃고, 익숙한 환경을 떠나 새로운 동료들과 함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초능력자의 이야기라는 『END』의 구성 자체는 사실 그리 특이하고 독창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성작가에게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대담무쌍함은 - 그녀의 화실 이름인 강철화실도 아마 그런 이미지에 일조 했을지 모르지만 - 찐득거리는 피비린내와 더불어 독자들에게 상당한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하지만 한번 『END』의 세계를 접한 독자는 현실과 허구가 교묘하게 섞여있는, 그러면서도 좀처럼 베일을 벗을 줄 모르는 작품의 내용전개에 글자 그대로 두 손에 땀을 쥐고 흥미진진하게 다음 회를 기다리게 되고 만다. 그러면서도 단지 난폭하고 자극적인 화면만이 아닌, 단편시절부터 중점적으로 그려져온 ‘약한 자와 소외된 자의 아픔’ 이라는 테마에 대해 일관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테마 의식을 가진 작가의 볼만한 작품이라는 말이 결코 입발린 칭찬만은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다. 『END』는 작가의 첫 장편 연재이기도 했던 탓에 연재중에 몇 번에 걸쳐 신인다운 허술함을 보여 주기도 하였다. 상당히 취재와 조사를 많이 한 듯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 초기의 연재분에 붙어있던 각종 용어해설이라거나, 본편에 제법 많이 등장하는 주석의 숫자를 보아도 - 작가 스스로가 설정의 모순을 자진납세라는 방식으로 신고하는 부분등, 초기 연재분에는 이러한 실수들이 제법 많이 눈에 띈다. 그러나 이런 세세한 오류가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나름대로의 SF적인 원칙과 법칙 아래 캐릭터들을 배치하고, 그 적지 않은 숫자의 캐릭터들의 개성이 죽어드는 일없이 , 각 캐릭터간의 사건을 유기적으로 그리고 일관성 있고 짜임새 있게 연동시키는 솜씨는 신인답지 않은 치밀함을 느끼게 한다. 한눈에 그 작가의 물건임을 알아볼 수 있는 만화는 볼만한 가치가 있는 만화라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서문다미의 『END』는 다음 회가 무척이나 기대되는 재미있는 만화를 찾는 사람에게라면 아마 서슴없이 권하게 될 그런 만화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