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테면 빌어봐!
디즈니의 「알라딘」은 사실 기발한 독창성이라는 면에서 보면 상당히 재미없는 만화영화이다. 옛 이야기를 그저 현대적이고 미국적인 감각에 맞추어 춤추고 노래하는 필름으로 만들었을 뿐, 그 자체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그것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그런 재미없는 이...
2002-04-12
장하경
디즈니의 「알라딘」은 사실 기발한 독창성이라는 면에서 보면 상당히 재미없는 만화영화이다. 옛 이야기를 그저 현대적이고 미국적인 감각에 맞추어 춤추고 노래하는 필름으로 만들었을 뿐, 그 자체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그것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그런 재미없는 이야기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원전이 가지는 네임밸류의 영향 - 사실 디즈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대부분이 그러하기는 하지만 - 을 무시 할 수 없다. 중동 하면 대뜸 석유졸부가 아니면 테러리스트정도가 생각 날 뿐인 지극히 편향되고 왜곡된 이미지 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극동의 이 조그만 땅에서도 조차 ‘램프의 요정’이라 하면 유치원생 아이들도 대뜸 알아들을 정도로 유명하니 말이다. ‘램프의 요정 지니’는 그래서 이젠 상식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의 상식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런 오랜 역사만큼 갖가지 버전으로 구현된 여러 종류의 ‘램프의 요정 지니’를 대충이나마 떠올려봐도 김미영의 『빌 테면 빌어봐』의 지니만큼 황당한 경우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비슷한 예를 들자면 『아기공룡 둘리』에 등장했던 램프의 할아범이나 일본제 애니메이션 「타임트레블 돈데크만」에 등장하는 괴인 ‘램프의 바바’정도가 어울릴지도 모르겠지만, 단지 폭삭 늙은 할아범이나 슈퍼맨을 옷만 바꾸어 입힌 것과 『빌 테면 빌어봐』의 지니는 경우가 틀리다. 『빌 테면 빌어봐』의 뻔뻔하기 그지없는 지니야 그렇다 치더라도 주인공 그 자체가 램프라는 이 기발한 상상력은 김미영이라는 만화가의 가장 큰 재주인 기발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램프의 요정은 그저 얌전히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로 알고 있었건만 빌 테면 빌어보라는 도발적인 문구로 다가오는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은 것이다. 전작 『야 이노마』에 이은 두 번째 연재작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설정에 황당함을 더한 엽기라는 키워드가 일맥상통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두 번째 연재작품이니 만큼 상당부분 - 특히 작화라는 면에서 - 세련되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연출과 구성을 포함한 전체적인 면에서 작가만의 세계가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부분이 적지 않아 답답하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음도 사실이다. 이미 김미영의 만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이야 별 문제가 없겠지만, 이래서야 모처럼의 재미와 독창성도 보다 많은 독자로의 전달과정에서 항상 심한 소화불량을 일으키는 것만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리고 역시 이 작품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단행본 세 권 분량정도에서 멈춰 섰다는 점에서 작가의 스타일이 결코 장편에는 어울리지 않는 - 물론 매 작품들이 옴니버스 스타일의 개그만화라는 점도 있지만 - 것이 아닐까 하는 점도 약간은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현재 김미영은 스포츠신문의 지면을 통해 시사풍자만화인 『기생충』을 연재 중이다. 순정만화지 보다도 더욱 노골적이고 뻔뻔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풀어낼 수 있는 무대에 서서 김미영이라는 작가의 만화가 빛을 발하는 것을 보면 문득 순정만화지라는 멍석이 그녀의 재능에 하나의 벽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멍석이 바뀌어도 앞으로도 그녀의 거침없는 개그를 쭈욱 지켜볼 수 있다면 그곳이 어디이던 무슨 상관이랴. 앞으로도 김미영의 엽기행보에 주목해 보는 쪽이 보다 즐거운 만화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아닐 까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