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그리라 (Buming Love Shangrila phanuel 7)
미완의 대작 『푸른 포에닉스』에 관련된 외전들을 모아 『황무지』에 이은 두 번째 단편집으로 1999년 출간된 『샹그리라』에는 『BURNING LOVE』, 『샹그리라』, 『파누엘7』이라는 이름의 세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앞선 『황무지』와는 달리 『샹그리라』라...
2002-04-14
김규진
미완의 대작 『푸른 포에닉스』에 관련된 외전들을 모아 『황무지』에 이은 두 번째 단편집으로 1999년 출간된 『샹그리라』에는 『BURNING LOVE』, 『샹그리라』, 『파누엘7』이라는 이름의 세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앞선 『황무지』와는 달리 『샹그리라』라는 중편이 대부분의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는 이 단편집에서는 대사 한마디 없이 일러스트로만 구성된 초단편 『BURNING LOVE』를 비롯, 본편이랄 수 있는 『샹그리라』와 이어지는 『파누엘 7』모두 독자에 따라 좋고 나쁨이 양극단으로 갈리는 김진 특유의 시적 감각이 잘 살아있는 연출을 통해 인간의 영혼에 관한 문제를 테마로 한 오컬트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황무지』에서도 지적한 바이지만, 『샹그리라』역시 『황무지』의 수록작들 처럼 『푸른 포에닉스』와의 관계를 굳이 따지지 않아도 볼 만한 이야기들로 채워져있다. 작품간의 퀄리티의 기복이 심하다는 평이 대세를 이루는 그녀의 작품 군에서 비교적 수작으로 평할 수 있을 것 같은 『샹그리라』는 그 설정상의 소도구들을 제외한다면 『푸른 포에닉스』가 표면적으로나마 추구했던 SF적인 측면에서는 평가를 내리기가 조금 곤란하지만, 이른바 김진의 주특기인 감정표현의 마술에 있어서 만큼은 상당한 점수를 매길 수 있을 듯 싶다. 극장용 애니메이션 영화 「메모리즈」의 원안이 되기도 한 오토모 카츠히로의 『그녀의 추억…(彼女の想いで)』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홀로 남겨진 자, 홀로 남겨지려는 자, 홀로 남겨진 자를 독차지하려는 자의 이야기는 인간의 깊은 부분에서 잠자고 있는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SF라기 보다는 오컬트에 가까운 기괴한 스토리를 통하면서도 곳곳에 배치된 ‘슬픔’이라는 감정을 통해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그녀의 추억…』이 보다 하드SF적인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면, 그러한 점에서 김진의 『샹그리라』는 어느 면으로 보나 철저한 순정만화라는 점도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물론 내용 자체가 감정의 소모를 강요하는 1980년대적인 감각에 끌려가는 진부한 이야기가 아니냐는 짜증스러운 반응이 나올 수도 있지만, 결국 한정된 소재 안에서 얼마나 감동을 주느냐가 수작과 범작과 졸작을 가름하는 기준이 아니겠는가라는 점에서 『황무지』의 『에레보스 연가』와 마찬가지로 『샹그리라』역시 『푸른 포에닉스』의 연작으로서보다는 보다 다듬어진 모습의 독립된 단편으로 등장하는 편이 독자를 위해서나 작품을 위해서나 좋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 아쉬움을 남기면서 다시 책을 펼쳐보지만, 스토리 중반에서 허리가 끊어진 『파누엘7』의 마지막에 쓰여진 ‘푸른 포에닉스 외전 3권으로 이어집니다’라는, 또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약속에 대해 독자들은 일말의 불안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본편과 외전의 분량이 맞먹는, 도리어 외전의 분량이 본편을 능가하는 『푸른 포에닉스』의 세계의 끝은 언제쯤이나 되어야 볼 수 있을까하고 말이다. 좋은 측면에서는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이며 감수성 넘치는 대사로 포진된 김진의 시적 감각이 살아있는 스페이스 판타지의 세계를, 나쁜 측면에서는 정리가 안된 채로 산만하기 그지없어 독자가 전혀 따라 가지 못하는 이 세계를 작가가 앞으로 어떻게 수습 할 것인가에 대해 궁금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