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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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폭력물. 일본에서는 학원경파물이라고도 부르는 이 장르가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 당시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던 500원짜리 해적판 중에서 『캠퍼스 블루스(원제:머저리들의 블루스)』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생각된다. 가슴 후련해지는 액션과 평...

2002-02-26 하성호
학원폭력물. 일본에서는 학원경파물이라고도 부르는 이 장르가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 당시 우후죽순처럼 쏟아지던 500원짜리 해적판 중에서 『캠퍼스 블루스(원제:머저리들의 블루스)』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생각된다. 가슴 후련해지는 액션과 평범한 학생들이 마음 속에 지니고 있는 힘에 대한 은근한 동경을 대리 만족시켜주면서 인기를 얻은 이 학원폭력물이란 장르는 이후 일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무수한 자식을 슬하에 두게 되었다. 임재원의 『짱』(1~9권까지는 스토리 작가 김태관이 함께 했다.)은 메이저 잡지 만화 시장에서, 박산하의 『진짜 사나이』와 더불어 학원폭력물의 왕자로 꼽힐만한 작품이다. 우후죽순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 장르의 만화들 중에서 어떻게 『짱』은 근 6년째의 연재를 이어오며 아직도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일까? 『짱』이 이 장르에 있어서 변별력 혹은 경쟁력을 갖게 된 첫번째 이유로는 그림을 들 수 있겠다. 『짱』의 작가 임재원의 그림 실력은 탁월하다. 역동감 넘치는 액션씬의 연출과 감각적인 펜터치는 탄탄한 데생 실력과 맞물려 작품을 듬직하게 받쳐주고 있다. 물론 작화가 뛰어난 학원폭력물이 『짱』뿐이겠느냐만은, 이 만화에는 작화 면에서 여타의 폭력물들과 구별되는 또 하나의 확연한 그림상의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 호리호리한 주인공들의 체형과 소년 만화에선 비교적 미형으로 분류되는 인물 묘사이다. 학원폭력물이란 장르가 원래 남자들의 전유물 비스므리한 것인만큼 마초함이 그 미덕으로 인식되고 있었고,대부분의 장르는 스토리는 물론이오, 작화면에서도 누가누가 더 남자다운가를 보여주기 위한 묘사에 치중하고 있었다. 초기의 『짱』 또한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듯 하였으나, 권을 거듭해갈수록 점점 늘씬하고 샤프해지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고, 당시의 패션 유행을 잘 반영하고 있는 캐릭터들의 일러스트는 팬시로도 발매되어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또한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는 인천의 모습을 섬세하게 잘 묘사한 배경도, 지방팬들의 인기를 얻는 한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만화가 그림으로만 성립되는 분야가 아니기에,학원폭력물에서도 스토리상의 재미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짱』은 약 아홉 권 분량에 스토리 작가 김태관이 참여했다. 그리하여 당시의 이야기는 사연을 가진 캐릭터들의 갈등이, 거기에 휘말려드는 주인공 현상태의 싸움을 계기로 하여 해소되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학원폭력물도 소년들이 즐겨보는 만화인만큼 대개 폭력에 대의명분을 지니도록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짱』의 초반전개는 이러한 불문율에 비교적 충실했다고 볼 수 있겠다. 스토리 작가가 하차하고 임재원 자신이 스토리를 짜내기 시작한 10권 이후, 이러한 구조는 사라지게 되고 『짱』의 배경 인천은 그야말로 춘추전국 시대를 방불케 하는 아수라장을 이루게 된다. 대정고(인천 연합)의 광진고 응징에서부터 시작하여 이후 약 10권에 걸쳐서 전개되는 [인천연합 편]은 『짱』의 이미지를 그야말로 통쾌한 학원액션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테리, 한영, 김인섭, 이종수, 위성대 등등 기라성같은 인천의 강자들이 등장하고, 우범진이 사건에 휘말려 희생됨에 따라 전편에서 등장했던 칠대성왕마저도 싸움에 휘말려들게 된다. 올스타의 화려한 격돌의 이면에서는 인천 연합 멤버(특히 이종수)를 중심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인간 관계의 긴장감이 또한 재미를 주고 있다. 『짱』에서 개인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부분은 작가가 캐릭터들을 가벼이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전의 에피소드에 등장했었던 캐릭터는 이 다음의 사건에서도 크든 작든 어느 정도의 비중을 갖고 이야기에 참여하게 된다. 『짱』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인기는 이렇듯 작가가 캐릭터에 애정을 갖고 지속적으로 역할을 부여한 데에서 기인하지 않았나 한다. 이후 두세권을 왕따 등의 사회문제로 소재를 돌리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애매한 결말만을 남긴 채 끝을 맺고, 초반부 이후 줄곧 불편했던 현상태와 히로인 격인 유지현의 관계 역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정리된 지금, 『짱』은 곧3학년이 될 현상태를 끌어들이려는 인천연합의 손길, 최강자 테리와 한영의 대결,인천 고교 세력의 판도 변화 등 흥미만점의 빅 카드들을 제시하며 본격 학원폭력물로써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만화에 있어서 재미는 필요충분 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임엔 틀림없다. 더더군다나 재미의 순도가 곧 인기로 연결되는 소년 만화에 있어서 학원 폭력물이 갖는 재미의 요소를 극대화 시키고, 아울러 미려한 그림으로 차별화를 꾀한 『짱』은 이 장르에서 하나의 전범이 될 만한 작품이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