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슴이다
90년대 들어, 순정만화에서의 일반적인 화제작은 거의 잡지 연재작이었음을 생각해볼때 이 『나는 사슴이다』는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다. 잡지 연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단행본이 출간되었으며 별다른 홍보가 없었음에도 입소문만으로 많은 독자를 확보했으니 말이다. 적극적이지 못...
2002-02-25
김세준
90년대 들어, 순정만화에서의 일반적인 화제작은 거의 잡지 연재작이었음을 생각해볼때 이 『나는 사슴이다』는 상당히 특이한 케이스다. 잡지 연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단행본이 출간되었으며 별다른 홍보가 없었음에도 입소문만으로 많은 독자를 확보했으니 말이다. 적극적이지 못한 순정만화계의 마케팅 사례를 봤을때(비단 순정만화로 국한시킬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잡지 연재를 거치지 않은 만화가 이만큼의 성과를 올린 것은 분명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강점이 상당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999.4.18 나는 사슴이다...] 『나는 사슴이다』는 만화의 나레이터이자 주인공인 여고생 마리아의 일기로 시작된다. 이렇게 만화 『나는 사슴이다』는 도입부부터 섬세한 사춘기 소녀의 감성을 앞세워 역시 같은 세대일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주인공 마리아는 자신을 사슴이라고 믿는 평범한 여고생이다. 이땅의 모든(혹은 대부분의)순정만화 캐릭터들이 그러하듯 마리아에게는 잘난-평범치 않은 오빠 마린이 있다. 통역가인 홀어머니의 직업관계로 자주 전학을 다닌 탓인지 두 남매는 일반적인 형제애 이상을 과시한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확고했던 두사람만의 세계는, 새 학교로 전학을 가 개성있는 친구들을 만나며 조금씩 깨어지기 시작한다. 만화는 그렇게 자신의 세계를 넓혀나가며 소년소녀가 성숙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나간다. 마씨 성에 배꽃으로 자랄 싹이라는 뜻의 마리아와 기린 린자를 쓴 오빠 마린의 이름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그리게 한다. 그 외에도 『나는 사슴이다』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사연을 가진 특이한 이름의 소유자인데 이는 독자에게 확실히 인상적인 도구로 사용된다. 하지만 그보다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던 요소는 깔끔하고 절제된 스토리와 연출, 그 안에서 읽을수 있는 작가의 정성이 아닌가싶다. 또한 톡톡 튀는 소재의 신선함을 담담한 전개에 자연스레 녹여내려 작품의 중심을 잡아놓은 것은 스토리작가의 역량으로 보인다. 이때문에 『나는 사슴이다』는 처음부터 설정한 독자층-학생군을 넘어, 성인 독자층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을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사슴이다』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캐릭터를 들어보일 것이다. 좋은 캐릭터를 만들어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고, 특히 학원물의 캐릭터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독자들은 항상 멋지고 아름다운, 자신들의 이상형에 한없이 가까운 캐릭터를 원하지만 동시에 그네들이 쉽게 다가설수 있는 동질성을 요구한다. 이런면에서 『나는 사슴이다』의 캐릭터들은 독자들로부터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았을 것이다. 스토리작가 조은하는 『엑스트라 신드롬』을 통해 잘 알려졌고, 작화를 담당한 채안나는 이 작품으로 데뷔했다. 순정만화로서는 보기드문 글/그림의 분업체제도 눈길을 끄는 『나는 사슴이다』는 작화가를 바꿔 2부로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