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말 그대로 넘쳐나는 일본이지만,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볼만한 것은 드문 것은 일본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 일본에서 수십년 동안 시청률 30%대 고수라는 대 기록을 세운 애니메이션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일본을 대표적인 가족만화로 알려진 하세가와 마치코의 『사자에상』이다. 비슷하게 소화(昭和) 4,50년대의 모습이 그려진 복고적 작품이라면 『찌비마루꼬짱』이 있을 것이고 이 둘 다 전형적이고 평범한 일본의 가족을 그리고 있고 때문에 비교적 나이 든 사람들도 즐겨보는 국민적인 만화 / 애니메이션이 되었다. 그러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위의 두 작품은 모두 수십년전 과거의 가족을 그리고 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그때 그 시절의 궁상맞을 정도로 평범하고 사실적인 사건만 일어나는 두 작품을 보다 보면 역시 애니메이션화의 길을 걸은 『크레용신짱』 - 『짱구는 못말려』는 비슷한 가족 만화이면서도 때때로 가족이 통째로 악당들에게 납치되기도 하고 전세계를 구하는 모험에 뛰어들기도 하는 등 말 그대로 황당무계하기 그지없다.성인용 만화에서 출발한 『짱구는 못말려』의 세계는 애초부터 가족만화 이었던 『사자에상』이나 소녀만화였던 『찌비마루꼬짱』처럼 점잖지는 못하다. 그러나 가히 엽기적이라 할 만한 화장실 개그들로 극중에 그려지고 있는 것은 전형적인 90년대 일본의 핵가족이다. 『사자에상』이나 『찌비마루꼬짱』처럼 할아버지 할머니가 같이 사는 대가족도 아니고, 때문에 변태기질마저 있는 말썽꾸러기 아들을 가진 새로운 세대의 핵가족 부부는 유치원생 아들이나 회사원 아버지나 전업주부인 어머니까지 모두가 좌충우돌 경망스럽기 그지없다. 신세대의 새로운 가족상이 그대로 투영된 충격의 데뷔이후 이후 10여년. 일본이름 ‘노하라 신노스케’ ,한국이름 ‘신짱구’가 종횡무진 활약하는 『짱구는 못말려』는 본고장 일본에서 폭발적인 히트를 기록하여 새로운 국민만화로 자리매김한 것은 물론, 그 생활 패턴이 일본이나 다름없어진 한국에서도 비슷한 처지의 젊고 어린 세대의 공감과 함께 열광적인 인기를 얻으며 최초 상륙후 7년여가 지난 지금은 이미 토착화 되버린 외래문화상품이 되어버렸다. 잠시만 눈을 바깥으로 돌려보면 출판사에서는 짱구의 만화책을 찍어내고 방송국에서는 짱구의 애니메이션을 방송한다. 슈퍼마켓에 나가보면 각종 관련 상품 - 특히나 어린이가 좋아할 만한 먹거리에는 짱구의 얼굴이 들어가 있고 패스트푸드점의 어린이세트에는 짱구의 인형이 세트로 끼여들기도 한다. 심지어는 만화를 조금 본다하는 사람이면 이름만 듣고도 대번에 누군지 알 만한 유명작가에 의해 『Y세대 제갈공두』라는 표절만화가 그려져 소년지에 버젓이 연재까지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도 제법 된다. 극중에서 짱구는 칸타무로봇과 액션가면에 열광하며 항상 그 관련상품에 정신을 팔리곤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액션가면대신 짱구의 얼굴이 들어간 상품에 우리가 정신없이 돈을 쓰게 되는 것을 보면 그러한 자본주의적 마케팅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짱구는 못말려』를 단순한 개그만화로서의 시점에서 조금은 다르게 바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여하튼 오늘도 거리에 나가보면 짱구모습을 본뜬 인형도, 짱구의 얼굴이 그려진 과자도, 짱구의 그림이 들어간 학용품도 금새 발견할 수 있다. 아마도 문화를 산업으로 육성하려던 사람들에겐 굉장한 모범답안처럼 보이는 보기 좋은 광경이겠지만, 그 짱구가 결코 ‘신노스케’가 아닌 ‘짱구’가 될 수 없음을 뻔히 아는지라 조금은 분한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짱구의 여동생인 ‘히마와리’의 등장과 같은 캐릭터 불리기를 통한 시도도 거의 한계에 다다른 지금, 상식의 일탈이라는 폭풍우를 몰고 왔던 화장실 개그조차 패턴화되고 도식화되어 빛바래고 작화마저 무성의해진 개그의 매너리즘을 과연 어떠한 식으로 돌파해 나갈지가 앞으로의 『짱구는 못말려』의 관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