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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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조선 천지의 유일한 천재’라는 찬사를 받았던 벽초 홍명희가 처음으로 임꺽정을 집필한 이래 『임꺽정』은 참으로 여러 작가에 의해 소설화되었고 많은 만화가에 의해 만화화되었다. 영화와 TV드라마는 물론이요 휴전선너머 북한에서 제작된 영화가 수입되어 방송되기까지 했으니 이...

2002-02-18 김재원
‘조선 천지의 유일한 천재’라는 찬사를 받았던 벽초 홍명희가 처음으로 임꺽정을 집필한 이래 『임꺽정』은 참으로 여러 작가에 의해 소설화되었고 많은 만화가에 의해 만화화되었다. 영화와 TV드라마는 물론이요 휴전선너머 북한에서 제작된 영화가 수입되어 방송되기까지 했으니 이렇게 매력적인 소재도 다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어떤 것이 방학기의 『대도 임거정』을 따라갈 수 있으랴. 『대도 임거정』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임거정’과 ‘임꺽정’이 공존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면, 조풍연 선생은 『소년 검객 마억 - 칠봉산의 화적편』이라는 소설 속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양주사는 백정 ‘임거정’이 어느날 사고를 치고 웬 도포짜리를 만나는 데 이 자가 ‘서거정’선생의 피붙이였다. 그래서 ꡒ백정주제에 ‘거정’이 가당키나 한가 꺽정으로 고쳐라ꡓ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받아들여 이름을 꺽정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사서에도 ’거정‘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쉽게 부르기 좋아하는 상사람들이 어디 곱게 ’거정‘이라고 불렀으랴, ’꺽정‘이 제격이다. 『대도 임거정』에 대한 작가의 변을 들어보자. ‘임거정’하면 사람들은 흔히 의적이야기, 또는 관의 핍박에 대항한 천민의 이야기 등을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이제 극화 임거정을 묘사함에 있어서 저항이니, 지나간 한 시대상을 통하여 현대를 조감하느니 하며 오지랖 넓게 설칠 의도는 애시당초 없다. 그저 사라져 가는 한국적인 서정들, 예컨대 퀴퀴한 메주 뜨는 내가 나는 방바닥 삿자리, 혹은 세밑 동짓날에 뿌린 약막이 팥죽 위에 빈대피까지 얼룩져 있는 바람막, 그리고 까무룩히 등잔불이 졸고 있는 오리네 서민의 옛 토방같은 이야기들을 무딘 펜으로 소박하고 그려보고 싶은 욕심뿐이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방학기의 이런 의도는 비단 『임거정』만이 아니라 『애사당 홍도』, 『초립동이』, 『바리데기』 등 토속적인 작품과 『감격시대』, 『바람의 파이터』등 현대적인 작품 전체를 통해서 드러나는 일관적인 자세다. 『대도 임거정』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또 많은 인물이 죽어간다. 많은 인물이 박해당하고 많은 인물이 되는 수작, 되지 않는 수작을 부려대다가 비명횡사를 당한다. 제목은 임거정이로되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어느 인물치고 주인공만큼 단단한 뒷배경을 가지지 않은 이가 없고 주인공만큼 쌓인 한을 가지지 않은 이가 없다. 그저 그렇게 지나가는 행인 A, 이름도 없는 엑스트라로 등장해 매일 죽는 남자와 여자가 되기에는 너무나도 존재감이 뚜렷한 인물들. 골패투전꾼 출신으로 들병이와 정분이 나서 가시버시 되어 한지붕아래서 한이불을 덮고 살다가 결국 노름으로 몸을 망치게 되는 막조, 조선제일의 검객으로 그 뛰어난 검술에도 불구하고 한 여자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문둥이가 되어버리는 박득윤, 양반의 자제로 서얼임에도 불구하고 기후헌앙한 풍채로 입신양명이 기대되는 수재였지만 본처와 그 소생 적자의 투기로 인해 어머니에게 불륜의 의혹이 걸리고 결국 자신의 눈앞에서 자결하는 꼴을 보고 배다른 형을 죽이게 된 구범손, 얼굴 반반한 누이를 두었기에 그 누이를 겁간하고도 오히려 증거를 들이미는 자신들이 함정에 걸려서 명줄을 위협받게 된 임거정과 설석수……. 누구 한사람 평온하게 시대를 살아간 인물이 없고 굴곡을 가지지 않은 이가 없지만 그럼에도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이두호의 동명 작품 속에서 그러하듯이 처절하지는 않다. 지금의 우리 눈으로 봐서는 어떻게 할 수 없을정도로 비루먹고 풍파에 시달리고는 있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이 생활이었고 그것이 인생이었다. 그래서인지 『대도 임거정』에서 가장 부각되는 것은 거정이 거느린 화적패거리가 봉물짐을 털거나 억압받던 이가 양반에게 앙갚음을 하는 부분이 아니라, 사당패가 새말로 들어가서 자리깔고 연회를 준비하는 장면, 꺽정과 범손이 전국을 돌면서 협객행하는 장면이다. 지금은 스타로 우상으로 대접받고 있지만 조선조의 사당패가 받던 대접은 유럽의 집시와 비등한 것이었다. 관의 토악질과 흉년에 견디다 못해 아이를 팔아치우거나 고향을 떠나온 자들이 몰려들어 지닌바 재주로 연명을 해나간다고는 하나 정작 흉년이 들면 그들에게 돌아올 행하부터 삭감되니 힘들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래서 재주를 파는 한편으로 재주뵈주기가 끝나면 논다니 사당들이 나서서 몸을 팔아 돈을 벌었다. 제대로 피임할 방법이 없던 시기니 사당이 달거리를 못하게 되고 애비 모르는 애를 퍼질러 낳게 되면 그 애도 역시 사당패가 되어 전국을 도는 역마살이 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비참한 생이 있으랴 하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방학기의 작품 속에서 그들은 서로 욕지거리 섞인 농을 던지고, 심술궂은 관헌의 포탈에 그나마 고린 동전을 뜯기고도 돌아와서 막걸리 사발에 육자배기 한번 늘어놓고 정분난 사당의 살내음 한번 맡으면 그걸로 다시 생의 활력을 얻는다. ‘치열하기는 하되 처절하지는 않는 진솔한 삶’, 방학기의 작품에 공통되는 주제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