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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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골당 모녀

1995년 창간된 여성용 월간지「화이트」의 특징중 하나는 이른바 ?레이디스 코믹?이라는 개념의 도입이었다. 잡지 표지에도 당당히 인쇄되어 있는 그 "레이디스 코믹"이라는 단어에 대해 어느 정도의 정확한 이해가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부제가 「Lady"s Comi...

2002-02-14 조정민
1995년 창간된 여성용 월간지「화이트」의 특징중 하나는 이른바 ?레이디스 코믹?이라는 개념의 도입이었다. 잡지 표지에도 당당히 인쇄되어 있는 그 "레이디스 코믹"이라는 단어에 대해 어느 정도의 정확한 이해가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부제가 「Lady"s Comic」이었던 초기의 18세미만 구독불가 잡지가 어느틈엔가「Young Lady"s Comic」이라는 부제의 15세미만 구독불가 잡지로 격하되더니 2001년 3월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될 즈음에는 「Pure Lady"s Comic」이라는 부제의 일반적인 소녀만화지의 모습을 띄고 말았다.

1999년「화이트」에 연재된『납골당 모녀』는 이러한 잡지성격의 추이를 살필 때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했다? "섹스라는 테마가 살아있다?라는 점에만 주목한다면 어느 정도는 레이디스 코믹이라는 시점을 구비하고 있다. 최소한 1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였던 시점에서 연재된 강현준의『납골당 모녀』는 터부시되던 "미소년"과 "호모"와 "동성애" 라는 야오이적 요소 - 물론 여기서 말하는 "야오이"란 한국내에서 변질되어 사용되고 있는 의미를 가리킨다 - 들를 과감하게 이야기의 중심으로 사용하면서도 적절한 디폴메를 살린 깔끔한 그림에 작가 특유의 능글맞고 스피디한 연출이 덧붙여져 청소년지「이슈」에서『CAT』을 통해 구축한 개그만화가로서의 입지를 보다 확고하게 만들어주었다. 또한 남성작가가 쉽게 손대기 힘든 영역에서 여성작가이기에 발휘할 수 있는 자신만의 입지를 살렸다는 것 역시 충분히 주목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전작『CAT』에서도 지적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소재가 기발하고 개그만화로서 훌륭한가와는 별개문제로『납골당 모녀』는 전체적인 만화의 디테일이라는 점에서는 그다지 후한 점수를 줄 수는 없다. 단적인 예로 호랑이는 아프리카의 초원에 살지 않는 것처럼 사람의 두개골이 선반에 늘어서 있는 납골당은 상식적으로는 몰상식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국적한 설정은 개그를 위한 인위적인 장치로 넘어간다 하더라도 문제는 이렇게 감각적으로 넘어가는 컷사이에서 한국적인 냄새를 맡기가 힘들다는 점에도 있다.『CAT』의 단행본 권말에서 작가는 스스로를 게임 매니아라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실제로『CAT』에서는 모 유명 일본제 격투게임의 캐릭터를 그대로 차용한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한다. 신주꾸 도청과 이케부쿠로 거리와 나리타공항의 톤을 배경으로 사용하고서는 NASA의 건물이니 서울시내니 김포공항이니 해보아야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처럼『CAT』은 후반부로 갈수록 정도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일본색이 짙어지기만 하였다. 그리고 그 후속작인『납골당 모녀』역시 작가가 즐기는 만화와 게임을 주요한 소재로 하고 있다는 무언가 얄팍한 느낌을 주고 있는 점을 부인하기 힘들다. 물론 문화라는 것을 내셔날리즘이라는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옳지 못하고 슬프게도 도리어 친숙하기까지 한 이러한 표현들의 사용은 한가지의 방법론으로 이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CAT』그리고『납골당 모녀』를 통틀어 아무런 여과 없이 사용되고 있는 일본만화의 차용과 일본식 개그의 난무라는 것은 결국은 의도하였던 의도하지 않았던 그대로 작가 스스로의 한계와 색깔을 결정해 버릴 수도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한번쯤은 비판받아야 할 일이라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화이트」의 폐간으로 성인용 여성만화지라는 장르가 완전히 사멸해 버린 2002년 현재, 『납골당 모녀』역시 단행본 1권 이후의 전개는 이후 약간 량의 잡지연재를 제외하고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비판과는 별도로 미완의 작품으로 남기기는 아까운 독특한 개그만화로서 일독의 가치는 있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