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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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서는 남자

1985년, 월간지 「만화 광장」의 창간은 큰 의미를 지닌다. 당시 공장제 일색의 대본소용 성인만화와는 달리 80년대의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는 섬세하고도 다양한 작품들이 빛을 볼 수 있었던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3종의 성인지 「트웬티세븐」...

2002-02-01 강영훈
1985년, 월간지 「만화 광장」의 창간은 큰 의미를 지닌다. 당시 공장제 일색의 대본소용 성인만화와는 달리 80년대의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는 섬세하고도 다양한 작품들이 빛을 볼 수 있었던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3종의 성인지 「트웬티세븐」,「빅 점프」,「미스터 블루」의 창간은 대본소와 스포츠 신문 중심의 성인 만화 시장을 판매 중심의 서점 만화로 끌어내려는 시도였다. 6-7년이 지난 지금, 이들 성인지는 모두 폐간되었고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들 잡지는 1990년대의 한국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 만화들의 분출구의 역할을 했다는 데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서울문화사의 「빅 점프」에 연재되었던 신인철의 『매일 서는 남자』는 강통수라는 별 볼일 없는 한 사내를 통해 90년대의 소시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남자는 눕지 않는다. 다만 설 뿐이다. 별 볼일 없는 학력, 재산도 없고, 직업도 없는 한심한 사내 강통수. 권력 앞에 굴복하고 돈 앞에 굴복하고 주먹 앞에 고개 숙여야 하는 빽 없고 힘없는 인생이지만 언젠가는 ‘고시’ 패스할 거라며 큰소리치며 폼잡는 양아치다. 만화는 이 별볼일 없는 사내 강통수와 그 주변의 고개숙인 사내들의 삶을 그린다. 당장은 당구비 몇푼, 소주 한잔에 자존심을 구기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그네들에게는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고, 그런 자신을 미화할 변명들이 있고, 자존심이 있나 보다. 매회 짤막한 에피소드를 통해 전개되는 강통수와 주변의 고개숙인 사내들의 삶은 별 볼일 없어 보인다. 때때로 이런 사내들에게 자그마한 행운이 찾아온다. “드디어 때가 왔도다! 세상이 날 알아보는구나!” 허풍도 떨고 위세도 떨어본다. 이 별볼일 없는 인생에 서광이 비치는 듯 하지만 이런 너스레도 잠시 뿐, 작가 신인철은 재치있는 반전으로 이들의 기대를 무너뜨려버린다. 이들의 삶은 여전히 제자리다. 돌아도 돌아도 별볼일 없는 인생. 사회라는 거대한 산 앞에 가진 것 없는 이들은 언제나 약자일 수 밖에 없지만 그네들은 허풍으로서 자존심 세우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단행본의 첫머리에는 이를 ‘신인철 리얼리즘’이라 소개한다. 80년대를 대표하는 이희재의 리얼리즘이 약자들의 힘든 현실을 돌아보는 가운데 희망을 나지막히 읊조리는 것이었다면, 신인철의 리얼리즘은 시대의 약자들의 힘든 삶을 만화적인 반전으로 희화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희재의 만화가 주는 느낌이 은은한 미소라면 신인철의 만화가 주는 느낌은 재치있는 웃음이랄까? 어둡고 다소 암울할 수 있는 소재를 만화적 감각으로 유쾌하게 잘 표현한 작품으로, 옴니버스 구성의 특징답게 어느 권을 집어도 쉽게 읽히고 질리지 않는다는 것이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