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진화론 (오엘진화론)
일본에서 만들어진 이 단어는 특별한 전문직업이 아닌 일반사무직 여성을 총칭하는 말이다. 주로 하는 일은 사무 보조와 전화응대, 차심부름. 적당히 월급 받으며 일하다, 괜찮은 남자 하나 잡으면 결혼 퇴직. 단조롭고 별 볼일 없는 인생처럼 보이지만, 실상 대다수의 여성들은...
2002-02-14
김지현
일본에서 만들어진 이 단어는 특별한 전문직업이 아닌 일반사무직 여성을 총칭하는 말이다. 주로 하는 일은 사무 보조와 전화응대, 차심부름. 적당히 월급 받으며 일하다, 괜찮은 남자 하나 잡으면 결혼 퇴직. 단조롭고 별 볼일 없는 인생처럼 보이지만, 실상 대다수의 여성들은 이 ‘OL’이라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만화의 세계에서는 평범한 소재보다는 튀는 소재가 선호된다. 아침에 눈 비비며 일어나, 먹는둥 마는둥 아침을 때우고, 회사에 출근, 전화 받고 복사하고 차심부름을 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퇴근 시간이더라는 이야기를 굳이 만화에서까지 읽고싶어하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지 않을까? 실생활에서 맛보기 힘든 간접체험을 원하는 이상, 이것은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평범하고 진부한 소재를 굳이 소재로 채택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 아키즈키 리스의 4컷 만화 『OL 진화론』이 바로 그 주인공. 이 작품의 주역들은 평범한 OL과 회사원들이다. 세기의 로맨스도, 불타오르는 야망도 존재하지 않는 평범무쌍한 일상들. 그런 일상생활 속에서 웃음과 공감을 꼬집어내고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과장님 몰래 근무시간중에 매니큐어를 칠하기도 하고, 큰 맘 먹고 산 화장품이 아무런 효용이 없을지라도, ‘이걸 바르지 않았으면 지금쯤은 피부가 거칠거칠 엉망일거야’ 라며 스스로를 속여보기도 하는... 평범한 OL들의 생활을 그리고 있는 만큼, 이 작품은 유행에 매우 민감하다. 물론 다른 작품들에서도 어느 정도는 일본의 문화나 현재 유행을 느낄 수 있겠지만, 이 작품만큼 피부에 와닿게 느낄 수 있는 경우는 별로 없는 듯 하다. 현재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패션, 다이어트나 건강법, 화제뿐만 아니라, 첫 연재 당시 한창 거품경제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일본사회가 거품의 붕괴로 인하여 어떻게 변했는지조차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일정한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며 진행되는 일반 작품들과 달리 4컷 만화는 4컷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이야기를 전개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같은 페이지수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볼 때, 훨씬 더 많은 양의 소재가 필요하다. 물론 평범한 소재일지라도 전개 여부에 따라 걸작이 될 수도, 쓰레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겠지만, 4컷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어떤 소재를 잡아낼 것인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미 연재가 시작된지 10년이 넘은 작품인만큼, 가끔씩은 비슷한 패턴의 스토리가 눈에 띄기도 하지만, 18권(2002년 1월 시점)이나 되는 분량을 지루함 없이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이 작품은 소재 발굴에 뛰어나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상생활 속에서 잡아내는 자그마한 웃음. 이 작품이 십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이렇게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세계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