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자는 남편
1995년은 성인 만화에 있어 의미있는 해다. SICAF(Seoul International Cartoon Animation Fastival)와 함께 사회적으로 만화/애니메이션이 뛰어난 부가가치를 지닌 산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해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을 바...
2002-01-27
강영훈
1995년은 성인 만화에 있어 의미있는 해다. SICAF(Seoul International Cartoon Animation Fastival)와 함께 사회적으로 만화/애니메이션이 뛰어난 부가가치를 지닌 산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해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을 바탕으로 소년지와 순정지 정도로만 구분되던 국내의 잡지 시장도 연령대와 성별에 맞게 다변화되기에 이른다. 주간만화와 매주만화로 양분되던 국내 성인지 시장은 당시의 빅3--대원, 서울문화사, 세주가 각각 「트웬티 세븐」, 「빅 점프」, 「미스터 블루」를 창간, 참여하며 중흥기를 맞는다. 「트웬티 세븐」과 「빅 점프」는 각각 『마스터키튼』과 『시마과장』 등의 일본만화를 앞세워 성인지 공략에 나서는데, 후발 주자였던 「미스터 블루」가 내세운 카드는 의외로 순수 우리 만화만으로 라인업을 짜는 것이었다. 미스터블루의 이러한 전략은 의외의 선전을 거둔다. 여기에는 물론 중견 작가들의 역할이 컸지만 그 한편에는 미스터 블루가 낳은 신인 만화가들의 분전이 있었다. 윤태호의 데뷔작 『혼자자는 남편』은 바로 이 시기, 양영순의 『누들 누드』와 함께 「미스터 블루」의 한 축을 이끌던 작품이다. 이 만화는 ‘여자의 가치는 얼굴’이라 믿던 사내 김용달이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뚱뚱하고 못생긴 한비혜와 결혼해 함께 살게 되면서부터의 이야기다. 신혼 첫날밤, 25년간 순결을 간직하고 살았다는 김용달의 아내 한비혜는 알고보니 옹녀 저리가라할 정도의 性의 화신, 작가는 아내를 만족시키기 위해 매일밤 고군분투하는 변강쇠, 아니 변강쇠가 되고자하는 사내의 고뇌와 눈물겨운 노력을 희화하여 그려낸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이 만화는 아주 야한 성인 만화다. 윤태호의 그림체가 육감적이고 도발적이었다면 검열의 칼날에 단행본으로 빛을 보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윤태호는 이 야한 소재를 직접적인 묘사가 아닌 주인공 김용달의 나레이션과 은유적인 화면구성으로 풀어나간다. 그렇기에 이 만화는 ‘야하지만 야하지 않은 만화’다. 재미있는 것은 윤태호가 이 만화를 그렸던 시절엔 미혼이었다는 사실. 결혼도 하지 않은 총각 시절에 이런 만화를 그려낸 윤태호의 능청에 혀를 내두루는 수 밖에. 총각 시절의 윤태호는 작품의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잊지 말지어다. 마누라는 애증의 대상이요. 결코 애정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체념하지 말지어다. 이땅의 모든 남편들이여. 혼자자는 남편들이여.” 라고. 2002년 현재의 유부남 윤태호 역시, 그가 김용달을 통해 내뱉었던 그 말들에 동의하고 있을까? 이글을 읽는 당신은 동의하는가? 윤태호는 데뷔작 『혼자자는 남편』 이후 『연씨별곡』이란 흥부전 패러디로 주목받는다. 그리고 몇편의 단편을 거쳐 1999년 부킹에 『야후』를 연재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에 이른다.